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시간 May 01. 2024

서양 미술사 읽기 1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 서론

미술치료는 융합학문으로 미술을 매개로 심리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미술치료에서 '치료'의 사전적 의미는 '상처나 병을 낫게 하는 것'이지만 'art therapy''에서, 'therapy'는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어원적 의미가 있으므로 미술치료는 미술을 매개로 증상의 기원이 되는 마음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으로 미술치료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미술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 마주하고 있다. 미술이 인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류의 삶에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술치료에서 미술을 매개로 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미술의 역할 중 하나인 치료적 의미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요약해 나가며 미술의 치유적 의미에 접근하려고 한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28장으로 되어있다. 여기 서론을 시작으로 매주 2장씩 요약하는 것을 목표로 미술의 새로운 의미의 발견을 위해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는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고유명사로서 미술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할 때 여러 가지 기억의 영향에 의해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며 자신이 현실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림에서 보기 원한다. 하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소재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에 관한 취향과 기준에 따를 뿐이다. 아름다움은 또한 표현과 같다. 누군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좋아하기도 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화가의 노력에 더 큰 감동을 받을 때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즉, 사물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변형시켜 묘사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 좋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림 표현의 정확성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첫째는 화가가 사물의 외형을 변형시킨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자문해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옳다는 섣부른 판단으로 화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습적인 형태와 색깔만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있어서 가장 장애물은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우리가 미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신비스러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만든 물체이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계획하고 스케치하고 그림이 완성되었는지를 고민할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제대로'그려졌는지를 걱정한다. 화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를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제대로'라는 단어를 이해할 있을 때이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제대로'되었다고 보일 때까지 화폭 위에서 수백 가지 색조의 농담과 형태를 조화시킨다. 화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공하면 우리는 제대로 무엇, 불완전한 세계에 완성이라는 것의 본보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화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조화와 균형에 관이유를 묻는다면 그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고정된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가야 방향을 느낌으로 뿐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대가들은 규칙을 깨트리면서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술가는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미리 예견할 수 없기에 일단 시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이나 조각이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규칙이란 없고 그 작품이 위대한 이유를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취향에 대해 논의해 볼 수는 있다. 미술에 대한 취향은 복잡하지만 여러 가지 미묘한 맛을 발견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훨씬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술에 대해 배우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다. 미술에는 언제나 발견해야 될 새로운 것들이 있다. 미술은 그 자체의 불가사의한 법칙과 모험을 가지고 있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자극적인 세계인 것이다. 미술에 속물근성을 조성하는 설익은 지식보다 미술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훨씬 좋다. 미술가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림 감상이 아닌 작품에 적합한 기억을 찾는데 몰두할 수 있으므로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참신한 눈으로 그림을 보고 그 그림 속에서 새로운 발견의 항해를 감행하는 것은 어렵지만 값진 일이다. 우리가 그런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이처럼 사소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