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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only living boy Jul 27. 2019

사랑 여행기 [피렌체 편]
땅을 보고 걷는 사람

 "길을 걸어가면 은행잎도 물들다만 단풍도 많이 떨어져 있다. 모든 것이 다 떨어져 있어서 땅을 보고 걸어야 한다. 땅을 보고 걸으면 외로운 사람이라 하던데...... 그럼, 이만."


 언젠가부터 자신이 하는 생각들이 생기와 총기를 잃고 진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되자 스스로가 내뱉는 말들이 그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줄곧 따분해하던 사람들처럼 말하고 듣고 대화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차라리 혼자 시간을 보내며,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사색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외롭고 버려진 것 같았다. 

 자연스레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때 내 몸에 독이 쌓였다고 확실히 느껴진다. 누군가 인생의 희망과 꿈에 대해 말할 때 그가 세상과 인생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 혹은 닉 캐러웨이처럼 남들이 가지지 못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 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가 확실히 내가 도망쳐야 할 때다.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도망쳐야 할 때. 


 [여행이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적은 문장을 읽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흥분해서 당장 비행기표를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사람들이 여행에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우리를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에서 전혀 해방시키지 못한다. 여행의 끝에 장렬히 죽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우린 일상의 그 어떤 고리도 끊어내지 못한 채 그저 도망 다니고 있을 뿐이었던 것 같다.

 도망자는 굉장히 불안하고 외롭기 때문에 믿을 만한 동료가 있으면 정말 든든한 법이다. 여자 친구와 함께 다닌 여행이 내게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던 이유는 바로 그 든든함일 것이다. 여행이 도망이었다고 말하는 나는 정말 심각한 배신자다. 절필하고 문학을 폄하하고 욕하는 랭보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여행이 도망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이거나 지구 저 편의 무인도에 함께 떨어지면 곧바로 당신을 배반하고 모래 구덩이에 통조림 캔을 숨긴 후 당신이 잠에 들면 하나씩 꺼내 배를 채울 사람이다. 아무튼 지금 느낌은 그렇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물었다. 

 "무섭지 않아? 그렇게 떠나버리는 게.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낯선 데서 혼자 지내려 하는 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날, 처음으로 이국 땅의 작디작은 공항을 나오며 난생처음 맡아보는 덥고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파란 트렁크 가방과 빨간 배낭 말고는 모든 것이 낯설었을 때는 분명 무서웠다. 도대체 왜 이곳에 왔을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당장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다. 

 수십수백 번 비행기를 타고난 지금은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정말 무서울 때가 있다. 이따금씩 비행기에 올라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 나는 잃어버리던 안정감을 되찾고 비로소 안심을 한다. 

 도피하고 있기 때문일까? 도피자는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도 생활이 이어진다. 일상'생활'에서 도피'생활'로 이어지는 것뿐이다. 사전 속 '생활'의 제1번 뜻은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이라 나와 있다. 나는 일정한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모든 걸 잊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되찾기 위해 떠난다.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여행을 하며 그것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생기와 총기를 되찾아,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되찾아, 쌓여가는 진부함에서 탈피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아무튼 반추해보니 나는 언제나 도망치듯 떠났다. 하지만 한 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았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금 여행(도망)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연기를 내뿜는다. 물론 당당히 다시 돌아올 것이다. 


 과거, 피렌체. 한여름 8월의 햇볕은 너무나 뜨거워 나는 웃으려 하는데도 찡그리는 얼굴로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습기까지 증발해버린 탓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천 년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피렌체를 탐방하기 위해 나는 검은색 카라티와 그로테스크한 문양의 회색 반바지를 입었다. 게으른 이탈리아인들의 높은 악명과는 달리 제 시각에 정확히 도착한 버스를 타고 플로렌스로 향했다.


 한 시간 가량 달린 버스 안에서 나는 마치 십분 만에 도착해버린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나는 이동 수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주 많고도 중대한 결정들을 내린다. 남원에서 순천으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혼란을 끝내고 아주 먼 곳에서 자신의 본성을 알아낼 필요성을 느꼈고 얼마 후 호주로 떠나 생활했다. 그리고 주사위 게임을 하듯 인생을 실험했다. 뉴욕 JFK 공항에서 캘거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래를 위해 복학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서울로 돌아와 자퇴했다. 

 아무튼 기차, 비행기, 버스(장거리 시외버스)와 같은 이동수단은 내게 몽환적인 최면 효과를 가져온다. 몸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데 뺨에 닿는 창밖으로 공간과 시간만이 흐르는 상태. 평소엔 하지 않았던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램 수면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몸은 그 자리에 있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정신은 꿈속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동시에 확실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적어도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그건 굉장한 안도감을 준다.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느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만일 버스의 여정이 3시간 예정이라면 나는 3시간 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버스에 앉아 있다'는 행동이 될 수 있는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실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속에서 여러 기억들을 반추할 수도 있고, 평소엔 보지 못했던 각도로 현재 상황을 재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해 다시금 멋진 꿈을 꿀 수도 있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문제다. 그리고 하려고 한다고 해도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보통 시각차는 사람에 따라 나뉘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태에 따라 시각차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기숙사 방 안에서 가지는 현실에 대한 시각과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가지는 시각에는 환장할 만한 차이가 있다. 아무튼 이런 여행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밤새서 떠들 수 있다. 


 여하튼 피렌체로 향하던 버스에서 나는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생각을 했고 여러 결정을 내렸다. 그러느라 한 시간의 여행이 십 분보다 짧게 느껴졌다. 그럴 땐 가끔씩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이대로 영원히 더 달려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 피렌체의 두오모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가지는 느낌과 생각이니까 말이다.  


 들뜬 마음을 안고 차분히 버스에서 내렸다. 길모퉁이를 한 번만 돌면 곧바로 도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큰길을 찾을 수가 있다. 도시 중앙에 위치한 중앙역은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도시는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하다고 들었다. 우리는 중앙역에서부터 탐방을 시작했다. 지도 위에는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를 루트별로 나누어 놓고 있지만,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일단 발을 떼어본다.  

 8월의 무더운 날씨는 사람들을 벗겼다. 귀여운 이탈리아 여인들의 시원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기분을 거부할 수가 없다. 나도 고대 로마의 토가 같은 것을 입고 그녀와 함께 시원하게 걸어보고 싶다. 하늘하늘 거리는 천떼기 사이로 송송 스며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나의 굵은 팔뚝으로 박력 있게 그녀의 허리를 잡고도 싶다. 아마도 이탈리아 여인들은 새침하지만 귀여운 미소를 띠며 내 손의 위치를 조정해줄 것 같다. 앙큼한 그녀는 좀 더 안쪽으로 나를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는 그늘 밑에 앉아 자그마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식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요깃거리 정도가 더 정확하겠다. 샌드위치며 피자, 각종 빵,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널려있어 모두들 그런 것을 사 들고 와 거리에 앉아서 먹는다. 성당 옆에도 계단 위에도, 인도 위에도 어김없다. 

 가죽이 유명하다던 피렌체에는 긴 가죽 시장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각종 동물의 가죽 냄새가 확 풍겨온다. 그 거리의 혼잡함 속에서 우리는 젤라또를 먹었다. 가죽 냄새가 너무 심해 젤라또에서 가죽 맛이 났다. 

 두오모에는 빨갛고 둥그런 사과껍질 같이 생긴 돔 모양의 꼭대기 탑이 있는데, 그곳에 오르면 피렌체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사실 두오모는 이탈리아어로 돔을 의미하고 곧 대성당을 의미한다. 밀라노에도 두오모가 있고 피사에도 두오모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두오모 하면 피렌체의 두오모를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누구도 볼로냐의 두오모에 대해 떠들지 않는다. 명성이란 그런 것이다. 명성이란 곧 관심과 기대감이다. 나는 그것이 피렌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명성 있는 도시. 별다를 것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기대를 주는 유명한 도시. 

 아무튼 우리는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두오모에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는 두오모가 그렇게나 일찍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5시에 닫는다) 돌아다니다가 결국 오르지 못했다. 만일 함께 피렌체의 아름다운 두오모를 올랐다면, 어떤 것들은 확연히 달라졌을까?  


 나는 걷는 사람이다. 나는 미친 듯이 걸을 수 있다. 하정우만큼 걸을 자신이 있다. 만일 누군가 여기서 어딘가까지 10km라고 말하면 나는 걸어서 80~90분 정도 걸릴 거라고 계산한다. 누구는 아연실색한다.

 한 번은 데이트하러 나온 여자에게 걷는 걸 좋아하냐고 물으니 좋아한다고 해서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정경을 곁에 둔 건강한 데이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데이트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 그녀는 다른 친구에게 그날 발이 아파서 죽을 뻔했다고 말했고, 훗날 내가 그녀에게 고백하자 우린 좋은 친구라고 거절했다. 알고 봤더니 그녀는 그날 구두를 신고 나왔었다. 그녀는 분명히 나를 두고 구두를 신고 나온 여자를 미친 듯이 걷게 하는 새디스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새디스트가 아닌데 말이다. 그녀가 솔직하게 발이 아프다고, 택시를 타자고 했다면 나는 택시를 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 내린 후 신사답게 바래다주고 나의 집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이후부터 나는 여자들의 신발을 주의 깊게 본다. 그녀에게 배운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구두를 신고 나온 여자를 절대 오래 걷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나의 여행 패턴은 도시에 도착해 관광 안내소에 들러 도시의 무료 배포 지도를 얻은 후 걸어서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정의된다. 걷다 보면 내 머릿속엔 나만의 지도가 생긴다. 미친 듯이 걸어 다녔던 도시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밴프의 보우 강가에서 영화관까지의 길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다. 어디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면 되는지......

 나의 여자 친구는 여자치고 굉장히 잘 걷는 사람이었다.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것은 나의 방식이 아니지만 이건 나의 축적된 편향적 경험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잘 걷는 남자와는 다녀본 적 있지만 그만큼 잘 걷는 여자와는 아직 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걷는 걸 좋아했고(기호라는 것은 행동에서 알 수가 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서 모닝커피를 마신다면 분명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그 짓을 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거니까 어디 가서 커피를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두도 신고 다니지 않았다.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구두를 신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든 걸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 

 피렌체는 작디작았고, 때가 많이 탔고, 오래 묵은 냄새가 났고, 사실 딴 건 잘 모르겠다. 나는 실망했던 것 같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마술 피리]를 보며 졸았던 기분과 비슷하게 기억된다. 다만 그 유구한 역사의 도시를 미친 듯이 걸었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에겐 나만의 피렌체 비밀 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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