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든 사이, 나를 찾는 시간
남편과 아이가 잠들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밤이 찾아오면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하루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내가 거실을 서성이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육아와 집안일로 채우고 나면, 오늘도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쉽사리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이제 막 육아의 세계에 입문한 육아맘에게 시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인데, 왜 나는 이 시간 앞에서 항상 단어를 찾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을 불편하게 채워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 앞에서 나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드는 존재들은 내 옆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먹고 몸집을 키워간다. 이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하는 지인들의 소식은 나의 현실에 그림자를 비춘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하기 이전에 하루를 알차게 꾸려갔던 과거의 나까지 현실로 자주 소환되어 그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든다. 원래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나답게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었기에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결핍이 생기고 부족한 시간마저 통제할 힘을 잃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만다.
제자리에서 정체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타고난 기질 탓에 이런 현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간을 되찾아야만 했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모아서 나를 돌봐야 아이도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아를 하면서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샅샅이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 절대 시간은 허락되지 않을지라도 틈새 시간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은 틈새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우선 아이가 아침에 깨기 전에 먼저 일어나 오늘 할 일을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아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적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열심히 놀아주고, 아이가 혼자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틈에 쌓인 집안일을 재빠르게 끝낸다. 그리고 아이가 낮잠에 들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아침에 기록했던 나를 돌보는 방법들을 하나씩 실행한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챙겨 먹는다. 독서를 하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하고, 그냥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밤에 아이가 잠들고 난 시간도 활용해 블로그에 기록을 하거나, 내가 가진 글감을 하나씩 꺼내 글을 쓰기도 한다. 아이의 컨디션을 포함해 변수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지만, 그날그날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한다. 물론 예전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하루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계획한 일의 90프로는 내일로 미뤄지기 십상이다. 잠도 줄여야 하니 피로는 덤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고,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태도가 나에게는 필요했다.
나를 위한 틈새 시간을 채워가고 늘려갈수록 본래의 내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커진다. 오늘 내가 해낸 작은 성과는 자신감으로 변해 내 안에 쌓이고, 하고 싶은 일들이 꼬리물기로 하나씩 늘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다 해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테니, 아이의 낮잠 시간이 지금보다 더 길어지면 좋겠고, 밤잠 시간은 앞으로 더 당겨지면 좋겠다. 이렇게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우선으로 놓고 아이를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나의 몸을 통과해 세상 밖으로 나온 존재이니 내가 잘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을 한껏 안고, 아이와 나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가야 할지 갈등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이 시간에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더 해줄 수 있는지 찾아보고, 고민을 더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엄마로서 사는 삶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틈새 시간도 나를 위해 써도 되는 시간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주어지는 얼마 없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여유시간이 더 생길 것이니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희망이 분명 존재하지만,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나로서는 이 시간을 어떻게 균형 있게 잘 써야 할지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