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이와 수일이, 5학년 권장도서
왜 예전에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우리 반 필독도서에 있었는데 막상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빌려가는 책은 아니었고. 책 제목만 봐서는 딱히 끌리지는 않아서 그랬을까? 그래도 저 제목보다 더 좋은 제목은 생각나질 않는다.
수일이와 수일이
이름이 같은 두 친구가 겪는 해프닝인줄 알았다. 지금 다시 자세히 보니 쥐가 한 마리 있었네. 이게 그 유명한 '손톱 먹은 쥐' 이야기였군. 아주 유명한 전래동화인데 난 자꾸 전설의 고향에서 본 느낌이다. 꽤나 무서웠는데.
학원 가기 싫고 놀고 싶은 수일이가 결국 대체인을 만들게 된다. 말하는 개 (물론 그 말은 수일이에게만 들리지) 덕실이와 함께 금지된 술법(?)인 쥐에게 자기 손발톱 먹이기를 쓰게 되고 성공하게 된다. 그래서 소환(?)된 가짜 수일이. 힘들고 귀찮은 일은 가짜 수일이가 대신하고 진짜 수일이는 놀기만 하고. 뭐 여기까지는 많이 보던 장치다. 도라에몽의 동화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야기는 제법 현실적으로 흘러간다.
가짜 수일이가 적응을 하면 어떻게 되지?
처음에는 이 현실세계를 싫어하던 가짜 수일이가 점차 적응을 하면서 진짜 수일이를 밀어낼 준비를 하게 된다. 진짜 수일이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 학원 가는 것 싫고, 엄마의 잔소리도 싫지만 그렇다고 가족이라는 그 자리를 누가 대신하는 싫고. 아이의 고민이 아주 현실적이 되는 순간이다.
싫은 것만 안하고 좋은 것만 할 수는 없을까?
모든 사람의 고민. 정말 그러고 싶지만 산다는 게 그렇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다 안다. 그리고, 이 아이도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싫지만 해야 하는 것과 좋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선택은 결국 내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아이는 부쩍 성장하는 거겠지?
그래서 마지막이 참 좋았다. 열린 결말이다. 방울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 방울이는 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야생 고양이다.
"남을 함부로 길들이려고 하면 안돼. 무턱대고 남한테 길이 들어도 안 되지"
작가가 맺어준 결말보다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결말로 만들어 보라는 뜻인 듯 싶다. 수일이 문제의 시작이 수일이었으니 결국 맺는 것도 수일이.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른들은 다들 수일이 이야기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그것조차도 나는 어른들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결국 니 일이니 니가 잘 해결해 보라는 배려.
드라마나 영화가 이런 식으로 끝나면 다들 욕했을 거다. 어찌보면 우리는 해피 엔딩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게 아닌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이란게 어디 해피 엔딩만 있던가? 새드 엔딩도 있고, 가끔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잡동스러운 에피소드의 향연이기도 하고. 어떤 사건이 벌어질 지 예상을 할 수는 없어도 어떻게 대처할 지는 결국 내 몫이다.
잘 대처하고 잘 이겨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수일이처럼 고민할 때가 많다.
이럴 때 방울이가 옆에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길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길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사람.
친구가 참 보고 싶은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