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7년 그리고 미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방인의 삶
2013년 8월, 얼떨떨한 행복감으로 보낸 한 달의 그 시간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승무원이라는 꽤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현실로 이루고 그 해 9월 입사를 위해 태국으로 출국을 앞둔 한 달 간의 시간. 그 시간은 내게 앞으로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내다보기보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고 그것을 위해 간절히 노력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은 없구나. 하는 진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앞으로 내 삶을 살아나감에 있어 가장 큰 용기를 갖게 해 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었다.
그 해 9월 출국을 앞두고 만난 친구는 약간의 부풀어 있던 마음의 나에게 대뜸 물었다.
"외국에서 사는 것, 두렵지 않아?"
그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하나도 안 두려워. 그냥 여행하듯이 여행자의 마인드로 살고 싶어. "
그곳에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이 아니라, 스스로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여행객의 마음이 되는 것.
그것이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감내해야할 수많은 어려움을 앞두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고 싶었던 친구의 꽤 무거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처음의 그 마음은 다행히도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태국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면서 대부분은 변하지 않았다. 비행이라는 육체적, 정신적인 약간의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비행 후 태국에서 맛보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자유와 마음 맞는 동기들과의 소소한 시간, 언제든 원하면 맛볼 수 있는 진짜 태국 음식, 저렴한 물가,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hot, hotter, hottest 만의 계절이 있는 축복(?) 받은 나라.
그 모든 것이 나와는 너무나 잘 맞았다.
또한 비교적 한국과 태국 물리적으로 크게 멀지 않은 거리 덕분에 고맙게도 친구들이 여행으로도 태국 방콕을 자주 찾아주었다. 나는 그 덕분에 타국에서 이방인이라는 충분히 외로울 수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으로 젊은 날 해외에서 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경제적,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아주 값진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태국이라는 나라가 나와 다행히 잘 맞아서 좋지 않은 부분보다는 좋았던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은 편이지만 분명 매 순간 여행객의 마인드가 될 수만 있는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사는 태국 방콕의 도시적 특성상 외국인에게 호의적이고 배려를 베푸는 정 많은 태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비행을 하면서 특히 외국인 승무원을 싫어해서 좀 더 일하기 힘든 포지션을 준다거나, 브리핑 시간에 태국어로만 브리핑을 진행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럴 때면 소수이지만 늘 동고동락 해오던 마음 맞는 동기, 선배들과 기내에서 울그락 불그락 각자 겪었던 에피소드로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며 느끼는 억울함은 같은 상황을 겪는 이들의 공감과 토닥임으로 인해 금방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방인으로서 태국에서의 삶을 돌이켜 보면, 태국이라는 나라와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하기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각자 모두 다양한 목적으로 해외살이를 시작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태국이라는 나라를 만나게 되었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길 만큼 나 자신이 개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있어 크나큰 영향을 받은 곳이라고 자부할수 있지만 나와달리 분명 외국에서 살아보니 생각하던 것과 같지 않아서 처음의 목적을 잃고 포기하여 떠나는 이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7년의 태국 살이를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주마등 처럼 지나간 내 20대와 30대의 해외 생활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 보았다.
나는 어떻게 어쩌면 외롭고 어쩌면 서러운 그 이방인의 삶을 버틸수 있었을까?
그러던 중 내가 선택한 해외 생활에서 이방인으로 이왕이면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정한 몇가지 관념들이 나도 모르게 자리잡았음을 깨달았다.
01. 불평하기 전에 관점을 바꿔보자.
내가 외국살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는 내가 내 관점을 바꿨을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언어적 장벽,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문화적 차이 등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지에 따라 그것이 가진 본질도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 같다. 넘어 서기 힘든 '언어적 장벽'이 아닌 새로운 그들의 언어를 배워 더욱 깊은 그들의 것들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면 어떨까. '문화적 차이'가 아닌 세상은 넓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은 공존하며 그것을 원한다면 언제든 누릴 수 있는 내 환경이 정말 감사하구나. 하는 마인드로 관점을 바꾸는 것.
그렇게 마인드를 바꾸어 '마음을 연다'라는 태도를 가지면 좀 더 무엇이든 수용하는 관대한 마음이 생긴다.
한 번에 쉽게 바꿀 수도 혹은 살면서 또다시 부딪히는 어려움들에 좌절할 때도 있지만, 조금 더 '행복'하게 해외 살이를 하고 싶다면 꼭 지녀야 할 마음 가짐이다.
02.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다.
처음 태국에서 일을 하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많이 동떨어진 'easy going(쉽게 쉽게)'라는 말을 하는 태국인들을 자주 마주했다. 같이 일하는 크루들이 서비스를 하는 데 있어서도 이지고잉을 외칠 때면 가끔 속 터지는 사람은 이 비행기에서 나 혼자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수의 태국인 내에서 혼자 외국인 노동자로서 큰 목소리 내기 어렵고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답답한 적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나는 그렇게 서둘러 그들과 그들의 환경적 차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 게 아니었을까 했다. 추운 날씨라는 것이 해봤자 12월쯤 북부 치앙마이의 15-20도를 웃도는 나라. 오직 더운 계절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이지고잉'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더운 곳에서 더욱 서두르고 열을 낼수록 당연히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태국인들은 그 나라의 환경 안에서 그렇게 그들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 그들의 방식과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내가 살아온 나라와 환경이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반대의 것들을 무조건 옳지 않다 섣불리 판단하고 그것에 불만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여러모로 소비적인 에너지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시간을 가지고 차이를 인정하고 배경적 환경적 모든 요소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눈을 기르자.
03. 망설이지 말자.
모두가 각자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해외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특히 해외 나라 및 도시의 특성 따라 달라 질 수 있겠지만 내가 지내 본 태국 방콕은 그 어느 나라의 도시보다도 다채롭고 풍요로운 도시였다. 거기다 내 직업이 주는 특수성은 원하면 언제든 어느 나라로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유도 주어지는 축복받은 환경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7년의 근무기간 동안 꽤 많은 곳을 여행 다니며 이 직업이 주는 혜택을 단단히 챙긴 편이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주변 동기들도 많았다. 모두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고 그것이 여행을 하고 아니고로 구분 지을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2020년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린 항공업계를 바로 곁에서 바라보고 겪으면서 생각했다. 망설이고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져 버린다고. 특히 해외에서 제2의 혹은 3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이 가진 근본적인 성격 이런 것을 떠나서 무엇이든 경험하고 또 경험하는 것에 있어서는 돈도 시간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좀 더 내 안의 알을 깨고 나와서 나를 둘러싼 'comfort zone'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해외 살이 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덜 망설이고 좀 더 도전지향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대신 확실히 넓은 곳에서 상상이상의 다채로운 선택지를 골라볼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본다.
또한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늘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채비를 하며 사는 환경에 있다는 것.
어쩌면 늘 끊임없이 적응에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놓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이 곳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이방인의 마음이 한편으론 제한된 시간 안에서 더욱 그 가치와 소중함을 보듬어가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해외로 나갈 어떠한 목표가 각자 주어진다면 가기 전에 혹은 그 환경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에서 무엇으로 최선의 날들을 만들어 갈 것인지 지속적으로 인지하고 고민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 필요한 마음가짐인듯 하다.
지난해 태국을 떠나 나는 올해 또다시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적응을 막 시작하고 있다.
20대 타국에서의 이방인 생활을 지나 또 다른 나라에서 또 이방인의 삶을 맞이했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지난 태국에서의 이방인으로서 경험을 벗 삼아 이제는 조금 덜 두렵고 , 조금 더 용기 있게 그리고 조금 더 내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어른이 된 줄 알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리셋된 삶 안에서 나는 마냥 어린아이가 된 듯 다시금 발가벗겨진 기분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밀려오는 두려움도 설렘으로, 서투름도 늘 배우는 자세로 전환해 나가면서 내 앞에 높인 돌들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며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으로 차츰 가까워지길 소망해본다.
언젠가는 또다시 짐을 싸며 지친 내가 엄마 앞에서
"엄마 나 이제 짐 좀 그만 싸고 싶다."
하니 바로 망설임 없이 말하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자.
" 네가 선택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