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글 소환 : 애자일 전환 기업의 헬릭스 적용 사례
필자가 최근 여러 기업의 임원들을 만날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경영진이 애자일(Agile, 이하 애자일) 조직운영체계를 도입하라고 해서 도입했는데, 제대로 운영되는지도 모르겠고, 애자일 조직만 도입하면 빠르고 유연하게 업무가 진행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답답한 상황이다’, ‘우리회사도 구글 까진 아니지만, SK, 우아한형제처럼 운영하고 싶은데 우리회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라는 이야기들이다.
기업들이 기대했던 이상적인 ‘애자일’한 조직 운영이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중견기업 또는 급성장하고 있는 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평적인 위계, 유연하게 운영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들고, 조직 간 사일로(Silo : 조직의 부서들이 다른 부서와 소통하지 않고 내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서 간 이기주의 현상을 의미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나 기대했던 만큼 ‘유연하고 기민하게’ 조직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존보다 조직의 움직임이 ‘우왕좌왕’ 했고, 성과도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다 보니 Agile Management System 도입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일부 경영진은 기존 조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필자가 2018년 모 고객사의 ‘애자일’ 조직운영체계 컨설팅을 수행할 당시 파일럿으로 운영한 애자일 조직이 기대한 만큼 운영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필자와 고객사 TFT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를 시작했다. ‘애자일’의 본질이 무엇이며, Agile Management System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필수적 선결 요건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분석해 나갔다. 실리콘밸리에서 ‘애자일’을 통해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와 놀랄 만한 성과를 창출해 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자일 도입 여정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 2008년 몇몇 팀이 애자일 및 스크럼을 실험하기 시작하였음.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실험에 참여한 팀 내 구성원들이 스크럼을 이해했고, 스크럼을 구현해 내기 시작함
>> 2010년 특정 부문 팀 내 전체 조직에 애자일 방식을 채택하기로 하고 3주의 스프린트 동안 모든 애자일 팀들이 같은 속도로 작업을 수행해 나감
>> 2011년 여름, 비주얼 스튜디오 그룹을 애자일과 스크럼으로 전환했고, 2011년 말 개발부 전체가 애자일 운영방식으로 전환을 결정함
<Resource: The Age of Agile, Stephen Denning, 2018>
필자의 고객사가 바라는 이상적인 Agile Management System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구성원들이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애자일’이 경영의 도구가 아닌 기업의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 경영진, 팀 리더, 그리고 구성원들이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1. 경영진은 ‘애자일’ 도입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애자일’을 조직 내 전파해 나가는 ‘변화관리자(Change Agent)’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Agile Management System이 조직 내 정착될 때까지는 ‘단기적 이익창출’의 불안감이 지속될 수 있지만 ‘과거의 성공을 가져다 준 방식’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이러한 이유로 애자일을 포기하곤 했다.)
2. 팀 리더들에게는 교육과 코칭을 통해 Agile Management System에 대한 이해도를 빠르게 높이고, ‘애자일’ 파일럿 조직을 운영하면서 어떤 방식이 우리 기업에 맞는 최적의 운영방식인지를 스스로 찾아 나가게 해야 한다. ‘애자일’ 조직은 회사가 Top-Down 방식으로 조직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방식으로 ‘자기조직화’ 되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애자일 조직의 핵심은 ‘소규모-자율적-기능혼합’이기 때문이다.)
3. 조직 내 구성원(직무수행자)들은 지금까지 일 해왔던 기존의 방식과 다른 ‘애자일’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사고/업무수행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체화하고 최종적으로는 내 몸에 일부처럼 익숙해지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애자일’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 있는 구성원들이 모여 ‘Agility’하게 일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위의 내용을 고객사 CEO에게 보고를 했다. (참고로 필자의 고객사는 화장품 회사였고, 매년 빠르게 고성장을 해 나가고 있는 ‘K-Beauty’ 대표 기업 중 하나였다.) 보고를 받은 CEO는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우리도 MS처럼 시간을 갖고 준비를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규모도 작고, 실패에 대한 Risk도 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빠른 시장의 변화와 치열한 경쟁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CEO가 필자에게 준 질문에 바로 답을 드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비단 필자의 고객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다수의 중견/고성장 중소기업 등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기민한’ 조직운영체계는 무엇일까? 필자와 필자의 동료 컨설턴트들은 다양한 방식의 조직운영체계를 고민해 보았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즉시 실행가능한 ‘유연하고 기민한’ 조직 운영체계였다.
(참고로 필자와 필자의 동료들은 즉시 실행가능한 ‘유연하고 기민한’ 조직운영체계를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이론과 사례를 검토했고, 위에서 보는 것처럼 조금은 허무맹랑한 개념 까지도 스케치하고 실현 가능성을 검토했었다.)
‘헬릭스(Helix, 이하 헬릭스)’의 개념은 본래 ‘나선’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3차원의 기하학적 형상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선이 만나는 점이 늘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조직 내 모든 ‘애자일’조직은 결국은 ‘기업의 성장과 성과달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는 ‘애자일’ 조직을 엮어 주는 ‘선’들이 있다면 ‘애자일’ 조직에 기대하는 효과도 얻으면서, 동시에 실패 리스크도 줄여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소/중견기업들의 특성 상 애자일 조직의 리더가 ‘애자일’조직 내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직무에 대한 경험 부족 뿐만 아니라 직무에 대한 세부적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애자일 조직 내 리더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결정을 주저하게 되고 과거처럼 위로, 위로 보고의 절차를 밟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에는 실제로 이렇게 운영되는 무늬만 애자일 조직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복수(複數) ‘애자일’ 조직의 리더를 조직 내 배치하는 것이 아닌, 조직 밖으로 빼 내고 각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여러 ‘애자일’ 조직을 동시에 관리하고,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통해 ‘애자일’ 조직 및 조직 내 기능 담당자들의 업무수행 상황 등을 함께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목표’와 실행되는 ‘과업’을 지속적으로 ‘정렬’ 시켜주는 역할을 하여 ‘애자일’ 조직 내 구성원들이 보다 목표지향적으로 업무에 몰입해 나가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율성이 강조되는 애자일 조직에서 기업의 목표와 애자일 조직의 과업을 정렬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숙제 중 하나이다.)
필자의 고객사가 ‘헬릭스’ 조직운영체계 도입을 검토하면서 최종 판단의 기준은 아래 다섯 가지였다.
1. 중장기 전략 – 리더 – 애자일 조직 간의 연결고리가 확보되는가?
: 애자일 조직 특성상 ‘자율성’이 보장되고 ‘실패’에 관대해지다 보면 기업이 설정해 놓은 중장기 비전/전략 방향과 틀어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중간에서 점검하고 조율해 나가는 것이 ‘헬릭스’ 조직의 리더 역할이다.
2. 애자일 조직 내 구성원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운영체계 인가?
: 실제 기업에서 애자일 조직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의사결정에 대한 부담감이다. ‘헬릭스’ 조직 복수(複數) 리더들의 협의 과정과 의사결정 지원은 구성원들이 본연에 업무에 몰입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3. 애자일 조직간 충분한 상호작용이 일어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가?
: 조직 전체의 운영방식과 ‘애자일’ 조직이 충돌되거나, 같은 목적 그리고 동일 주기의 스프린트를 운영해 나가는 여러 ‘애자일’ 조직 간의 소통의 브릿지 역할을 ‘헬릭스’ 조직의 리더가 해 나가야 한다.
4. 애자일 조직이 기존의 TF(Task Force) 조직과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운영되는 것인가?
: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조직의 일과 완벽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애자일’ 조직에서 수행하는 일에 대한 명확한 평가/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이 확보되어야 ‘몰입’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성과’가 창출될 것이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결정적인 순간 ‘안전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5. 내부적으로 헬릭스 조직운영체계를 Support 할 수 있는 충분한 리더들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조직 운영 과정을 통해 자율성이 담보된 ‘애자일’ 조직운영체계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 ‘헬릭스’ 조직의 리더들에게 Time management, Quality control 그리고 Communication & Feedback 역량이 강조될 것이다. 당장 이런 역량을 갖춘 리더가 부족하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조직 내 가능성 있는 Junior 들에게 경력개발 뿐만 아니라 관련 역량에 대해 미리 준비시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전에 준비해 둔 만큼, 향후 필요한 순간에 해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리더가 조직 내에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 판단기준은 필자의 고객사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애자일’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도 다시한번 검토해 보고, 질문 중 한가지라도 ‘Yes’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현 운영체계의 근본적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위의 다섯가지 질문에 대해서 ‘Yes’라는 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조직운영체계(Agile Management System)를 준비해야 하고, 해당 준비가 되었다면 즉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고객사는 우선적으로 ‘헬릭스’ 조직 운영체계 안에서 ‘애자일’ 조직을 이끌어갈 리더 후보군을 선정하였고, 선정된 소수의 핵심 리더들이 모여 ‘헬릭스’ 조직 운영체계의 ‘다섯가지’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운영의 목적과 룰을 명확히 설정하고, 한 분기 동안 운영될 ‘애자일’ 조직들의 개별 및 통합 목표를 수립하였다. 필자 그리고 고객사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들은 ‘과연 성공적으로 운영이 될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헬릭스’ 조직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애자일 조직 간의 시너지 뿐만 아니라, 기대했던 ‘유연하고 기민함’과 ‘성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의 고객사는 ‘헬릭스’ 조직운영체계 도입이후, 기대했던 여러가지 효과를 얻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존 리더들의 역량 수준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CEO 및 소수의 임원들의 의사결정이 없으면 업무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헬릭스’ 리더들간 지속적 협의를 통해, 구성원 간의 소통 뿐만 아니라 팀 내 자발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리더들의 역량 수준이 독자적 ‘애자일’ 조직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어, 독립된 ‘애자일’ 조직도 시범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애자일’ 조직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의 업무의 몰입도와 만족도도 기존 조직운영체계 대비 향상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기존 대비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고 구성원들은 인식하고 있다.
필자도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다 보니, 학교에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필자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자주 듣던 이야기가 여전히 2020년도 학생들에게, 학부모에게 이야기되고 있다. 바로 ‘자기주도 학습’이다. ‘애자일’의 본질도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자기주도 학습’이며, ‘애자일’인 것이다.
‘애자일’ 팀 내에서 실시간으로 업무 상황이 공유되어야 하고, ‘애자일’ 팀 구성원 간 동일한 수준의 업무 이해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주기로 움직이는 다른 ‘애자일’ 팀들과 소통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까지 된다면 반드시 기업은 변화/혁신에 성공할 것이고, 시장 내에서 고객의 니즈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충족하키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다.
‘헬릭스’는 별도의 조직운영체계 개념이 아니다. 성공적인 ‘애자일’ 조직운영체계의 변화를 도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관리 방식이다. ‘헬릭스’는 아직 국내 기업들에게 많이 소개되거나, 적용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애자일’한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나, 선뜻 도입하기 어려운 중견ᆞ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애자일’ 조직을 도입했다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한 대기업에게도 ‘헬릭스’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헬릭스’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뒷바퀴에 달려있는 보조바퀴, 또는 높은 산을 등반할 때 등반을 도와주는 ‘셰르파(Sherpa)’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긴 변화의 여정에 대한 투자를 고민하거나, 아직 내부적 변화 준비가 덜 되어 있거나, 도입의 실패 리스크를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헬릭스’는 ‘애자일’한 조직의 변화를 도와줄 수 있는 요술램프 속 ‘지니’가 되지 않을까?
해당 글은 20년 3월 DBR에 기고한 글을 브런치에 옮긴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