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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Feb 16. 2019

녹슨 못

  안개처럼 짙게 드리워진 내 삶의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삶은 죽은 삶이라고, 점잖 빼며 말하던 위선적인 지식인 탓일까. 조급함이 내 삶을 갉아먹기 시작하고부터는 달리지 않고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감기가 힘들다. 정체된 삶에서 달린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희열을 주기에, 잠시나마 차가운 세상을 잊게 해준다. 그렇다고 달리는 행위가 삶이 주는 무거운 업을 뒤로 하기에 충분한 수단이 되어주진 못한다. 매일 눈꺼풀을 들어 올려 무미건조한 일상의 단조로움을 받아들이려면 내겐 또 다른 수단이 하나 더 필요하다. 일상에 지극히 사소한 변화를 주는 것. 그래서 오늘은 방의 구조를 바꿔본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을 기준으로 가구들을 재배치 하다보면, 저 햇살이 내게 찾아오는 한 가닥 새로운 희망으로 여겨지곤 한다. 옮겨진 가구들은 내게 주어진 환경의 변화를 상상케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다보면 마주하게 될 기회와 행운, 그리고 그로부터 기인하는 행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버텨왔기에.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던 어린왕자의 말을 아직도 믿기에. 

  

  책상을 옮기는 도중에 휑한 벽에 홀로 쓸쓸히 서있는 못을 발견한다. 저 못이 떠받들고 있던 세계는 세상의 속도를 더는 말해주지 못하던 고장 난 시계가 걸려있던 자리다. 그는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와는 달리, 자신에게 강요됐던 짐을 덜게 되었으니 이제 조금은 행복해졌을까. 고장 난 시계에 삶이 저당 잡힌 채, 같은 자리에서 세월을 피할 새도 없이 온전히 받아 내다보니 피로 얼룩져 붉은 빛이 선명하다. 저 기괴한 못이 벽의 그림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 빼내려던 차에 한 여자가 떠올라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준 유일한 여자. 나의 어머니. 늘 같은 자리에서, 녹슨 못처럼 늙어가고 있던 나의 어머니.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살아간다며, 현실의 급류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가다보니 잊고 있던 그녀.      

  

  나의 존재와 모진 말들이 망치되어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선, 못난 나는 무얼 잃었고, 또 무엇을 얻을까 하여 지난한 생의 값 치르며 살아온 걸까. 내 마음의 눈이 멀어서 보이지 않던 그녀. 세월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녹슬어간 못처럼, 그렇게 내 곁에서 늙어가셨다.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갈 나를 매질이라도 하듯 찬바람이 온 몸을 스치는 오늘, 시린 겨울밤을 무대로 처연한 달의 표면에 그녀의 주름진 얼굴과 눈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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