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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Nov 29. 2021

태어나지도 않은 너에게, 결혼도 안 한 아빠가

제이에게


제이야 안녕.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니? 그날이 어떤 날이든 네가 이 편지를 보는 오늘은 특별한 하루의 시작이 되길 바라. 왜냐하면 이 편지는 아빠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너를 생각하며 쓴 첫 번째 편지니까.


아빠는 지금 38살이야. 아직 결혼은 안 했지. 생각해보니 웃기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자식 생각을 하고 있다니... 먼저 네 엄마 될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네가 이 편지를 본다는 건 아빠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결혼을 했고, 사랑스러운 널 낳았다는 얘기가 되는 거네? 그런 의미에서 제이 너는 아빠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구나. 혹시 네 주변에 내가 있다면 나에게 달려와서 말해줘. 


"아빠. 성공하셨네요! 사랑스러운 엄마 결혼도 했고, 나처럼 예쁜 자식을 낳았으니까요."


사실 나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 아빠 시대에 청년들은 참 힘들게 살고 있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자식까지 낳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는 환경이거든. 아빠도 나 혼자 살아가기에 참 벅차고 어렸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아빠는 어릴 때 사랑받지 못했어. 부모님은 일하느라 바빴고,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조부모님도 일하시느라 바쁘셨지. 안타깝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가족끼리 단란하게 여행을 가거나 무언가 행복했던 기억은 없었어. 항상 늦게 들어오는 부모님의 모습 아니면 다투는 모습을 봤단다. 


가족이라는 건 좋은 관계로 만난다면 정말 대단하고 엄청난 선물이지만 나쁜 관계로 만난다면 평생을 쫓아다니는 질긴 악연이 될 수도 있단다. 아빠의 경우엔 후자에 가까웠어. 너무 젊은 나이에 결혼한 부모님은 세상을 알아가고 자유롭게 청춘을 펼쳐야 할 나이에 아빠와 삼촌을 키우느라 힘들었고 그런 힘듦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셨어. 그것들은 다소 거칠고 폭력적으로 풀리는 경우가 많았지.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아빠는 자연스레 가족은 좋지 않은 관계라는 무의식이 생긴 것 같아.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빠가 나중에 가정을 꾸리더라도 좋은 가정을 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 어쩌면 스스로 좋은 가정을 꾸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생각일까? 내가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고 내가 만들 가정도 어려울까? 가타카라는 영화를 보면 미래시대에 사람의 DNA를 통해 그 사람의 생존기간, 질병, 범죄 유무 등 거의 모든 걸 태어나는 순간 알게 되는 이야기가 나와. (네가 사는 세상에 그런 기술은 제발 없길)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약한 심장으로 인해 30세 이전에 죽는다는 판정을 받지만 그걸 극복하고 자신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된단다.


이 이야기에서 넌 뭘 느끼니? 사람은 태어날 때 자신의 환경을 선택할 수 없어. 내 성별이나 지리적 환경 같은 것들 말이지. 하지만 우린 그걸 개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더 나은 방향'이라는 거야. 완전 싹 바꿀 순 없겠지. 리셋해서 다시 태어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주어진 길에서 더 나은 방향은 볼 수 있어.


아빠는 너를 통해 더 나은 방향을 보기로 했단다. 멍청하게도 이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빠가 좋지 않은 가정환경을 겪었다고 해서 제이 네가 살아갈 가정환경이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인 것이지.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려워. 과연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지금도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인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꾸린다고 해도 사랑을 못 받은 아빠가 제이 너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단다. 이건 아빠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야. 메마르고 거칠어져 아무도 찾지 않는 땅에 무언가 피워내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물을 부어보는 거지. 그리고 네가 미래에 이 편지를 보는 그 순간. 아빠는 메마른 땅에서 제이 너라는 아주 사랑스럽고 예쁜 꽃을 피워낸 거란다. 


제이야.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단다. '시궁창 같은 곳에서도 누군가는 별을 본다.' 널 만나는 그 순간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그리고 혹시 네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고개를 들어 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분명 어렵고 힘들 거야.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고개를 들어보렴. 아빠가 태어나지도 않은 널 믿고 사랑하듯, 너도 아직 다다를 수 없는 별을 보길 바란다.



사랑과 따뜻한 포옹을 전하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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