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지우기 Jan 10. 2022

고백이 힘들 땐, '마흔 번의 겨울'을 이용하자.

셰익스피어 소네트 2번

A  마흔 번 겨울이 이마를 에워싸고

B  아름다운 벌판에다 참호를 깊이 파면

A  뭇 시선이 쏠리는 청춘의 차림새는

B  볼품없이 떨어진 옷자락이 돼버려서


C  아름다운 당신은 어디 갔나요?

D  청춘 시절, 보화의 행방을 물을 때

C  움푹 파인 눈 속에 들었다고 대답하면

D  한량없는 수치요 쓸모없는 찬미예요.


E  아름다운 걸 투자해서 '잘생긴 이 아이가

F  내 평생의 결산이고 내 나이의 핑계요'

E  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의 아름다움이

F  당신 거라 밝혀져서 높이 칭찬할 테니까.


    G  그래서 당신은 청춘을 소유하며

    G  차가운 당신의 피는 더워져요.




1번 시로는 남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지 여자는 본격적으로 꽃미남 귀족 청년에게 나이 듦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남자가 얼마나 잘 생겼으면 이렇게 얘기할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이 여자가 얼마나 그 남자를 사랑했으면 이랬을까 싶기도 하다.



전략 자체는 1번과 동일하지만 2번에서는 시간을 등장시킨다. 보통 우리는 '당신이 늙어버리면, 시간이 흘러'와 같은 직접 묘사를 할 텐데 셰익스피어는 아주 매력적이면서 공격적인 이미지를 사용한다. '마흔 번의 겨울이 이마를 에워싸며' 라며 첫 구에서 겨울이 이마라는 궁전을 에워싸는 것으로 묘사했다. 곧 참호를 파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주름이 생기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전투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나이 듦에 대한 사실을 전투에 대한 이미지로 묘사하며 이 여성은 청년에게 겉으론 부드러워 보이지만 메시지는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것이다. 꽃미남 청년은 이제 자신의 노년을 처참한 전투 속 한 장면으로 상상할 것이다. 자신의 미모를 빼앗으러 온 시간과의 전쟁으로. 참고로 여기서 마흔 번은 청년의 나이가 20대라 친다면 청년의 60세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청년의 멘털을 살짝 흔들어 준 뒤에 여자는 해결책으로 또 자손 카드를 꺼낸다. 너의 이 아름다운 청춘을 그냥 내버려 두면 마흔 번의 겨울에게 처참하게 빼앗길 것이고 빼앗긴 뒤에 '한때 나는 꽃미남이었다.'라고 말해봤자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는 것. 고로 아이를 갖게 되면 당신의 아름다움이 증명되고 당신은 그것을 잃지 않게 된다는 것.



당신은 이 묘사를 어떻게든 이용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느낄 때, 나르시시즘에 빠질 정도 일 때 (혹은 빠졌을 때) 상대에게 그 아름다움을 마흔 번의 겨울에게 다 빼앗기기 전에 지켜야 한다고 그걸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너무 사랑하니 결혼해달라고 매달리는 것보다는 전략적이면서도 아주 낭만적인 고백 방법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썸타는 상대의 외모가 너무 아름다울때 고백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