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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씨네 Jun 30. 2020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2015)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사랑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것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답게 <더 랍스터>는 그만의 세계관이 있다. 이 세계관에서 세상은 도시, 호텔, 숲이라는 세 공간으로 나뉘며, 도시는 오직 커플들만이 생활하며 살아가는 공간, 호텔은 싱글들이 연인을 찾아 도시로 가기 위해 거치는 공간이며, 호텔 투숙객들이 주어진 기간 내에 연인 찾기를 실패하면 동물로 변하여 가는 곳이 숲이다.


남자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에 들어간다. 호텔에서 짝 찾기에 실패한 남자는 호텔을 탈출하여 숲에 사는 독신주의자들의 무리에 끼지만 곧 이 곳의 규칙을 깨고 같은 근시를 가진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대가로 여자는 눈이 멀고 둘은 도시로 떠난다.


영화 <더 랍스터>의 한 스틸컷, 호텔은 사랑만을 강요한다


바이섹슈얼이라는 남자는 헤테로 섹슈얼과 호모 섹슈얼 중에 택해야 한다. 신발 사이즈는 44 반이지만 44와 45 중 택해야 한다. 절름발이 남자처럼 상대를 속이고 커플이 되는 것도 못하고 무정한 여자처럼 사냥을 잘해서 기간을 연장시키는 것도 못한다. 이도 저도 아닌 남자는 커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호텔에서는 사랑을 찾지 못하고 싱글만이 자유로운 숲에서는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사랑을 찾는다. 이 세계관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에서의 커플들은 결점을 하나씩 공유한다. 절름발이 남자는 절름발이 여자를 찾지 못하고 그 대신 인위적인 코피를 만들어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커플이 된다. 비정한 여자와 커플이 되고 싶은 남자는 비정한 척하려 하지만 그 여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커플은 결국 깨진다. 근시로 하나 된 커플의 여자는 숲의 규율을 위반한 대가로 장님이 된다. 그들을 커플로 만들어주었던 근시라는 공통점이 사라져 버리고 그들은 비밀스러운 몸짓 언어 조차 나눌 수 없게 되자 도시행을 택하고 남자는 여자를 따라 장님이 되고자 한다. 마치 그 공통된 결점이 사랑의 존속 이유인 듯하다. 영화 초반에서 남자가 아내에게 버림받았을 때에도 남자에게 중요한 건 단 한 가지이다, “그 남자는 안경을 꼈어, 콘택트 렌즈를 꼈어?”



영화 <더 랍스터>의 포스터


영화의 결말은 열린 결말로서, 남자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여자를 따라 장님이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 남아있다. 관객은 그들의 로맨스를 존중하여 ‘그랬을 것이다’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사회의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독신주의자 무리의 리더에 의해 장님이 된 여자가 “왜 내 눈을 멀게 한 거야? 그를 장님으로 만들 수도 있었잖아”라고 하는 장면을 보고 나면 이들의 사랑의 진실성이 의심된다. 호텔의 매니저 부부가 독신주의자들에 의해 포획되었을 때 남자가 여자를 쏘고 살아남으려 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결국 이 세계관에서는 호텔에서나 숲 속에서나 (아마 도시에서도) 진실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을 통제하는 곳에서는 사랑이 피어오르지 못한다. 포스터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상대의 모습을 배경의 색과 동일하게 지워 마치 투명인간을 안고 있는 듯하다. 이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들이 사랑에 빠진 건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기로 결정한 무형의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상에 속아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 사람’이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적당한 상대―비슷한 결점을 가진―를 고른 것이다. 다시 엔딩으로 돌아가면, 남자는 꼭 이 여자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연인을 찾아 떠나는 게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보다 편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갈 만큼 이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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