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펑예 Aug 06. 2024

나를 울린 그 그림책

왜 그렇게 눈물은 잘 나는지

오늘 어쩌다 보니 세 번이나 눈물이 차올랐다.


두 번은 도서관에서다. 그림책 읽다가 울컥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오늘도 그랬던 것이다. 특정 책만 되풀이해 읽는 습성이 있는 고망이의 보조를 맞춰주다가 새롭게 흥미를 끌만한 책이 없나 책장을 둘러보는 중 <방귀차>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고망이가 유아코너 방을 잠깐 나갔다 돌아와서는 "방귀 뀌었다"라고 했고 그걸로 장난을 좀 치던 차였다.


"고망아, <방귀차>래~ 아이, 냄새 나~"


방귀차는 예상 대로 소독차를 의미했다. 배경은 70,80년 대 춘천.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다. 방귀차가 동네에 등장하자 주인공 화자가 신나게 차를 쫓아간다. 이 장면에선 나도 절로 옛 기억이 떠올라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매캐한 소독 냄새가 뭐가 좋다고 그 흰 연기를 부지런히 쫓아갔었는지.


"하지만 내가 방귀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


재미난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가 다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방귀차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자리를 떠 딴 곳으로 가버리는 고망이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기 새끼 저리 가라고 손을 휘젓곤 하던 상회 아줌마도, 혀를 끌끌 차고 바라보던 삼거리 아도 사라져서란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아서. 마치 동호, 동이의 친구가 된 것 같아서. 이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하루 종일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지고 멸시도 슬픔도 외로움도 잠시 잊고 지쳐 잠들 수 있다.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방귀차를 아쉬운 듯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에 울컥해 눈물이 후드득. 사실 그 앞장부터 이미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서.

가난이 일상이던 산업화 초기.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저 밖에서 실컷 뛰어놀고 싶을 뿐인데, 하루하루 상처와 외로움을 견디고 살아야 했을 이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또 한 권은 <너의 숲으로>라는 책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숲이 있다는 작가의 말이 눈길을 끈다. 왼쪽 장은 아빠의 이야기고 오른쪽 장은 딸의 이야기. 이야기는 서로 떨어져 있는 이들이 메시지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둘은 각자의 세상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각자의 숲으로 떠난다. 아빠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교통체증을 뚫고 출근한다. 그리고 아이는 작은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길을 찾아 자신의 숲으로 떠난다. 아빠는 업무에 짓눌리고 이따금 거칠고 따가운 소리를 견뎌내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이 몹시 그립다.

하지만 마지막엔 '결단'을 내린다. 해야 돼라는 말에 가둔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딸의 숲으로 떠난다.


                                                                                                                    



<방귀차>도 그렇지만 <너의 숲으로>는 절대적으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몇 장 안 되는 회사원 아빠의 일상이지만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런 설득력은 수채화 풍으로 그려진 그림의 힘인 듯하다. 물 머금은, 은은한 색깔들의 표현은 어쩐지 슬프고 애틋한 분위기를 만든다. 파란색으로 표현된 아빠의 일상은 더더욱 블루(우울)하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네가 더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같이 울컥할 수밖에 없는... 흡..


너의 숲으로 간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림을 곧이곧대로 따라간다면 기러기 아빠가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인데 어찌 보면 죽은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이건 너무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뒷전으로 하지 말자, 언제든 아이를 만나고 들여다보자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유아 코너 방을 나갔다 돌아온 고망이가 내가 급히 눈물을 닦는 걸 보고는 왜 그러냐는 듯이 다가왔다.

"이 책이 너무 슬펐어."라고 말했더니 내 목을 안아주는 녀석.

엄마 위로해주는 거야? 언제 이렇게 커버렸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보고 싶은 걸 엄마는 미루지 않을 거야. 잔잔한 감동을 또 한 차례 느끼려는 순간, 내 어깨를 타고 등 뒤로 물레방아를 해버리는 고.삐.풀.린. 망.아.지.

내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수채화풍이면 좋겠다는 로망이 있는데 현실은 단선으로 처리된 코믹 웹툰 풍이 어울린다.




#방귀차

#너의숲으로

#그림책작가_존경

#사람_올라타는거_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대가족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