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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Sep 03. 2024

워킹맘이 되었다

다시 워킹맘이 되었다.


본래 하던 출판업으로 복귀했다는 건 아니다. 남편 J의 직업적 영향으로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향했다.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J는 4년 전부터 페이 셰프에서 오너 셰프가 되었고 자연 나도 운영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인력이 풀일 경우엔 인사/회계팀적 수행(주로 세무사 컨택)만 하면 되지만 인력이 빌 시에는 뛰어들어 그 구멍을 매워야 했다. 사실 가게를 같이 꾸려보자고 으쌰으쌰 준비하던 중 고망이가 생겨 육아로 전업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복귀인 셈이기도 하다. 


한때 일명 '쿡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송 프로그램들을 점령하던 셰프 붐도 꺼진 지 오래고 영리한 MZ 세대들이 셰프의 실상을 알게 되었나보다. 열정 페이로 긴 수행을 거쳐야 하는, 몸은 고달프고 워라밸은 붕괴된 직종이라는 것을.(근로복지법이 개선되어 J를 비롯 그 세대 셰프들 입에선 "라떼는 안 그랬다"가 입버릇처럼 나올 정도로 좋아졌지만 여전히 힘든 편에 속하는 직종이긴 하다.)  

손발이 잘 맞던 직원들이 본인들의 가게를 오픈한다며 썰물처럼 빠지자 한동안은 직원 구경이 거의 유니콘급이었다. 면접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요행히 입사까지 결정돼도 어느 날 갑자기 잠수 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일도 많았다. 육체노동을 좀 줄이고자 식기세척기를 들인 첫날 J는 "인간 따윈 필요 없어. 기계 만만세!"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사는 잘 돼 J가 혼자서 갈리고 있으니 가족으로서 가만있을 수 있나. 부모님께 부탁해 고망이를 맡기고 달려가 서빙에 주방보조에 심부름대행까지 오늘 하루 가게가 '무사히' 운영될 수 있는 전방위의 일을 했다. 내가 안 될 때는 시어머니가 오시기도 했고 그 때문에 친정 가족들은 고망이를 보고 있었으니 괜히 가족경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그 해가 J의 삼재라고 하더니 해를 넘기고 드디어 우리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좋은 직원들이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고망이까지 어린이집에 입소하여 나로선 전에 없던 여유가 찾아왔다. 브런치를 즐기며 사람들을 만나고 테니스 배우고 책 보고 유튜브 보고.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했던 것도 그러한 심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J가 2호점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부터 농담처럼 하기도 했지만 나도 그간 자영업자 패치가 장착되었는지 곧장 "그래,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스스로도 좀 당황스럽다. 어째서 바로, 흔쾌히 긍정했을까. 알고보니 자영업이 적성에 맞는 걸까 아님 J에게 깊은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가, 혹시 운명인가. 모션(motion)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모션(emotion)이라고 하던데 어쨌든 내 감정은 '안 내킴'보다는 '내킴'이었다. 

 그래서 폐업 100만 시대에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우리는 또 가게를 오픈했다. 예산을 잡아 보고 가게 자리를 보러 다닐 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마치 첫째 낳고 키우며 힘들었던 것을 망각하고 둘째를 낳는 것처럼. 아이는 그렇게 생각해 "외동 확정"을 고수하면서도 가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오픈 5일째를 맞는 현재. J는 한 달이 넘게 재료 준비, 메뉴 연구로 새벽에나 겨우 집에 들어오고 있다. 나는 고망이를 하원시키고 시댁에 인도한 후 4~5시간을 함께 일하다 돌아온다. 오픈 초반의 뚝딱거림, 험난함을 함께 해결해 나갈 사람은 역시 가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가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일 수밖에. 


늦은 밤 돌아와서 고망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버려서는 9시에 겨우 일어난다. 그나마 아침 준비 시간이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함께하는 시간이다. 5일째 저녁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지 못하지만 아직은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망이. 오늘 아침엔 맨날 끌려가서 하는 세수하기를 스스로 해냈다. 

엄마 아빠가 충혈된 눈으로 가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의하는 동안 욕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녀석을 따라 들어갔다. 물을 얼굴에 끼얹는 게 서툴러 조그마한 손을 눈, 코, 입에 갖다 대 문지르는 시늉을 열심히 하고 있는, 그 귀여운 모습을 양 옆으로 얼굴을 갖다 대며 지켜봤다. 


"스스로 하다니 대단하다~ 엄마 아빠는 깜짝 놀랐는걸."


양 옆으로 아주 호들갑을 떨며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축축한 손으로 우리 얼굴을 한 팔씩 껴안는 고망이는 힘있는 응원으로 보답한다. 


"우리 가족 사랑해요~"


함께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대신 행복한 순간을 늘려보자. 

휴일이여, 빨리 오라~





#어찌저찌_발행_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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