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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Dec 03. 2024

아름다운 것은 보고 싶지만 경쟁은 싫어

스테이지 파이터 과몰입 리뷰

요즘 빠져서 보는 쇼프로그램이 생겼다. 바로 MNET에서 하는 <스테이지 파이터>다. 장안의 화제였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제작진이 만든 후속 프로그램인데 이번엔 순수 무용 대결이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세 영역의 남자 무용수들이 출전하여 매회 새로운 미션을 두고 서로 경쟁하여 퍼스트(주역), 세컨드(조역), 언더(군무)라는 계급을 얻고 더 상위 계급으로 이동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첫회를 우연히 끝까지 보았고, 보고 나서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의 열정적이고 멋진 청년들이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다 있구나!


재능 있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는 것은 왜 이렇게 즐거운지. 게다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야말로 보는 내내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무용이라는 것 자체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선지 무용수들이 몰입해서 보여주는 그 몸의 언어(?)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특히 이번엔 가장 낯선 장르인 한국무용의 매력에 푹 빠졌다. 뭐랄까 묵직하다가도 가볍고 날카롭다가도 부드럽고 하늘하늘거리는 천 같은 뉘앙스도 있고. 정반대의 요소들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춤이랄까?  


3회 차에는 K팝에 맞춰 각 장르마다 댄스필름을 찍었는데, 태평성대 시기의 왕과 그 신하들, 뱀파이어와 헌터, 데블 스완과 엔젤 스완 컨셉으로 진행되어 무용수들이 오디션을 거쳐 주역, 조역, 군무에 배정되고 한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것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쇼프로잖아 라며 웃어넘길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목에 걸린다. 멋지게 미션을 마무리하고서도 곧장 그것을 등수 매겨 승급이니 강등이니를 따진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단한 재미 포인트라는 듯 프로그램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프로듀스 101로 재미 봤던 제작진이라서일까.

개성 있고 열정 있는 존재들을 보는 재미로 극을 끌고 나갈 수 없나. 쥐어짜는 간절함과 연출된 경쟁 구도는 이제 좀 피로한데 말이다. 댓글을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한 아닌가 보다. 궁금하지도 않은 등수 매기기는 그만하고 무용수들 간의 협업이나 우정 쌓기를  보여달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다.

역시 시대 감성이 달라진 거다. 경쟁, 생존, 등수 매기기에 지쳐버렸고 그것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길 바란다. 최근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보궐 선거에서 일제 고사를 부활시킨다고 했던 후보자가 학군지 학부모들에게 몰표를 받고도 고배를 마신 것도 그 방증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줬다면 더 크게 졌을 것이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고망이가 커서 저들 사이에 있게 된다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정확히는 저런 몸 좋은 훈남에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이라면, 하는 단순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극 소수만이 살아남아 자신의 춤을 출 수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해보라고 적극 권하게 되진 않을 것 같다. 마지막회 차에서 우리끼리만 보던 공연을 더 알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발레는 좀 상황이 낫겠지만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은 그 정도로 프로로 살기 쉽지 않은 거다. 그리고 테크닉적인 것이 중시되다 보니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것도 걱정된다.


어쨌거나 순수 무용, 특히 한국 무용의 트렌드를 보여줬다는 점 그리고 여러 매력적인 무용수들을 소개해준 부분에선 의의가 분명 있는 프로그램이다. 나조차도 시간만 되면 무용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추는 사람들, 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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