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기.
갑작스레 거대한 미션이 떨어졌다. 느린 둥이 고망이로 말하자면, 친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올해부터야 생겼다. 아직 감정 표현은 물론 상대의 기색, 분위기를 살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뭔가를 좋아하면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강하다. 생각할수록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이러다 A가 도저히 고망이와 같이 다닐 수 없다고 하는 거 아닐까? 원을 나가달라는 요구까지 듣는다면?
우리에게 거의 완벽한 이 어린이집을 다닐 수 없게 된다는 건,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망이를 담당한 여러 선생님들과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상의를 했다.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은 육아지원센터 심리치료사와 우리 언어치료 선생님에게 따로 코칭을 받을 정도로 애써주셨다. 문제 상황이 생길 때 즉시 대처하고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것을 인지하고 신경써주셨던 것 같다.
솔루션은 어찌 보면 심플했다. 그 상황을 두고 친구의 감정과 해선 안될 행동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문제 상황이 생기면 일단 떨어뜨려놓고 고망이에게 아이컨택 하며 천천히 말해준다.
"고망이가 계속 이렇게 하면 A가 불편하고 힘들어. 고망이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런 행동이 싫은 거야."
너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네 행동들, 상황들을 불편해하는 거라고 말해주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싶다. 그러면 그 행동을 안 하면 된다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을 계속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 행동으로 푸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중간중간 현타가 오는 순간들도 있었다. 언어치료 수업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놀이식으로 진행하는 부분이 많은데 담임 선생님과 상담 후 언어치료 선생님도 친구들과의 트러블 상황을 많이 다루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지지난주 수업 때는 고망이가 중간부터 아예 수업 참여를 안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생님이 여러 번 부르고 "선생님, 간다~"고 하는데도 전혀 미동 없이 등을 돌려 혼자 놀았다. 고망이 전문가인 내 눈에 저 등은 '매우 언짢음'을 말하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온통 그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하원 길에 담임 선생님과 센터에 가면 센터 선생님과, 언어치료 선생님, J, 동생, 할머니와 만나기만 하면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곁엔 항상 고망이가 있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았을 것이고 스트레스도 받았을 법하다.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뿐인데 그걸로 온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저 조그마한 등이 그렇게 느끼고 있으려나 싶어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다행히, 아픔은 잠시였다. 나는 고망이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잠과 꿈의 영역처럼 고망이의 성장 속도만큼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난주 어린이집 정기 상담에서 선생님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주부터 고망이가 싹 달라졌어요. A의 옆자리에만 않으려 한다든지 A만 쫓아다닌다든지 하는 행동도 없고 A가 안 보여 속상했어요,라고 말로 표현해주고요. 그러니까 A도 먼저 고망이에게 다가가고 서로 잘 놀아요."
알려준 내용을 이해해 적절히 실행하기까지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고 전문가분들도 그랬는데, 어떻게 몇주 만에 달라질 수 있지? 선생님께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아주' 긍정적으로 말해주신 거 아닌가? 상담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러 놀이실로 갔더니 선생님들이 "고망이 딱 들켰네~" 한다. 찾아보니 A와 둘이서 껴안고 아주 꽁냥꽁냥이었다. 오늘은 밉다가도 내일은 너무 좋고 오늘은 나쁜 행동을 서슴지 않아도 내일은 꾹 참고 안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감정도 그렇고 그 잠재력이 새삼 참 신비롭다.
첫사랑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운을 뗐으나 실패로 끝난 것도 아니다. 아니지,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니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성공 경험을 했다. 상대가 싫어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은 어찌보면 관계를 위한 첫 원칙이다. 고망아, 우리 큰 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