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약만큼 단순할 수 있다면
최근 힘든 일이 있었냐는 의사의 물음에 "딱히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라는 말에 편히 잘 수 있게 수면제를 부탁했다. 그의 질문에 한 듯 안 한 듯한 답변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감기나 몸살 외에는 병원에 가지 않는 편이라 평소와 다른 이유로 손에 들린 처방전이 어색하기만 하다.
'차라리 몸에 이상이 있었으면..' 은연중에 그러길 바랐다. 그럼 단순 처치든, 수술이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의사는 증상을 듣고 최선을 다해 진료했지만, 예상 밖에 말이 불편하기만 했다. 불안장애라니. 도리어 나약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 같았다. 그가 짐짓 내린 진단은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엔 충분치 않았다.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내밀자, 약사들끼리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걸까. 그곳에 있던 환자는 나뿐인데 약봉지를 받기까지 다른 날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한 알은 신경 안정제, 한 알은 수면제예요.
자기 30분 전에 드시면 됩니다."
약사의 짧은 설명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팠던 시간에 비해 명료한 설명과 고작 약 두 알에 해결되는 일이었다는 것에서 내 상황과 괴리감을 느꼈다. 복잡한 마음에 비해 참 단순한 처방이다.
밖을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우산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들이친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비에 온몸이 금세 흠뻑 젖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젖은 옷은 갈아 입으면 되지만 주저 앉은 마음은 어떻게 일으켜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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