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발총과 대포의 총성없는 전쟁
나는 우리 외할머니를 '할미'라 부른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 손에서 크게 된 9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할미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병이 난다며, 늘 쉬지 않고 논밭을 바쁘게 다녔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 일은 늦은 오후에나 끝이 났는데, 할미는 그 생활을 아픈 날에도 궂은날에도 거르지 않았다. 어릴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는 그를 보며 어른이라면 당연지사라 생각했다. 그런 할미를 다시 보게 된 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시절 할미는 '성실의 표본'이자 진정한 '워커홀릭'이었다.
쉼 없이 일하는 할미를 따라 어린 나도 집과 논두렁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다. 할미 집에 살게 되면서 귀가 어두운 그의 통역관(?)이 됐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집에 찾아왔다. 할미는 카랑카랑한 손녀 목소리를 가장 잘 알아들었고, 그에게 전할 말들은 자연스레 나를 거쳐갔다. 언급한 적은 없지만 다들 야무진 전달자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고객만족을 위해 목청을 한 껏 올렸고 저녁이면 그 여파로 목이 쉬기도 했다. 그래서 였던 것 같다, ‘할머니’가 ‘할미’가 된 건. 한 글자라도 줄여 목을 보호하려는 나름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거기에 우리 동네 구성원의 절반이 '할머니들'이시기에, 차별화를 두기 위해선 비슷하지만 색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할미'는 단순한 줄임말을 넘어서 특별함도 담고 있다. 나이 든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 혹은 엄마의 엄마라는 뜻에만 머물지 않는다. '할미'라는 이름은 상황에 따라 역할이 변한다. 나를 챙겨줄 때는 엄마 같기도, 장난치며 서로 놀릴 때는 친구 같기도 하다. 할미가 삐칠 때는 애보다 더하게 느껴진다.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관계의 모양을 지닌 단어가 바로 '할미'다. 이런 관계가 된 이유에는 긴 시간을 함께한 덕분도 있지만, 그보다 순간마다 일어났던 '다툼'의 공이 컸다.
사춘기부터 시작해 할미와 나는 지겹도록 지지고 볶았다. 이건 귀여운 표현이고, 총성만 없을 뿐 꼭 전쟁 같았다. 할미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나를 '따발총'이라 불렀고, 나는 그 부름에 부응하듯 필사적으로 대들었다. 그에 비하면 할미는 전략적인 전술가였다. 손녀가 '두두두두' 연속해서 쉬지 않고 쏘아대다 지칠 즈음, 할미는 강력한 한 발을 터트리고 사라졌다. 그건 마치 ‘대포’ 같았다. 할미의 말이 마음을 '뻥'하고 뚫고 지나가면 나는 그 영향으로 두 눈만 끔뻑이며 멍하니 서있었다. 오랜 세월로 쌓은 내공은 조무래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쟁의 역사는 내가 독립하면서 막을 내렸다. 분기별로 맞이하는 손님 신세가 되니, 얼굴만 봐도 좋은 사이가 됐다. 손녀는 더 이상 할미를 보고 떽떽거리지 않았고, 할미는 별난 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만큼 관계에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후로 할미 집은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별장이 됐다. 편히 먹고, 자고, 웃고 떠들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힘들게 줄였던 몸무게도, 퍽퍽한 삶에 나가떨어진 정신도 원래대로 회복돼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고 내려갔던 것 같다. 지친 몸과 마음이 괜찮아지길 바라는 맘으로 먼 길을 향했다.
"할미, 할미."
"제인이 왔냐?"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할미 목소리. 눈물은 다 빼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듣자마자 또 왈칵 쏟아졌다. "왜 우냐? 뭔 일이 있냐?" 할미는 대답 없는 나를 안고 두터운 손으로 한참을 토닥거리다, 무거운 가방을 받아 드셨다. '이제 진짜 쉴 수 있겠다' 어깨가 가벼워지자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미가 가져간 건 가방이었는데, 꼭 마음의 짐이 덜어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