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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Mar 07. 2022

여성의 활약은 특별하지 않다,
당연할 뿐

웹툰 〈용의 귀로〉호산 작가와의 여성의 날 특집 인터뷰  



익히 ‘소년 만화’라 불리는 작품은 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삼는 만화라고 한다. 대부분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는 주제로 그려지는데, 주인공은 대개 남성이다. ‘소년(小年)’이라는 단어는 남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년 만화에서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치 공식처럼 소년 만화는 남성 주인공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한다.


〈용의 귀로〉는 그래서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지 않고 당연한 건데 특별해 보인다. 호산 작가는 본인이 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렸을 뿐이고, 주인공의 성별 하나만 여성으로 바꿨을 뿐이다. ‘여성’ 주인공이라 특별해 보이는 게 아니다. 단지 ‘주인공’의 성장이 특별한 것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호산 작가를 위해 내가 준비한 질문 중에서는 아차 싶은 것들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매몰되어 작성한 질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산 작가는 그냥 그렸을 뿐이다. 아직 편협한 내 시선이 특별하다고 만들었을 뿐.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 정리가 모두 마무리되면 〈용의 귀로〉를 한 번 더 정독할 생각이다. 기존의 일반적인 시선과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말이다.



본인 및 작품 소개를 부탁합니다.

필명 ‘호산’으로 활동 중입니다. 데뷔작 웹툰 〈용의 귀로〉가 최근 완결, 단행본 작업 중이고, 텀블벅에서 펀딩했던 비 로맨스 여성 주연 앤솔로지 〈여명기〉에 ‘시스터 후드’라는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여성의 모험’을 주제로 한 〈용의 귀로〉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면요?

사실 ‘여성의 모험’이 주제라는 말은 조금 묘하게 느껴져요. 어릴 때부터 주인공이 싸우며 성장하는 소년 만화를 즐겨 봤는데, 소년 만화 속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잖아요. 여성은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요. 그 시절엔 그런 포지션을 당연시 여겼는데, 만화를 그리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큰 벽이 되더라고요. 제가 ‘성취를 좋아하는 여성’ 이라서요. 만화를 그리려면 제 캐릭터들과 공감하고 이입해야 하는데, 주인공은 남자라 디테일한 표현이 어렵지, 보조 역할에만 머무르는 여성 캐릭터는 이해가 안 가지. 그런 괴리감과 한계에 굉장히 오래 부딪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어요. ‘평소에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실컷 그리되 주인공을 여성으로 하자’ 그럼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고요. 데뷔 전에 남자를 주인공으로 그릴 때 항상 ‘이 캐릭터는 남자니까‘ 라는 생각을 거쳐야 했는데, 여성가 주인공이면 저와 같은 입장일 테니 좀 더 직관적으로 그릴 수 있잖아요. 어릴 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성이 나서서 싸우고 성장하면 안 될 게 뭐예요? 제가 느꼈던 괴리감을 지금도 느끼는 여성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그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리게 되었어요.



만약 어릴 때 〈용의 귀로〉를 봤다면 그런 괴리감은 사라졌을까요?

사실 어린 시절엔 다양한 작품을 접하잖아요. 그러니 〈용의 귀로〉 한 작품만으로 시야가 바뀌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제 작품을 보는 독자들이 마음 편하게 좋아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한 명 정도 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느낄 만한 작품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기분 좋게 추억하실만한 작품이 되면 좋겠네요.



익히 봤던 ‘소년’ 만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캐릭터 구축이 더 중요했을 것 같은데, 따로 신경 쓴 포인트가 있을까요?

오히려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여성 서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그래서 “기존의 소년 만화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일반적인 소년 만화에 사용하는 클리셰를 정말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단지 그게 여성이었을 뿐이죠. 굳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의상을 캐릭터의 직업이나 생활, 성격에 맞춰 입히는 것 정도였어요.


실제로 주변에서 만나는 여성들을 떠올려 보면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다만 세상에 이미 러브 라인이 포함된 작품이나 여성의 성적인 부분을 부각하는 작품이 많아서 그런 걸 덜 하려고 한 건 있어요. 이미 많은 상황에서 저까지 같이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럼 두 여성 주인공의 특징은 어떻게 설정하게 되었나요.

원래는 작품을 하려고 만든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둘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네요(웃음). 외형적으로는 초기 설정에서 완전히 달라진 부분도, 그대로 가져간 부분도 있습니다. 가린은 근육질 체형의 강하고 무뚝뚝한 몬스터 사냥꾼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겜마는 가린과의 대비감을 주기 위해 더 어린 나이, 작은 키, 흰 머리에 밝고 말 많은 이미지로 변경했어요.


그리고 ‘용’이라는 설정이 추가되면서 겜마에게 주어진 성장 환경에 따라 성격을 구체화했어요. 이 과정에서 그 나이대 똑똑한 아이들의 성격을 알기 위해 참고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봤습니다. 〈영재발굴단〉이나 〈빨간머리 앤〉, 〈캐럴 버넷의 꼬마 상담소〉, 〈기묘한 이야기〉 등등이요.


등장하는 인물 중 빌런은 ‘남자’인데, 일부러 대척점을 두고 싶었던 것인가요?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사실 가장 빈도 높게 등장한 악당은 여성인 나쟈와 얀이고, 그 외에도 악당으로 나온 여성 캐릭터가 많아요. 그런데 '키 크고, 근육질의 잘생긴' 이상적인 남자 모습의 캐릭터가 라이언뿐이다 보니 다들 인상 깊게 보신 것 같아요. 사실 라이언보다 라이언의 누나나 엄마가 더 나빠 보이지 않나요(웃음)? 딱히 성별을 가지고 선악을 결정하진 않았어요.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건 성별이 아니라 성장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는 성장 환경이 성별에 의해 좌우될 때도 많지만, 〈용의 귀로〉는 판타지 만화니까요.



이 시대와 사회는 여성의 욕망을 터부시하는 듯해요. 만화 속 주인공들은 뚜렷한 욕망이 있고, 스스로 인지하는 것 같은데 이런 사회적 시선을 비틀고 싶었던 건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원래 캐릭터를 움직이려면 각각 욕망이나 목표, 목적, 가치관 등을 설정해야 해요. 그게 캐릭터의 행동에 묻어나온 것 같아요.


연재 중에도 "사회적 시선을 비튼 것 아니냐”는 평을 받는 장면들이 있었거든요. 실은 제가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매번 보던 캐릭터보다는 조금 다른 걸 그리는 편이 덜 질리고 재밌게 그릴 수 있어서 넣었을 뿐입니다(웃음).


독자분들 중에서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는 점을 반겨주시는 분이 많은데,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다른 주제도 봐주시길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만큼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 기대가 컸다는 뜻이니 이해도 갑니다. 〈용의 귀로〉가 처음 등장했을 땐 여성 주연 작품이 지금보다 더 적기도 했고요. 앞으로 여성 주연 작품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독자분들의 감상도 다양해질 거라 생각해요.


그림에 대한 질문도 해보고 싶은데, 작품 속 크리쳐 디자인이 멋져요.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반반씩 섞은 것 같은 모양새인데, 이런 생물을 디자인하는 데에 나름의 철학이 있으신지요.

저만의 철학은 딱히 없어요(웃음). 제가 괴물이나 동물은 잘 그리는 편이 아니거든요. 물론 기본기가 있으니 그릴 수는 있지만, 인간만큼 편하고 능숙하게는 아닌 거죠. 그래서 매번 울면서 작업했답니다(웃음).


그래도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판타지 생물이니 기반이 될 법한 동물을 둘, 셋 정도 섞었고, 기반이 되는 동물과는 다른 생식지에 살거나 다른 특징을 가지도록 비틀었습니다.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디자인이라 느껴서 앞으로 연습을 열심히 하고, 필요하다면 과외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작중 ‘용’은 모방하는 생물로 등장하는데, 작품 내내 중요한 설정으로 쓰입니다. 〈용의 귀로〉는 어른들이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듯한데, 용이 모방한다는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나왔는지 아니면 서사를 어느 정도 설계하고 나중에 끼워 넣은 설정인지요.

어쩌다 맞아떨어졌어요(웃음). 서양 판타지 분위기가 강한 세계관을 그리기로 결정했을 때 꼭 '용'이 등장했으면 싶었어요. 용이 가진 이미지를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동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니 용을 인간화해서 그리는 게 좋겠다 싶었죠.


다만 판타지 소설에서 흔하게 나오는 '폴리모프' 마법처럼 인간으로 변하는 마법은 싫었어요. 인간보다 더 강한 용이 인간으로 변한다는 설정 자체가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용이 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와 설정을 구체화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인간 사이에서 자라 인간을 닮은 용'이라는 설정입니다.


그게 아이라는 점과 잘 맞더라고요. 아이들은 다 어른이나 주변을 모방하면서 성장하니까 그런 점을 더 풀어냈죠. 처음부터 계산했다기보단 그리면서 '하다 보니 맞아떨어졌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용의 귀로〉를 4년 정도 붙잡고 있었는데, 사실 그 기간 동안 생각의 변화가 없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내용을 수정하기도, 빼거나 더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계획했던 내용 반, 우연히 들어가는 내용 반이었던 것 같아요. 가끔은 그러다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읽으면서 작품 속 대사에 감탄할 때가 많았어요. 문장을 가슴에 와 닿게 다듬는 비결도 알려주세요. 

만화를 많이 본 덕이 아닐까요(웃음). 사실 글을 많이 읽고 쓰질 않아서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특출나게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대사를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늘 갖고 있습니다.


저만의 원칙이 있다면 치장하거나 거창한 표현, 미사여구는 빼려고 의식해요. 누구나 쉽게 쓰고, 한 번쯤 떠올리거나 말해볼 법한 말일수록 만화를 읽을 때 독자들이 공감할 거라는 생각을 해요. 거창하게 말할수록 독자와 멀어질 것 같더라고요. 만화도 소통이니 독자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채워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마지막 화엔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당신에게 ‘집’이란?"이라는 질문에 대답하는데,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집이란?

자려고 누웠을 때 가장 편한 곳. 요즘은 한 주의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생활 중이지만, 작업실은 작업실일 뿐이에요(웃음). '작업'을 하는 공간입니다. 사실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자려고 하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잖아요.


쉴 때는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 오는데, 본가에는 장비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어요. 약간 반강제적으로 휴식을 취하게 되는 거죠(웃음). 제가 조바심도 있고, 편히 쉬는 걸 못하는 성격인데 집에 오면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내려놓게 되거든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니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용의 귀로〉 완결이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안그래도 다른 작가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시원섭섭하거나 묘한 기분이었다고 하시던데 전 ‘와 끝났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만 간다!’는 생각뿐이었어요(웃음). 지금은 〈용의 귀로〉 단행본 작업 중인데요. 처음부터 페이지 형태로 작업했던 작품이라 아마 단행본으로 보셨을 때 연출 의도가 더 잘 전해질 거예요.


작품의 대중성을 위해서는 캐릭터의 성비를 맞춰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용의 귀로〉를 기획하시면서도 비슷한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용의 귀로>의 기획 단계에서도 주인공의 성별에 대해 반발이 있었어요. 둘 중 한 명은 남자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요. 또 다른 회사는 BL 장르를 그리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하기도 했고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바를 확실히 밝혔을 때 억지로 바꾸길 강요하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돈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저는 당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큰돈을 버는 것보다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게 편한 길을 택했을 뿐인데, 그걸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오히려 업계 내부보다는 독자들이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도 받아들여지기 위해 우여곡절 중입니다(웃음).


작업 과정에서 지인 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협업하게 되었는지, 협업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초등학생 때부터 인터넷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어요. 그렇게 만났던 친구들과 꾸준히 친하게 지냈는데, 웹툰 업계가 커지면서 많이 작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데뷔 이후 만난 지인들도 있지만, 원래 있던 친구들이 작가가 되는 바람에 주변에 아는 작가분이 많습니다(웃음).


그런데, 작가들 사이에는 서로 어시스턴트로 품앗이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연재 중인 작가는 어시스턴트를 구하기가 힘들고, 쉬는 작가는 고정 수입이 필요할 시기라 상부상조거든요. 그래서 저도 연재 중에는 작품을 쉬는 작가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저 역시 요즘은 다른 작가님을 도와드리는 중이에요.


협업 중에 에피소드가 워낙 많아 하나만 떠올리기 어렵지만, 주변에 늘 좋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하나 꼽자면, 한 어시스턴트님이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휴재 기간에 저와 다른 어시스턴트 분들과 같이 '강아지 팬미팅'을 했어요. 코로나19로 미뤄지긴 했지만, 잠잠해지면 〈용의 귀로〉 뒤풀이를 빌미로 모든 어시스턴트님 집을 돌며 각 가정의 ‘동물 친구들’ 팬미팅을 하기로 했답니다.



웹툰 여성 작가 사이의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떤 방식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워낙 평소에 많은 여성 작가들과 부대끼고, 생활하는 상황이라 특별히 연대 자체를 의식하고 있진 않아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데뷔한 케이스가 많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많이 주고 있었거든요. 주변에서 받은 도움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작가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요(웃음). 그래서 특별히 연대라기보다는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자는 마음입니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항상 서로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생계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더 먼 미래를 염두에 두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당장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밀어내지 않아요. 또한,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베풀기만 하는 것보다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지향해요. 그래야 한쪽이 지치지 않고, 관계도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은 어떤 캐릭터를 보면서 용기를 얻나요.

용기라기보다는 모든 캐릭터가 일정 부분 저를 닮다 보니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전해줄 때가 있어요. 그런 때 후련하더라고요. 그래도 용기를 주는 캐릭터를 굳이 꼽자면 페냐. 첫 친구인 페냐가 준 믿음이 어쩌면 겜마에게 용기를 일으켜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평소에는 작품 속 주인공에게 용기를 얻기보단 작품을 만들었을 작품 너머의 제작자들에게 용기를 얻어요. 어떤 작품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보이는 일은 지난하고, 거대한 노동력이 필요하잖아요. 원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꾸역꾸역 힘든 일을 해내는 다른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또 그 이야기가 나랑 비슷하기까지 하다면 굉장히 반갑고 든든하거든요.


그렇다면 눈여겨본 다른 작가의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 드려요.

웹툰 연재 중일 땐 바빠서 다른 작품을 볼 여유가 쉽게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웹툰보다 다른 매체를 자주 보게 됩니다. 최근 드라마 〈소년 심판〉을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고, 〈구경이〉도 기억에 남아요. 제작자의 의도가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의 선택을 통해 드러날 때 눈여겨보게 돼요.


옆에 세우자니 조금 민망하지만, 특히 〈구경이〉는 〈용의 귀로〉처럼 일반적인 클리셰를 여성 주인공으로 풀어보려는 의욕이 느껴져서 반가웠어요. 인터뷰 등을 찾아보니 제가 작품을 구상했던 시기와 〈구경이〉 각본 집필 시기가 비슷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어딘가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에 실제로 마주치지 않아도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작품을 준비하는 게 굉장히 외로워요. 그런데 나만의 외로움은 아니구나,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그리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싶은 건 항상 많아요. 다만 욕심만큼 속도와 체력이 따라 주지 않을 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순 없잖아요.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되 통장이 빠듯할 것이냐, 조금 더 풍족한 통장이 보장되지만 그리고 싶지 않은 걸 그릴 것이냐를 선택해야겠죠. 그런데 항상 전자를 택하는 것 같아요(웃음).


현재 고려 중인 것은 현대 판타지물, 마녀, 퇴마물이나 일상 드라마 등이에요. 그리고 싶은 단편도 있는데, 공개가 되긴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완성도 안 됐는데 공개부터 고민하는 건 너무 섣부르겠죠(웃음)? 어느 걸 하든, 만화를 그리는 건 참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니 충분히 고민하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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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편집 estelle

이미지 호산 

디자인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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