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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Apr 08. 2022

향기도 과외가 되나요?

‘프루스트 효과'를 아시나요? 14년간 집필해 현재까지도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서사는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되는데요. 이후 특정 향기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은 실제로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설명되면서 ‘프루스트 효과’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처럼 향수는 기억, 그리고 이야기를 불러오는 감각적인 매체입니다.


그렇다면 프루스트 효과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텀블벅에서는 스토리를 읽으면 마치 향기가 나는 듯한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추억의 목욕탕 향수책방 향수그리스로마신화 속 사랑의 향기 처럼요. 향수는 시향 후 구입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텀블벅은 제작 이전에 후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후원자가 시향을 해보지 못하고 후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작자분들은 향수를 구성하는 향 정보를 담은 향 노트는 물론이고 향을 맡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스토리텔링을 펼칩니다. 덕분에 우리는 향기를 맡기 전에 향기를 경험할 수 있지요.

자신이 원하는 향기를 상상할 수 있다면 누구나 향수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향에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미술, 음악처럼 조향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믿는 ‘향기 선생님' 김태형 조향사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김태형

2013년 프랑스로 떠났다. 곧이어 향을 시작했다. 파리에 위치한 향수 대학교 에꼴 슈페리오르 뒤 파르팡(École supérieure du parfum)을 거쳐, 베르사유 소재의 향수 대학원 이집카(ISIPCA)에서 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19년 서울로 돌아와 향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조향 아카데미 아뜰리에 드 가브리엘(Atelier de Gabriel)을 설립하고, 향을 가르치는 프라그랜스 튜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향수 브랜드 '에트르라ÊTRE-LÀ'의 대표 조향사이며 『나는 네Nez입니다』를 저술했다.


향기를 전하는 일

브장송(Besançon)에서 맞이한 두 번째 봄이었다. 오랫동안 염원한 꿈속에 나를 더 깊이 들이밀기 위해 정성스레 ESP(Ecole Supérieure du Parfum) 입학 동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가 징검다리가 되겠다고 밝힌 것은 합격을 위해 던진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글에서 묻어나는 분위기로 보아 나 자신과 결의를 다진 듯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향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2018년 한국에 몇 개월간 머물게 된 나는 계획대로라면 진행되었어야 할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무산되어 여가를 메워줄 소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직 향이었다. 나는 미술이나 음악처럼 향으로도 과외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생에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여 자기소개와 함께 향을 나누겠다는 글을 올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만들어진 블로그에 들어와 구구절절 써놓은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 계획은 내 머릿속에서 점차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에 모르는 전화가 울렸다. 연락을 주신 분은 강의를 듣기 위해 다수의 사람을 모아 오겠다고 했다. 당연히 제안은 수락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수업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가져온 원료들을 몇 번이고 다시 시향하고 밤새 수업 자료들을 뒤적여가며 PPT를 만들었다. 첫 수업은 강남의 어느 스터디룸에서 진행되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 작은 공간 속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었다. 여덟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숨죽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두 입술이 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그 정적이 지금도 생생히 전해진다. 아뜰리에 드 가브리엘(Atelier de Gabriel)이 시작된 날이었다.

흐려지지 않을 소중한 경험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트레이닝할 원료들도 나누어주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나는 본격적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향을 알릴 준비를 하였다. 원료를 보관할 냉장고부터 구비하고 온갖 향 원료들을 사들였으며 프랑스에서 경험한 조향 교육 체계를 본뜬 커리큘럼을 구상하였다.

완성된 커리큘럼의 첫 번째 과정은 원료 연구였다. 조향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원료들을 시향하고 그들의 향 프로필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원료는 조향의 재료이기 때문에 향을 조합하는 것보다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내가 묻힐 물감이 무슨 색인지도 모르고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다음 과정은 향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어코드(Accord) 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어코드는 음악의 화음과 같다. 하나 이상의 원료들이 조합되어 특정한 향을 이루면 어코드가 된다. 마지막 과정에서는 유명 향수 타입의 향기를 구현하는 작업을 하였다. 특히 조향계에서의 모방은 최고의 어머니로 칭송받는다. 이러한 이미테이션(Imitation) 작업을 통해 유명 향수들에 사용된 원료들의 조합을 연구하고 또 다른 방향성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브랜드와 조향사들의 작품을 직접 시향하며 그들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교양 수업 같은 과정도 있었다. 가장 신이 나서 진행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업계에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아름다운 향수들을 시향하는 것은 덤이었으니!


향은 아는 만큼 달리 느껴진다. 한국에서 향 제품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향 문화가 어디쯤 와있는지 고찰해 보아야 한다. 아직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달콤하다’ 나 ‘은은하다’ 와 같은 형용사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자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이들에게 플로랄의 달콤함과 바닐라-발사믹의 달콤함을 구분해 주거나, 은은함이 향 세기를 의미하는지, 혹은 어떤 향 노트가 가진 특징을 의미하는지 물어본 이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향수 A to Z〉는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책이다. 과거의 나처럼 향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품에 껴안고 잠자리에 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바이블이다. 그 정도로 향에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앞으로 이 책과 함께 더 많은 향기를 탐하게 될 것이다. 즉, 이 책은 한국에 향 문화를 널리 퍼뜨릴 서적임이 분명하다.


현재 나의 아뜰리에는 코로나 시국을 비롯한 개인적인 상황들로 인해 공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가끔 내 꿈을 스스로 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허나 이 책을 번역하면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이보다 더 값지게 향을 알리는 방법은 없음을 깨달았다. 동기서를 쓰며 연필을 굳세게 움켜쥐었던 나의 손마디에 아직도 그 눌림 자국이 남아있는가?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계속해서 향을 전하는 것밖에 없다. 오늘날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남겨놓았으니 부디 이 책을 펼치는 당신에게도 그 내음이 스며들길 바란다.


텀블벅에서 향수를 잘 고르기 위한 팁

조향계의 베토벤으로 불린 장 꺄를(Jean Carles)은 후각을 잃은 상태에서도 미스 디오르 오리지날(Miss Dior Original) 같은 명작을 조향해 내었다. 허나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향기를 추측해보라 한다면 이러한 명장께서도 난색을 표했을 듯하다. 이처럼 모니터 속 향수를 선택하는 일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고르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 있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필자의 해답은 평소에 가능한 많은 향 제품을 시향해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서 그치면 안된다. 시향을 하였다면 그 작품이 어떤 향 노트로 이루어져 있는지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요즘은 프라그란티카(Fragrantica)나 오스모즈(Osmoz), 또 ‘향수 A to Z’ 를 편찬한 네 꼴렉띠프(Nez collectif)의 오파르팡(Auparfum) 등 향수를 구성하는 향 노트들의 정보인 올팍티브 피라미드를 제공하는 사이트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점차 데이터 베이스가 쌓이게 되면 생소한 향수를 접하더라도 향 노트들만을 듣고 자연스레 향을 연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예 예상치 못한 향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크리에이터가 전하고자 했던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그 향기만의 매력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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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편집 홍비

디자인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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