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몰
부모의 사랑은 정확히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오는 법이 없죠. 우리는 부모에게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원하지만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여섯 살 데이비드는 무서운 꿈속에서 자신의 불안과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아빠가 일하는 병원에서 본 포르말린 병에 담긴 태아가 자신을 쫓는 꿈이었죠. 연구용으로 보관하는 낙태한 태아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는 동시에 강력한 거부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랄까요.
그의 부모는, 한마디로 ‘냉담한’ 부모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정 표현이 불편한 사람들이죠. 감정은 당황스러운 것이고, 억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칭찬하기보다는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죠. 집안 사정으로 아빠, 형과 떨어져 엄마와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는 심지어 외할머니한테서도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겪습니다.
바늘땀은 바늘로 꿴 자국을 뜻합니다.
집에서 병원 부인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죠. 한 아줌마가 데이비드의 목덜미에 난 혹을 발견합니다. 열한 살 때로, 검사 결과 암으로 판정이 났는데 당시엔 아무도 사실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열네 살 무렵 수술을 받고 나서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되죠.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암이 생긴 이유는 어렸을 때 아빠가 부비강 치료를 한답시고 엑스선을 쏘아댄 탓이었습니다. 엄마는 돈 걱정을 먼저 했죠. 수술마저 엉망이었습니다.
“간단한 수술을 예상하고 병원에 갔건만 수술이 또 다른 수술을 부르지 않나, 마취에서 깨어 보니 목에 달렸던 흉한 혹은 그나마 사라졌지만 거기에 갑상선과 성대 한쪽마저 덤으로 사라져 있지 않나.”
“이제부터는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특징짓게 될 것이다. 손가락 지문이나 눈동자 색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처럼.”
“집엔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네 식구가 드물게 한자리에 모여 엄마 특유의 팍팍하고 탄 맛 나는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면 아빠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엄마는 원망과 억울함으로 똘똘 뭉친 침묵의 껍데기 속으로 후퇴했으며, 형은 형대로, 나는 나대로 침묵을 지켰다. 물론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지만.”
얼기설기 꿰맨 수술 자국을 거울로 처음 보게 된 날, 데이비드는 이상한 꿈을 꿉니다. 비오는 거리에서 엄마를 찾아 헤매는 박쥐가 등장하는 꿈이었죠. 알고 보니 박쥐의 엄마는 다름 아닌 우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산은 금세 와장창 찢어지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살밖에 남지 않은 우산으로는 비를 피할 수가 없죠. 그에게 엄마는, 가족은 어쩌면 찢어진 우산 같은 존재였을까요.
<바늘땀>은 유년 시절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한 작업처럼 보입니다. 유년 시절의 중요한 몇 가지 사건과 악몽을 중심으로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스스로 봉합해 왔는지를 보여주죠. 그 지난한 과정의 끝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성장통이라는 말이 있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전까지 자신을 지탱해온 모든 체계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인 다브로프스키의 말처럼, 정신적 붕괴라는 폭풍우를 이겨내고 새로 태어나려면 폭풍우 한복판에서 폭풍우와 맞서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데이비드 스몰은 꿈속에서 다시 여섯 살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를 집 안에 가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신임을 깨닫고, 마침내 부모를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부모를 이해합니다.
지옥 같은 시절을 함께 통과하며 가슴 아파하다가 마지막에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찍은 마침표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