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책빵

인어 소녀

도나 조 나폴리 / 데이비드 위즈너

by 걍마늘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데 굳이 그 길을 고집합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기어코 사서 고생을 하죠. 목숨을 건 모험을 하고,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사춘기는 그런 시기입니다. 이는 소년, 소녀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른들도 인생의 고비마다 사춘기를 겪습니다. 안전해 보이는 길이 있고, 그 길만 잘 따라가면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들 하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그 길을 벗어나 보고도 싶습니다. 분명치는 않으나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듯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올라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자꾸만 내려갑니다.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막혀 있습니다. 어느덧 해마저 저물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인어 소녀>는 사춘기 소녀와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보호자를 자처하는 유사 아버지인) 넵튠 아저씨는 소녀에게 진짜 세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집(수조) 밖의 세상은 인어 같은 존재를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보호하려고 하죠. 아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이런 넵튠 아저씨의 마음이 족쇄처럼 여겨집니다. (하반신이 물고기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두 다리를 묶어버린 것이죠.) 게다가 그는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쩐지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듯합니다.

소녀를 물 밖으로 이끄는 존재는 다름 아닌 ‘친구’입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이었죠.) 어른들은 당연히 인어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인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꾸준히 인어 소녀 수족관을 방문하는 이유죠.

(목소리가 없는) 인어 소녀는 인간 소녀와 비언어적인 소통을 통해 동질감을 얻고 개성을 발견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소녀는 조금씩 자신이 처한 현실의 부조리함을 깨닫는데, 여기서 첫 번째 반전이 일어나죠. 물고기 꼬리가 벗겨지는(다리가 생기는) 순간입니다.

<인어 소녀>에서 소녀는 크게 두 번의 반전을 겪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번 다 소녀 자신의 의지에 의한 변화라는 점입니다.

두 다리가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일단은 첫걸음을 떼야 합니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움직여야 변합니다.

두 번째 반전은, 인어 공주 이야기를 안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전의 세계를 모두 무너뜨려 버리는 폭풍 같은 변화 끝에 찾아온 기적이었죠.

그러나 소녀의 앞날은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은 두 다리를 가진 보통의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소녀가 겪은 극적인 성장 드라마는 분명 생의 고비마다 큰 힘이 되어 주리라는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