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열일곱 살에 첫 경험을 했다고 한다. 옆집 오빠와, 그녀 집에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빠른 건지, 늦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고,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녀와 춤을 춘 지 다섯 시간 이십 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좋아했던 오빠는 아냐.”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를 헤매다 하얀 파라솔들이 펼쳐진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덥고 건조한 여름 한낮이다. 도시는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것처럼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주변 테이블의 남자들이 우리를 힐긋 돌아본다. 자신의 애인이나, 애인이 되었으면 하는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거나, 마주 앉은 남자들 모두가 몰래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본 것이리라.
그녀가 말했다.
“그만할까?”
나는 종업원이 방금 가져온 <마운틴 듀>를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이 아리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아니야. 계속해.”
눈을 뜨자 그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웃고 있는 듯했다. 한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기분 탓이 아니다. 나는 물고 있던 얼음을 소리 나게 깨뜨려 먹었다.
“그 오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계속 미안하다고 했어. 진짜로 미안한 표정이었다니까. 착한 사람이었어.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였지.”
“왜?”
“미친년처럼 웃었거든.”
“뭐가 그렇게 웃겼는데?”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일행과의 대화 혹은 생각을 다시 이어나갔고 우리는 금세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정신 차려.”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녀가 언제 웃었나 지난밤 일들을 떠올려 봤다. 이름도, 나이도 묻지 말자고 했다. 하룻밤만 열정에 온몸을 맡겨보자고 했다. 하룻밤 만에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겉모습은 포장지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 오빤 어떻게 생각했을까? 혹시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건 아닐까?”
“글쎄… 고등학생을 따먹었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떠벌리고 다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왜 했냐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은 하룻밤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녀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몰라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탄산음료처럼 차갑고 뾰족한 말투다. 속이 쓰렸다.
“그럼 나와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아니, 다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아냐? 작정하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담뱃불을 붙였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도시는 정말로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