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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zip

원더월

Wonderwall

by 걍마늘

조수석 위로 휴대폰을 던졌다.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대로 끝낼 작정인가. 새벽 두 시에 남자와 있다고 했고, 어딘지 묻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편의점 앞에 트럭을 주차한 뒤 달달한 캔 커피로 쓰린 속을 달랜다. 우수수 떨어진 벚꽃 잎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화롭기 그지없다. 휴대폰을 주워 든다. 통화 목록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또다시 울화가 치민다. 나도 모르게 재발신을 하고 말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포기하고 휴대폰을 던지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다짜고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소리쳤다.

“어디야! 너 어딨어 지금!”

침묵이 흘렀다.

“택배 아닌가요?”

아차.

“아, 예… 죄송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어디시죠?”

“삼익빌라 302호요. 몇 시쯤 도착하실까요? 곧 나가봐야 돼서요.”

“예, 금방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망설이다 한 번만 더 걸어 보기로 다. 음성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면 평생 휴대폰을 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삐, 하는 신호음이 떨어졌다.

내가 다 잘못했어. 어제 일에 대해선 두 번 다시 얘기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제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한 번만 들어주면 안 ? 다시는 너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숨을 쉴 수가 없어. 제발 전화 좀 받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괜찮은 거야? 괜찮지? 전화받기 어려우면 나중에라도 꼭 전화 줘. 꼭. 기다릴게. 꼭 전화해 줘.

커피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응답하듯 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세요? 아직 멀었어요?”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다 왔다니까요!”

“아저씨, 진짜 저 지금 나가봐야 돼요. 어디쯤 오셨어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금방 갑니다, 금방 가요. 제가 지금 진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8년을 만났다고요. 저, 두 달만 있으면 적금 타거든요. 대출받으면 집은 못 사도 전세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요. 택배는 알바로 하는 거예요. 알바하면서 자격증도 세 개나 땄어요. 올해 안에는 꼭 취직할 거고요. 그런데, 나는 안 되겠대요. 나는, 나는….”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미쳤지 내가.

트럭 뒤로 가 짐칸을 열었다. 앞으로 빼둔 작은 상자를 집어 든다. 그냥 오라고 할 걸 그랬나. 편의점 근처 빌라다. 감정을 실어 철문을 닫는다.

빌라 안으로 뛰어 들어가 세 칸씩 계단을 오른다. 위쪽에서 철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다. 침내 계단참에서 여자와 마주다. 팔랑거리는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발목과 연두색 플랫 슈즈에 눈길이 머문다.

“죄송합니다.”

숨을 고르며 택배 상자를 내민다. 상자를 받아 든 여자는 그대로 말없이 내 곁을 지나쳐 간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자박자박하는 발소리가 멎는다.

“저기요.”

여자가 나를 불렀다.

“이거, 아저씨 가지세요. 저한테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예?”

“위로가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무슨 사정이 있겠죠.”

상자를 건네고 돌아선 여자는 바쁘게 계단을 내려간다. 통유리 너머로 빌라를 나서는 여자를 본다. 사랑에 빠진, 8년 전 그녀의 모습 같다.

트럭으로 돌아와 택배 상자를 뜯었다. 음악 시디다.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음악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볼륨을 최대로 올린다.

햇살 좋은 봄날에 어울리는,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음악이다.

그래, 무슨 사정이 있겠지. 눈을 감는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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