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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뻔한 주인장 Jan 25. 2024

사랑니 손님과 어머니

세 번째 메뉴 글맛: 욱신욱신. 찌릿찌릿.

"어머니~!"


그 이름을 애타게 부른 건 옥희도, 아저씨도 아닌.

아픈 사랑니를 부여잡고 병원에 들른 손님, 저였어요.


호호.

왜 웃냐고요? 제목 가지고 속인 것 같아 민망해서요.

그치만 제 이름이 뻔뻔한 주인장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뻔뻔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하는데요.

제가 매번 때마다 찾아오는 사랑니 염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사랑니를 안 뽑고 있는 이유는요.


저어얼대. 무서워서가 아니라요. (뻔뻔 한 스푼 추가)

예행연습 같은 거예요.


무엇에 대한 예행연습이냐면요.

음… 사랑이요. (뻔뻔 두 스푼….)


무튼요. 이러쿵저러쿵 찾아보니 말이에요.

글쎄요. 사랑니 이름이 사랑니인 이유가 말이에요.

첫사랑의 아픔만큼이사랑니가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거 아니겠어요! 


전 아직 첫사랑을 못해본 것 같거든요.(뻔뻔 백 스푼 왈칵.)

게다가 전 겁쟁이기까지 하니까.

이 둘의 조합으로 인하여 언젠간 앓게 될 첫사랑의 고통을 미리 겪는 거죠.

일종의 예방 주사 같은 느낌이랄까요?(…왈왈!)


이거 순 멍멍이 소리 아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근데 정말이에요!

연애는 몇 버어언 해보았지만….

전 정말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우연찮게도.

최근에 바로 사랑니 때문에 사랑 비슷한 정을 느꼈는데요.

그건 바로 사랑니 손님으로 그곳의 문을 두드렸을 때죠!


그곳이라 함은 바로… 치과랍니다.

으잉? 치과에서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다니?!

치과 의사 선생님이 잘생겼다는 말인가?!

하신다면… 아니랍니다. 못생겼냐 하시면 그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하고 호통치고 싶으시다면

사랑으로 조금만 참아봐 주셔요. 곧 나오니까요. 호호.


그러니까 말이에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전 겁쟁이라고요.

그래서 무시무시한 치과의 진입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진통제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아주아주 아픈 상태여야 하고.

새로 가는 낯선 곳이 아닌 늘 가는 동네 치과여야만 하는데요.


"허허. 어서 오시지요."


하고 반겨주시는 그곳의 낯익은 의사 선생님은요.

인자하고 푸근하신 백발의 연세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랍니다.


그곳에서는 치과라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안정감이 느껴지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치료가 끝난 후 처방전을 작성해 주실 때에는 소파에 꼭 앉아야 해요.

손님이 저 하나라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왜냐하면….


병원에 컴퓨터가 없기 때문이에요.

처방전에 직접 펜으로 이름과 정보, 방해 주시는 약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기입해 주신답니다.

그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사님이 수기 기록에 한 번.

그리고 의사 선생님 면허 번호에 또 한 번 놀라시는 그런 병원이지요.


사랑 얘기 하고 있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 삼천포야? 싶으시겠지만요.

조금만 더 귀 기울여 보세요. 호호. 이거 사랑 얘기 맞아요.


무수한 최첨단 장비가 갖춰진 하얀 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신생 치과들 사이에서요.

빛바랜 간판 속 환자 차트를 해진 종이차트로 관리하는.

이제는 손님이 몇 없어 한적해진 동네 병원에서 말이지요.

백발이 무성한 의사 선생님께서 작성해 주신 정성 가득한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요.


문득…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밤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삼킬 만큼 사랑니 통증을 앓고 있는데도,

이건 분명 그것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어요.

사랑, 사랑이다 싶었지요. 도무지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이 지역으로 이사 온 후로 10년을 넘게 봐온 분인데 새삼 많이 수척해지셨더라고요.

꽤나 북적이던 병원이었는데,

주변에 신생 치과들이 많이 생겨 이제는 어느덧 피크 타임에도 한적한 치과 안을 둘러보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한 번 왈칵하고요.

한 명의 손님에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사각사각 정성스레 쓴 처방전을 건네시는 세월의 흔적이 지긋이 느껴지는 의사 선생님을 뵈니.

눈물샘에서 또 한 번 울컥하고요.


내가 사는 보금자리와 가까운 곳. 항상 같은 장소에서 맞아주는 반가운 웃음들.

그러니까, 그곳을 벗어나면 딱히 더는 시간을 내어 생각하지 않던,

이웃 같은 모든 인연들에게 생각이 닿는 순간이었어요.

동시에 언젠가는 맞이할 그들과의 이별에 대해 떠올리게 된 순간이었고요.


그래서 지금 제 사랑니 상태는 어떻냐면요.

욱신욱신하고. 찌릿찌릿해요. 조금 시리고 아리기도 하고요.

어쩐지 마음 상태도 그러하네요.

앞으로 다가올 인연과 헤어질 모든 인연에 대해서

입 안에 여직 간직하고 있는 이 찌릿한 예방 주사가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멀지만 가까운 인연들에게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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