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사람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고는 한다. 운전할 때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을 보거나, 코로나19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있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부심도 느낀다.(당연히 지켜야 하는 걸 지키는 것뿐인데...) 많은 감정 중에 왜 안도감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미치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은 의외의 부분에서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길을 다니다가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간혹 안도감이 나오기도 한다. 저 사람의 사정은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미묘한 우월감도 들기도 한다. 이런 안도감이나 우월감은 나의 상태가 그들의 상태보다 낫다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에서 나왔다. 그 사람이 구걸한다고 해서 내가 낫다는 건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내가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만의 합리성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차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병들게 한다. 정치적은 견해가 다른 사람을 무지한 사람,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우를 접하는데 다름과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지키기로 한 약속 - 법규를 준수하면서 나는 우월감을 느낀다.
문제는 장애인에게도 우월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이 나와 동일한 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월하다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장애인이 나보다 나은 부분을 가질 수도 있다. 하반신을 못써서 상반신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장애인의 경우 팔의 힘은 나보다 더 나을 수 있고, 다양한 상황을 겪으면서 풍부한 감수성을 가질 수도 있고, 많은 글을 읽고 쓰면서 나은 문학적 감각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나보다 더 나은 부분이 없더라도 내가 우월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상황이나 신체능력으로 더 나은 사람이라 판단할 근거는 없다. 우리는 인간이라면 모두 존엄하고 동등하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법에서도 보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삐뚤어진 우월감과 안도감의 바탕에는 나는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이라는 생각도 담겨있다.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법을 어기는 행위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런 규칙을 잘 지킨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나마 정상 - 비정상의 논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생활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 전혀 논리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나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철저한 나만의 기준으로 한다. 다른 사람에게 판단해야 하는 논리를 우월의 논리로 적용하고 있다. 천박한 논리이다.
장애인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이나 걸인을 비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정상이라는 개념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장애인이나 걸인이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특별한 존재들일까? 두 존재 모두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던 존재일 것이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광인은 고대에는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고, 중세에는 어딘가 부족하고 다른 존재이며 폭로와 익살을 맞는 대상이었다. 광인을 다른 존재로 인식은 하지만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근대를 움직이는 힘 중에 하나는 이성이다. 이성을 인식하면서 광기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감호 사건은 광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1656년 프랑스에서는 '구빈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해서 광인, 매춘부, 걸인, 범죄자를 분리하고 감호하기 시작했다. 감호라고 하지만 억지로 감금하고 교화를 시도하는 감옥과 동일하다. 사람들을 분리하고 별도의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했다. '저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 '저들은 우리보다 열등한 사람이다. '와 같은 정상 - 비정상의 구분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약자를 분류하기 위한 구빈원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나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은 그들을 비정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비정상이 아니다는 논리는 정상이 존재하고 어딘가에는 비정상을 존재를 찾을 것이다. 비정상의 존재가 장애인이 아니게만 된다. 사람을 그 사람의 형편이나 상황을 보고 정상 - 비정상을 판단하기 자체를 멈춰야 한다. 그냥 사람들을 보고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단지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다. 판단하기를 멈춰야만 그제야 그들이 제대로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