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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과 채찍 Dec 01. 2021

팀장님 면담 좀 하고 싶습니다

나의 퇴사 면담


"면담 좀 하고 싶습니다."


팀장의 얼굴에서 당황함이 떠올랐다.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왜 당황하는 걸까? 하긴 면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요청했기에 편한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이기도 한다. 이미 일반적인 일로 하는 대화는 아니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면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맞게 조용한 공간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이미 일상적인 대화의 틀에서는 벗어났다.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들고 온 믹스 커피 한잔이 지금의 이 순간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한 모금 마신 믹스커피의 설탕 단맛이 조금이나마 공간을 달달하게 느껴지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로 갑자기 면담을 하자는 거야?"

"다름이 아니라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대화에서는 핵심을 이야기하는 게 나의 성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래서는 안 되었다. 대화를 이렇게 이끌어 나간 건 나의 실수였다. 업무 관련한 이야기에서는 핵심을 먼저 꺼내는 게 도움이 되지만, 퇴사는 이야기하기 불편한 내용이었다. 약간의 밑밥을 깔면서 상대방이 받아들일 나름의 준비 시간이 필요했는다. 다소 불편한 이야기애는 완충 구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지난 일이지만 이런 부분에 조금만 더 민감했다면 나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했을 것이다.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분위기는 나름 성심성의껏 대해준 팀장에겐 다소 아쉬워할 수 있는 부분이다. 떠나려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변명과 설명이 필요하다. 퇴사에 대한 설명과 변명을 얼마나 많이 늘어놓는 것에 따라 이 조직을 떠나기가 얼마나 아쉬운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스트레이트로 핵심을 내질렀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했으니, 핵심을 받쳐줄 이야기로 바로 이어갔다.

"이젠 다른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싶습니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거짓말이었다.

"무슨 일을 하려고 그래? 다른 직장을 가기도 어렵고, 자기 사업을 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거짓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퇴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팀장 혹은 자신의 상사에게 이야기하면 가장 묻는 질문 1순위는 "여기 그만두면 뭐하고 살려고?'라는 반응이다. 이것이 걱정으로 들리는가? 걱정으로 들린다면 회사생활에서 타인과 괜찮은 관계를 가진 편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 들리는가? 그렇게 들린다면 충분히 회사에 불신이 퍼져 있는 상태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도 그냥 저런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실제로는 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아까 말한 지금 회사를  충분히 의심하고 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자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냥 부모님 하시는 일을 함께 하려고요."

그냥 물어보는 큰 의미는  대답도 거짓말이다. 난 이미 다른 회사로 가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줍지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실조차 밝히지 않는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서 뭔가를 숨기려는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충분히 안다. 그리고 내가 굳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옮기기로 한 회사의 결정에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 회사로 이직하는 걸 이전 회사에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참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날 속박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직 나는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사람들과 호응했지만, 퇴사하기 전까지는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나라는 미래지향적(?) 인간은 다음 회사의 지시만 집중해서 수행했다. 면담 이후로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다른 회사의 이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걸리적 거림은 있었지만,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나 자신도 다른 회사에 이직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일을 함께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부모님이 하는 장사를 어떻게 하면 더욱 부흥시킬 수 있을지 고민도 했다. 내가 하는 말이 정신을 지배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진실인지 저것이 진실인지 한참 헷갈리다가 결국은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의 이유는 다양하다. 퇴사를 결심한 사람에게 면담이 필요할까 라는 궁금증도 들기도 한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회사에서 어려움을 퇴사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정해지지 않은 마음을 퇴사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면담이 필요하다. 아직은 퇴사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

회사 입장에서도 기존에 근무하는 직원이 퇴사하는 것은 큰 손해다. 새로운 직원을 찾아서 다시 훈련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다. 그런 사람을 잡기 위해서 면담은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미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사람에겐 면담은 그냥 불편한 절차일 뿐이다. 우리는 노동에 대해서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 어떤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 열심히 지원하고 누구보다도 근무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런 회사를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은 자신의 자유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한평생 다니고 싶었던 직장을 떠나게 된다.




직장을 떠나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면 떠나도록 하자. 간혹 이상한 이유를 들어서 퇴사를 무시하려 하는 회사도 존재한다. 우리는 퇴사의 자유도 보장된 사회에 살고 있다. 회사가 퇴사를 받아들이는지 않으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퇴사의 의사를 표현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사직의사를 밝힌 메일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자. 회사에서 아무러 반응이 없어도 작성한 사직서는 1달이 지나면 효력을 발휘한다. 그때는 홀가분하게 떠나도록 하자. 물론 회사에서 잡을 수는 있지만, 나는 반드시 잡히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은 극단적인 사례이다. 퇴사를 하려면 퇴사 조건에 대해서 회사와 협의해서 떠나도록 하자. 법은 우리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이다. 법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우린 인간미가 없다고 아쉬워한다. 우리의 마음은 법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박수받으면서 떠날 수는 없더라도 손가락질받으면서 떠나진 말자. 회사와 협의만 되면 퇴사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퇴사 면담은 나름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미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절차일 뿐이다. 퇴사의 결정이 선 사람이라면 나의 퇴사 의사 경험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자.


애매한 퇴사 의사라도 할지라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퇴사는 사직서를 제출하면 되는 쉬운 절차지만, 실제로 그만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지켰던 자리라면 좋은 마음으로 떠나도록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떠나야 한다. 마지막 퇴사가 좋은 마음이 아닌 거짓 변명으로 떠나서 한껏 부담된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퇴사 이후에는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걸리적거리는 이런 기억 파편을 가지지 않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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