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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품상회 Jun 26. 2019

잘 먹고 잘 쉬었던 라오스 한 달 살기(2)

[쉬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 라오스 한 달 살기] 1편 다시 읽기

6시가 되면 루앙프라방 거리에 장이 열린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먹거리만 판매하는 공간이 있다. 접시에 원하는 만큼 담아도 몇 천 원밖에 안 한다. 욕심에 한 가득 담았는데 맛은 별로. 결국 거의 남겼다. 하지만 비어라오는 최고다! 내가 지금껏 마셔본 맥주 중에서 최고. 쓰지 않고 시원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배도 채웠으니 야시장을 구경해야지. 걸을 때마다 "이거 예쁘다"를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지나치지 않는 우리. 알라딘 바지를 사면서 뿌듯해했고, 예쁜 파우치를 샀다며 가슴팍에 안고 다녔다. 그렇게 쇼핑하니 벌써 9시다. 이렇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봐도 다음날에 예쁜 무언가가 눈에 보인다. 아 여기서 살고 싶다. 루앙프라방 너무 내 스타일이야.

다음 날에 푸시산에 올라갔다. 300개의 계단만 올라가면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저녁이 되면 온통 붉은빛이 도는 동네를 볼 수 있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가로등 불과 집 집마다 불을 켜진다. 불 켜지는 과정을 봤을 뿐인데 흐르는 시간을 본듯했다. 어떤 생각을 하기보다 아무 생각 없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여기까지 와서 뭘 생각하려 해.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 보자.


매일 뭐 먹을지, 뭐 할지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늘 마신 커피가 좋으면 그다음 날에도 그 카페를 갔고, 오늘 먹었던 점심이 맛있었으면 저녁에 한 번 더 먹으러 갔다. 뭐든 본능에 충실했다. 배고프니까 밥 먹었고, 졸리면 선풍기 틀어놓고 낮잠 자는 것처럼. 분명 30분만 자려했는데 2시간이 흘렀다. 낮잠 잔 덕에 하루가 더 빨리 흘렀지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하게 잘 잤다며 저녁시간을 잘 즐겼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우린 그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라오스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다고 하여 트레킹을 선택했다. 길이 좋지 않아 루앙남타로 넘어오면서 멀미했다. 걸을 때마다 속이 뜨거워졌고, 토할 것 같았다. 숙소를 구하고 밥 먹으러 나왔는데 닭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결국 먹는 것을 포기하고 약국으로 갔다. 멀미약을 달라고 했는데 약사님이 알아듣지 못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몸으로 말해요 게임이 시작됐다. 부릉부릉 하며 차 탔다는 행동을 표현했고, 토할 것 같다며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우웩 우웩 거렸다.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내신 약사님도 내게 동작을 보여주셨다. 약사님은 손을 엉덩이로 가져가더니 주르륵을 표현하셨다. 설사도 나오냐고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아니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디어 약사님을 약을 찾으셨다. 이렇게도 대화를 나눌 수 있구나. 


약 먹고 속이 가라앉아서 다음날 트레킹에 참여했다. 각자 다른 곳에서 모인 이들은 1박 2일 동안 함께 할 팀원이다. 아침에 만나 숲에서 먹을 재료를 구매했다. 가이드는 숲을 걷는 내내 우리에게 숲의 역사를 말씀해주셨다. 영어로 말씀하셔서 눈치로 알아들었지만. 중간쯤 올라가자 가이드는 바나나 잎을 뜯어 상을 만들었다. 아침에 구매한 음식을 나뭇잎에 부었고 먹으라고 하셨다. 손으로. 자연식 식사가 시작됐다. 걷다 보니 갑자기 또 속이 좋지 않았다. 눈 앞이 흐려졌고 등산이 힘들어서 나는 땀인지 아파서 나는 식은땀인지 모르겠지만 머리에서 물이 흘렀다.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올라가고 싶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알아서 올라가고 있어. 근데 우리 왜 트레킹 하자고 한 거야? 걸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 소용없는 말이지만. 


드디어 도착. 다들 우리를 반겨주셨다. 헬로라고 말하는 주민과 손 흔들며 부끄러워하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새끼 멧돼지와 닭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된 듯한 느낌이었다. 6시간이나 올라온 곳에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니. 신기함도 잠시, 힘들어서 씻지도 않고 이불속에 뻗었다. 이곳까지 올라오니 뿌듯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시골이라 6시면 되며 어두워진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잠에 청했다. 새벽 내내 밖에서 우는 멧돼지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아침이 됐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이 시작됐다. 어제처럼 6시간 올라가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또 할 수 있을까? 정말 할 수 있을까? 포기할까? 친구와 눈빛을 교환하며 운명에 맞기 자고 했다. 종이에 트레킹과 포기를 여러 개 적어서 제비뽑기를 했다. 첫 장을 뽑았다. 망할. 트레킹이 나왔다. 현실이니 받아들여야겠지?라고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다 사람에게 한 번에 기회만 있으면 서럽지 않겠냐며 한번 더 뽑았다. 그리고 포기가 나왔다. 꺄.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야 우리 보고 포기하래, 어쩔 수 없네, 한번 더 나오면 진짜 트레킹 하려고 했는데, 이거 참 아쉽게 됐네"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포기는 쉬웠다. 가이드에게 말했더니 오토바이로 마을 사람들이 시내까지 데려다주셨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표정은 환했다. 포기했을 때 이렇게 마음이 편하구나. 


우린 시내로 와서 각자의 길을 갔다. 친구는 좋은 기억이 있는 루앙프라방으로, 난 새로운 지역을 보기 위해 북쪽으로. 각자의 여행을 배려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농키아우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볼거리는 없다. 자전거 타고 마을을 돌아보거나 전망대에 가거나 역사가 담긴 동굴 정도. 첫날엔 전망대에 올랐다. 분명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6시간도 걸었는데 한 시간을 못 걸을까 생각하며 산에 올랐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몇 번이나 고민했다. 내려갈까? 수많은 갈등을 이겨내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한눈에 본 농키아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뭐든 미니로 보이는 차와 사람이 귀여웠다. 바람까지 솔솔 부니 올라오면서 흐른 땀이 다 말라갔다. 해먹에 누워 하늘을 봤다. 지금 이 순간은 좋은데 뭐랄까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나저나 언제 내려가냐.


농키아우의 장점이 있다면 사우나가 있다는 것! 스팀 사우나로 10분 스팀 하고 밖으로 나와 차를 마시고 다시 스팀 하는 사우나다. 좁은 사우나 안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있었다. 스팀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었는데 남자분이 보여서 문을 다시 닫았다. 사장님께 여탕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자꾸 남자분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여기 남자분 있어요" "알아, 들어가. 투게더 투게더" 이곳 사우나는 함께 스팀 하는 사우나다. 괜히 놀랐네. 사우나를 마치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스팀으로 내 몸에서 향기로운 향이 남아있었다. 이제 해먹에 누워 맥주 마실 일만 남았다. 기분 좋은 밤이다. 


며칠이 지나고 므앙응오이 동네로 갔다. 므앙응오이는 15분이면 마을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이곳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시멘트가 아닌 온통 흙이 있는 거리였다. 이 마을에도 새벽이면 탁발을 한다. 지역마다 탁발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므앙응오이 탁발은 밥과 간식을 나눠주면 스님이 옆에서 라오어로 기도를 해주셨다. 그때 주민들은 미리 담아뒀던 물을 바닥에 흘러 보냈다. 이는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탁발이 끝날 때 서로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아직 탁발이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반찬을 챙겨서 사원으로 향했다. 다 같이 식사를 즐기는 듯하다. 정겨운 동네에 기분 좋다. 오길 잘했어. 


작은 마을이라 식당도 몇 개 없다. 그중 한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한국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 반가웠다. 반가움에 가던 길을 멈추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인사를 나눴다. 몇 시간이 그냥 흘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서로 인사하며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이야기 나눴다. 이런 인연은 늘 신기하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같다. 하필 왜 여행까지 와서 만나냐며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 반면, 여행지에서 만나서 더 좋은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같이 밥 먹었고 일정을 함께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어제 만난 선생님은 므앙응오이를 좋아하셔서 매년 3~4번씩 온다고 한다. 그러다 알게 된 작은 학교가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기부를 하신다고 하셨다. 우린 마트에서 여러 간식을 샀고 다음날 같이 그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수줍어서인지 멀리서 우리를 지켜봤다. 그러다 종이 접기에 흥미를 보인 아이들이 몰려왔고, 줄넘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줄넘기를 함께 했다. 이 마을 선생님은 감사하다며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이곳도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맛있었다. 한 그릇 더 먹을 정도로. 식사를 마치고 차 마시며 쉬고 있는데 마을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아이들이 감사 인사로 전통춤을 보여준다는 것.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자꾸만 실수하는 한 아이. 이 귀여움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뭐라 말하기 어렵다. 보는 내내 "꺄, 어뜩해, 아 귀여워"만 말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우리가 있던 동네로 넘어왔다. 다시 마을로 넘어와도 아이들 이야기는 계속됐다. 너무 귀여워. 이번엔 일주일 내내 식사했던  단골집 사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사장님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어르신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기도해주시는 덕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얼떨떨했다. 정신없이 기도받고 정리하는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서 팔에 묶인 끈을 봤다. 휴식이 필요해서 이곳까지 왔다. 왜 라오스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라오스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한국을 떠나는데도 평범하기만 했던 내 여행에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냥 잘 쉬고 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알았다. 


여전히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라오스로 온 이유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과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팔에 묶여 있는 흰 실들을 보니 갑자기 울컥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가끔 여행 올 때면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응원받을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조건 없이 칭찬해줄 때.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을 잘 보내고 있다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갔다. 서로 어떤 여행을 했는지 물으며 우린 또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그전보다 훨씬 밝아진 채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냈고, 매 순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좋았다. 여유로웠고 재미있었다. 신발 벗고 맨발로 걸으며 현지인이 되어보기도 했고, 탁발하면서 나눔을 소중히 여기는 라오스 문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짧다고 생각했던 한 달이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재미있었고 잘 쉬었다. 

아, 라오스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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