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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Feb 16. 2021

[카페일기] 가오픈이지만 맛집임을 알아보다

커피와 함께, 손님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는 곳

가려던 중국집이 문을 닫아 방향을 틀었다. 근처에 맛있는 게 없을까 카카오지도를 휙휙 넘겨보다가 일식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시간을 달려왔지만, 다시 20여분 달려야 한다. 달리다 보니 시에서 시로 넘어갔다. 중국집에서 일식집으로 넘어간 것처럼.


드디어 일식집이 시야 안에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주차가 장애물이었다. 골목골목 이미 차들이 늘어서 있었고, 주변을 두 바퀴 돌아가 결국 일십집 앞에 버젓히 차를 주차했다. 휴우, 이곳은 맛있어야만 한다.


바로 일식집에 들어서지 않고 두 바퀴를 돌며 지나친 일식집 바로 근처 건물 앞으로 뛰어갔다.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기 때문. 간판이 없는 이곳은 카페였다. 무엇 하나 이 카페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힌트가 없었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밥을 먹고 갈 카페로 이곳을 점찍었다.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 찾기가 취미인 나란 사람의 동물적인 감각은 이곳 커피가 맛있음을 알리고 있다.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일식집은 그냥 적당한 맛만 내도 만족할 수 있다. 커피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먼저 일식집. 돈까스는 맛있었다. 튀김옷은 신선했고 바삭함이 눈으로만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소스는 보통의 돈까스 소스가 아니었다. 특이한 맛의 이 소스는 내 취향이 아니라 대신 소금에 찍어 먹었다.



30분 가량 식사를 하는 동안 여러 손님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것을 봤을 때 평소에도 장사가 잘 되는 곳 같다. 아마도 일본스러운 인테리어와 소품, 그리고 음식맛을 비주얼적으로 극대화시킨 데코 덕이 큰 것 같다. 아, 돈까스도 바삭바삭하니 분위기와 맛을 조합했을 때 평균 이상은 되니까.


식사는 끝났다. 이번에는 커피다. 이미 봐두었던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의 이름은 SUKI다. 골목에 있고, 아직 간판도 없지만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다.



일단 주문.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아메리카노가 4000원이고, 아이스임에도 추가금을 받지 않길래 만족하려는 찰나, 사장님이 지금은 가오픈 기간이라서 1000원을 할인해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줬다. 아니 그럼 아메리카노가 3000원이라고요?!?!?!



나의 3000원짜리 사랑스러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지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오 일단 커피 머신이 괜찮다. 다시 둘러본다. 메뉴판 옆에 놓여있던 팜플렛을 펴보았더니 원두에 대한 설명이었다. 머신을 알고, 원두를 직접 볶진 않지만 품질 좋은 원두를 가져오는 카페. 손님들에게 어떤 원두를 쓰는지 알려주려고 하는 카페. 


호감형이다, 매우매우.



산미 가득한 원두를 좋아하지만, 산미가 없더라도 신선하고 맛만 있다면 어떤 원두든 환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합격이다. 묵직하면서 달달한 맛이 균형을 잡아주었고 이따금 느껴지는 흐릿한 산미는 반가웠다.


산미 있는 커피는 호불호가 강하지만, 이곳 커피는 누가 먹어도 만족할 수 있을 맛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좋은 원두를 쓴 것까지도 쉽게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깊고 고급진 맛이랄까. 만족스러웠다.



이 카페는 내가 카페에 온 목적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어떤 카페는 그 카페 인테리어가 너무나 화려해서 그걸 보느라 본래의 목적을 잊게 된다. 어떤 카페는 미세하게 신경쓰이는 불편함이 있어서 하려던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곳은 잔잔한 음악과 세련되었지만 주인공 역할을 거부하는 인테리어 덕에 정말 편안하게 독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이런 류의 카페이다.



카페 자체가 화려해서 매력적인 카페는 호기심에 몇 번은 갈 수 있어도 매일같이 드나들긴 어렵다. 그 화려함도 계속 보면 익숙해지고, 그 화려함에 이끌려 온 손님들로 언제나 북새통일 것이기에.


대신 이곳은 매일 들를 수 있는 곳이다. 부담없는 가격에 출근길에 커피를 사가기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 오기에도 부담없다. 혼자서 노트북을 타닥타닥 두드리기에도 제격이다.



아참, 가오픈 기간에 방문해줘서 감사하다고 사장님이 마들렌 2개를 서비스로 줬다. 마들렌은 달콤했고 촉촉했다. 한 입 베어물고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니 달콤 쌉싸름한 맛이 목넘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이곳을 나섰다. 너무 멀리 있어서 또 올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구미를 지나게 된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곳을 들를 생각이다.



구미의 어느 카페, SUKI

인테리어: 커피와 공간만 내어드려요. 주인공은 손님이니까요. ★★★★☆

커피맛: 좋은 원두와 좋은 머신의 만남. 누가 마셔도 맛있을 보통 그 이상의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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