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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Mar 04. 2021

고양이에 대한 생각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 어느 책에선가 고양이는 저주를 할 줄 아는 동물로 나왔다. 스토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저주받은 집을 허물어보니 벽속에서 고양이가 나왔다는 이야기 같다. 밤길을 거닐 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쳐다보면 쓰레기봉투 뒤쪽에 고양이가 있곤 했다. 미리 발견하면 애초에 멀리서부터 너와 나는 다른 세계에 있는 양 지나가버렸지만, 어쩌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흠칫 놀라 눈을 피했다. 저주받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얌전히 고양이님의 옆을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갔다. 당신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속으로 열심히 되뇌었다.


© rigels, 출처 Unsplash


고양이는 우리집에서 내놓은 쓰레기 봉투도 다 헤집어서 쓰레기들이 길 여기저기로 날리도록 만들었고,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쓰레기봉투는 환경미화원도 외면했다. 결국 다음날 처참한 현장을 직접 원상복귀시켜야 했다. 다시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고 이번에는 고이 환경미화원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고양이를 원망할 순 없었다. 천덕꾸러기였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 rfhd, 출처 Unsplash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약 일주일간 쓰레기봉투가 헤집어지는 게 반복되던 어느 여름날 깨져버렸다. 일주일동안 쓰레기봉투를 내놓고 다음날 찢긴 쓰레기봉투와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를 다시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는 걸 반복해야했고, 운 좋게 쓰레기봉투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 밤을 보냈으나 그럼에도 환경미화원이 수거해가지 않던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폭발하여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날과 시간을 종이에 받아적으며, 그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 후로 두 번 더 연락을 넣은 뒤에 쓰레기봉투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나에게 고양이는 이런 존재였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살지만 만나게 되는 접점에는 쓰레기봉투가 있던. 그래서 환경미화원이 이것만 제대로 수거해준다면 결코 만나지 않을 운명.



그리고 지금은 집에 고양이가 산다. 이 순진무구한 생명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는 평범한 진실이 경이로워진다. 영창피아노보다 맑고 고운 '냥'소리를 듣노라면 그 어떤 음악보다 힐링된다. 다만 안타까운 건, 사실 고양이는 저주를 퍼붓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며 사람과 친해지면 바닥에 뒹굴며 애교를 부리는 귀염둥이였고, 쓰레기봉투를 헤집던 고양이들은 너무너무 배가 고픈 불쌍한 아이들이었단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것. 그래서 어디서나 고양이만 보이면 더 마음이 갔다. 배가 고프진 않은지 한겨울에 물을 마실 곳은 있는지, 따뜻한 곳을 찾다가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가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고 또 걱정됐다.



쓰레기봉투를 뜯던 고양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엄마는 이제 매일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준다. 몇 번 사료를 줬더니만 눌러앉은 고양이가 몇 년 전 우리집 창고에 몰래 새끼 세 마리를 낳고 그 중 한 마리는 사라지고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무럭무럭 커서 독립했다. 몇 달 전에 또 두 마리를 낳았고, 이제 이 세 식구는 '밥 먹어'라고 외치면 어디선가 튀어나와 완전체가 되곤 한다. 햇볕이 드는 자리에서 식빵을 굽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현관문을 두드리며 야옹거리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우리집 맹수도 평화롭다. 엄청난 하이톤이지만 전혀 앙칼지지 않은 목소리로 냥냥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닌다. 식빵을 굽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얼굴을 덜렁거리며 우다다 뛰곤 한다. 좋다. 이 집은 나의 일터이자 안식처인 동시에 맹수의 우주이다. 이 집이 평화로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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