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30g, 매일 아침 원두를 계량하여 그라인더에 넣어 분쇄하고, 곱게 분쇄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더 맛있게 커피를 내리고 싶어서 커피전문가과정 교육을 수료했고, 밥은 편의점에서 때우더라도 커피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스페셜티 등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로 주문합니다. 요즘은 안 쓰지만 한 때 유행했던 말, 된장녀. 네 저는 된장녀입니다.
된장녀인 제가 가장 사랑하는 원두는 ‘커피 리브레’ 원두입니다. 몇 년 전 핫하다는 연남동 플리마켓에 참가하러 갔고, 근방에서 나는 커피향에 이끌려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주문하자 마자 몇 모금 마셔보고 바로 원두 200g을 주문했습니다.
그 커피는 산미가 가득했지만 단맛과 쓴맛이 살짝 어우러져 눈코입이 절로 모이게 되는 시큼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각종 과일을 머금은 듯한 달콤한 산미에 커피는 금세 바닥나버렸습니다.
이후 연남동 플리마켓이 좋아서라기보다 플리마켓 하는 내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그 플리마켓에 여러 번 지원했고,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연남동으로의 발길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30g씩 하루 2번의 핸드드립. 3-4일이면 소진해버리는 200g짜리 원두는 된장녀의 성에 차지 않아 올해부터는 사업자등록증을 보내고 도매가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항상 주문하는 커피 리브레의 대표 블렌딩 원두인 ‘배드블러드’ 1kg을 장바구니에 담고, 심사숙고하며 500g짜리 스페셜티 싱글 오리진 원두들 중 하나를 더 담아서 무료배송 기준에 맞춰 주문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틀 정도 기다리면 배송되는 택배. 택배상자 안에는 주문한 원두 말고도 한 장짜리 매거진이 들어있습니다. 이 매거진의 한 면에는 생두 생산지에서 일하고 있는 생산자의 모습이 담겨있고, 다른 한 면은 6분할하여 커피리브레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달 발행되는 이 매거진을 꼼꼼하게 읽을 때도 있지만, 그냥 훑어보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보관은 소중하게 합니다.
저는 원두를 판매하는 회사가 이런 매거진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에서 ‘커피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매거진 한 면에 큼지막하게 실려 있는 생산자의 모습에 진정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잡지 한 켠에 써 있는 이 문구에는 친환경기업이기까지 하냐며 감동하고 맙니다. 그 문구 내용은 이러합니다.
‘커피 리브레는 환경을 생각합니다. 친환경 나눔 명조 에코를 사용하여 제작하고 친환경 잉크와 친환경 종이로 인쇄하였습니다. 잉크 특성상 손에 묻어날 수 있으나 인체에 무해합니다’
이런 내 사랑 커피 리브레가 얼마 전 인스턴트 커피 ‘나초’를 출시했습니다. 3년간 연구 개발하여 출시한 만큼 기존 인스턴트 커피보다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격 역시 인스턴트 커피 7개에 15,000원이란 가격으로 기존 인스턴트 커피 평균가격을 껑충 뛰어넘었습니다.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인 ‘카누’를 100개 살 수 있는 가격으로 단 7개를 살 수 있다니.
커피 리브레 카페의 스페셜티 아메리카노 한 잔은 4000원입니다. 라떼도 4000원입니다. 커피 리브레가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이유는 엄청난 맛의 커피를 4000원에 맛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잘되면서 점점 더 다양한 원두를 들여왔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골라 먹는 재미도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커피 리브레에서 선보인 인스턴트 커피 가격이 개당 2000원이 넘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제품의 다양화는 사업 확장을 위한 필연입니다.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 런칭으로 인해, 커피 리브레를 떠올렸을 때 덩달아 떠오르는 ‘고품질 저가격’이란 이미지가 흔들릴까봐 걱정됩니다. 커피1세대 장인이 만든 테라로사 커피도 맛있고, 이미 프랜차이즈 매장이 많아서 접근성이 좋은 폴바셋 커피도 맛있습니다.
커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곳곳에 생긴 맛있는 카페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많은 카페 중에 저에게 커피 리브레가 최고였던 것은 ‘고품질 저가격’과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공존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인스턴트 커피 런칭보다, 보통의 로스터리 카페가 유명해지면서 밟는 수순처럼 프랜차이즈 매장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뻔한 전개라고 해도 커피 리브레 브랜드 자체가 뻔하지 않으니 사업성은 충분할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을 뿐 더러 이곳의 마스코트인 파란 마스크맨이 인쇄된 텀블러 등의 굿즈도 매력적이라 잘 팔릴 거라 생각됩니다.
죽어가던 연남동에 스몰 카페를 차려서 그 일대를 소생시킨 영웅 스토리라면 커피 교육을 열어도 교육생들이 많이 모일 것 같습니다. 이곳의 커피 맛은 일품이니 교육생들에게도 매우 좋은 기회가 될 텐데 말입니다. 저 역시 매달 원두를 주문할 때마다 혹시 그런 교육이 열리지 않는지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예비 수강생입니다.
블루보틀이 성수동에 1호점을 냈을 때 그 앞에는 장시간 웨이팅이 하고 인증샷을 찍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 화려했던 출발과 달리, 1년이 지난 지금 그 앞은 한산합니다. 아마도 높은 가격 때문에 인증샷을 찍기 위해 한 번은 방문할 순 있어도 단골이 되기엔 문턱이 높았나 봅니다.
물론 블루보틀의 브랜딩 전략 덕에 스페셜티 시장이 확장된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커피 재배지를 직접 방문하여 생두를 선별하고, 생산자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며 제값 주고 생두를 사오고, 4000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스페셜티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 리브레를 사랑하고 걱정합니다. 커피 리브레 대표님 커피값은 조금 올리셔도 돼요, 모른척 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