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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Mar 03. 2024

불행할 수밖에 없게 길러진 세대

진짜로 끼니를 걱정하며 생존을 위해 달려온 베이비붐 세대. 그들의 자녀 세대가 지금 결혼적령기 및 자녀 낳기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출산율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최저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어떻게 길러졌을까요?


이 세대의 부모들은 몸을 써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자식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살아야 돼” 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육체노동의 천시와 육체노동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동시에 심어졌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배우는 내용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어서 응당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보다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을 배우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교과 내용이 뭐건 간에 중요한 건 남보다 시험 잘 보는 거였습니다.


남보다 잘해야 하니까 당연히 남보다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남들 놀때 같이 놀고 남들 공부할 때만 공부해서 어떻게 성적을 잘 받냐? 남들 놀 때도 너는 공부해야 남들보다 잘 하지!”라는 말을 놀 때마다 들으며 컸습니다. 물론 다른 집안 애들도 다 같은 말을 들었기에, 다들 한계도 없이 공부시간을 늘려가야 할 운명이었지요. 자연히 노는 시간 없이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공부에만 쏟는게 이상적인 생활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다들 여기에 짓눌리며 자라야 했습니다.


남보다 시험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망한 인생”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배우는 보람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시험 못 보면 사회에서 “추락”할 거라는 공포에 떠밀려 공부했습니다. 


시험을 잘 못 봤다는 이유로 애들을 때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도둑질을 해서도 아니고, 약한 애를 괴롭혀서도 아니고, 받아쓰기 틀려서, 산수 문제 틀려서 매를 맞았습니다. 매는 죄를 지어야 맞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공부를 잘 못 하는 건 죄였던 거겠지요. 어른들은 애들이 아직 어려서 나중에 힘든 삶을 사는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해를 잘 못 할 거라고 생각하여, 어린애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초적 공포를 일으켜 공부를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직업들은 다 사회에 필요한 일들인데, 왜 특정 일들은 천대되고, 돈도 조금밖에 주지 않고, 안전관리도 안 해주는지, 이런 것들을 어른들이 먼저 고민하고 모범적인 해답을 좇아 사회를 개선해 나가면서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신 남보다 공부 잘해서 그 천대되는 직업을 피하라고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그런 일은 못난 다른 집 자식들이나 하라고 하고, 너는 잘난 자식이 되어 “번듯한” 직장 가지라고 했습니다.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기를 세워주는 게 궁극의 효행이라는 조선시대 이념은 잘도 살아남아 애들에게 습득됐습니다. “다른 집 애들은 다” 서울대 연고대 간다는데 (실상은 학년당 1% 쯤이었겠지요), “지잡대” 따위나 가서 빌빌대는 자식은 불효자식이라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부모들에겐 그래도 무조건 대학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사립대들은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정직한 노동자보다 남을 등처먹는 이들이 득을 보는 세상은 그냥 놔둔 채 인간다운 대접 못 받는 설움을 가슴에 한으로 쌓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너는 공부해서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배기게 말했습니다.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들을 공부 경쟁에서 이겨서 그 인간대접 못 받던 위치, 자기가 살아온 위치에 ”추락“하지 않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모들도 다 같은 생각을 했기에 경쟁은 무한히 치열해져만 갔습니다.


뉴스에 중소기업에서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요즘 젊은것들은 배가 불러서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라고 욕을 합니다. 하지만 내 자식이 거기 가야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귀한 내 자식은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 그따위 천한 일 안 하게 만들 거니까요. 그런 질 낮은 직업은 다른 집 자식이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비싼 학원비도 감당합니다. 물론 그 다른 집에서도 자식을 그런 힘든 일 안 하게 하려고 때려가며, 비싼 학원비 내 가며 공부를 시켰겠지요.


인구의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가정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자기처럼 살지 않길 바랐습니다. 부모의 삶이 자식이 따라해도 좋은 모범이 되는 가정은 드물었고, 부모가 뼈 빠지게 고생해서 뒷바라지해줬으니 부모처럼 살지 말고 번듯한 대기업 직원이나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당연시되는 가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는 인생은 천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고, 필사의 노력을 다해 경쟁에서 이겨 피해야만 하는 그런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보통의 삶은 보통이 아니라 망한 삶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은 그 보통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구조였고, 지금도 그렇지요.


대학까지 나와 이제는 정말 보통의 삶을 직면해야 하는 시기, 자식들은 보통의 삶을 피하기 위해 취업준비기간이라는 마지막 유예시간에 들어섭니다. 속은 타들어가고 절망은 깊어갑니다. 부모들은 '체험 삶의 현장'에 나왔던 그런 일자리를 가지느니 차라리 내가 밥 해 줄 테니 집에서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보통의 일자리는 취업 취급을 못 받습니다. 그런 곳에 취업하는 건 진짜 “취업”에 실패한 것, 망한 것일 뿐입니다.


부모가 밥 해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고 학교 학원 태워주고 그렇게 일상을 다 대신해 주면서 그저 공부만 하라고 키워진 자식들. 그들은 지치도록 서로 경쟁하다가 상대평가의 당연한 귀결로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망함”이라는 결과 앞에 엎어집니다. 그들이 직면한 앞으로의 인생은 지난 근 삼십 년간 부모 학교 학원 친척 엄마친구 아빠친구 모오든 사람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던 그 삶, 보통의 삶입니다. 보통의 삶을 살게된 보통의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살아갈 보통의 삶을 존중하고 더 살기 좋게 가꾸는 대신 그저 진절머리 치며 방치하고, “너만” 어떻게든 남들을 이겨먹어서 그 삶을 피하고 “번듯한” 삶을 살라고 자식 세대를 닦달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구의 대다수는 보통의 삶을 살 수밖에 없기에 결국 자라난 새 세대는 앞선 세대가 방치하고, 가꾸기는커녕 자식들을 겁주기 위해 끔찍한 거라고 가르쳐 온 삶,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라면서 손가락질 한 그런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초현실적인 저출산의 원인들 중에는 대다수의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보통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대신 각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 전체에서 애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보통의 삶을 어떻게든 피해내라고만 강조한 탓도 있을 겁니다. 상대평가 체제 속에서 결국 대다수는 모든 어른들이 입을모아 피하라고 강조한 그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자신의 삶을 실패로 여길 수밖에 없고, 자기 삶이 실패의 결과라는 느낌과 함께 산다면 그것이 행복하긴 어려울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웃으며 연애하고 기쁘게 가정을 꾸리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요.


부모세대는 자식 세대의 행복을 위해 그리했을 것입니다. 사회적 조건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을테니, 가능해 보였던 유일한 방법인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데에, 경쟁에서 이겨서 다른 집 자식들을 힘든 일 하게 만들고 너는 편한, 적어도 덜 힘든 일 하라고 말하는 데에 올인했겠지요. 그 방법에 모두가 죽기살기로 달려드니 자식 세대는 서로 끝없이 경쟁하며 다같이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좀더 나은 삶이라는 고원과 그 아래의 힘든 삶이라는 바닥 사이에 있는 깎아지른 절벽을 완만한 경사로 바꾸고, 고원을 낯추고 바닥을 올려 높이 차이를 줄이면 친구를 고원 아래로 밀어 떨어뜨려야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나는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너는 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되, 두 삶중 어느 하나가 유난히 더 힘들지는 않고, 그리하여 꼭 하나를 놓고 지독하게 경쟁할 필요는 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런 세상이 가능하다면, 그걸 만들어가는 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몫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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