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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en Mar 22. 2019

같이 가자 수수야

1. 첫 만남

2013년 2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 직장의 대표님께서 사무실을 판교로 이전하셨다기에 나들이도 할 겸, 운전대를 잡았다. 우중충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은 그때 나의 기분이 우중충 했던지라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곳은 한창 개발 중이었던 것 같았다. 인적은 드물었고 낮게 들어선 건물들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대표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눈 후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차로 향하는 도중 어느 노인과 두 마리의 반려견들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의 몰티즈와 레트리버로 보이는 누런색 대형견이었다. 누런 녀석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몰티즈에게 코를 들이밀고 있었고  몰티즈는 그렇게 들이미는 누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꾸 노인의 바지자락 뒤로 숨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 노인은 갑자기 몰티즈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고 그의 표정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누런 녀석은 펄쩍펄쩍 뛰며 몰티즈 냄새를 더 맡기를 원하는 것 같았고 몰티즈를 안고 있는 노인은 누런 녀석을 발로 밀어내고 있었다. 한참 동안 노인을 괴롭히던(?) 누런 녀석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그 순간 노인은 부리나케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혹시 이 녀석은 선생님 반려견이 아닌지요?" 


"모르는 놈이에요!" 짧은 대답과 함께 몰티즈를 품에 안고 헐래 벌떡 뛰어가셨다. 누런 녀석은 계속 킁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형견의 경우 목줄을 하지 않고 돌아다닐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고민을 하던 중 그 녀석은 차도로 내려왔고 지나가던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무단횡단을 하기 시작했다. 아차 싶어 나는 그 녀석을 향해 뛰어갔다. (사실.. 그땐 생각도 없었고 그냥 몸이 먼저 나가버렸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녀석이었고.. 헉헉거리는 모습은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길을 잃었나? 유기된 건가? 누렁이의 목에 걸려있던 밴드는 이 녀석의 자라온 환경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인 나일론 재질의 낡은 밴드는 색이 바래 있었고 두께를 조절하는 구멍 주위는 시커멓게 녹이 슬어 있었다. 야외에서 묶어놓고 키운 놈인 듯했다. 


낯을 가리는 녀석인지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킁킁거리며 무엇인가를 다급히 찾는 듯 한 모습을 보니 주인을 찾고 있는 듯.. 그런데 이런 곳에 왜 이런 커다란 놈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뭔가 이상했다.. 


"못 보던 녀석이네..." 옆에서 같이 보던 한 중년의 남성분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제가 이 동네 통장이에요. 저도 개 두 마리를 키워서 이 동네 개들은 다 아는데..
저 녀석은 처음 보는 녀석이네요.."


통장님께서는 일단 저 녀석을 먹을거리로 유인을 하자고 하셨다. 


"여보, 간식 좀 가지고 와봐 여기 대형견이 한 마리 돌아다니는데 주인이 없는 것 같아." 


핸드폰으로 아내분과 통화를 하시고는 그 누런 녀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온갖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 녀석의 관심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심지어는 아내분께서 가저온 간식을 그 녀석에게 던져보아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녀석은 유독 한 장소를 계속해서 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곳이 주인을 마지막으로 본 장소인 듯했다.. 혹은 버려진 장소였거나..


우여곡절 끝에 이 녀석을 잡는데(?) 성공하였고 나와 통장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통장님께서는 이미 웰시코기 두 마리를 키우고 계셨고 개를 한 마리 더 들이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나는 그 당시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작은 곳에 이 큰 녀석을 들이기는 부담스러웠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는 것도 불가능할 듯했다.. (월세 계약서에 명시가 되어있었다..)


"일단 제가 이삼일 동안 주인을 찾아보겠습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연락을 드릴까요?"


"네 연락 주세요. 유기된 녀석이 맞으면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정말 몰랐다.. 이날이 내 인생의 아주 커다란.. 어마어마한 전환점이 될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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