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phen Apr 24. 2019

같이 가자 수수야

5. 秀鬚 (빼어날 수, 수염/털 수)

같이 지내기 시작한 지 이틀이 되었는데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방광염과 감기가 치료되는 대로 잘 키워줄 주인을 찾아주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 당시 체중이 25킬로 정도.. 적어도 30킬로는 되어야 지탱이 되는 크기인데 저체중이라 자견(강아지)용 사료와 닭고기, 그리고 황태를 섞어서 주고 있었다. (그냥 사료는 잘 안 먹어서 섞어줬다..)


신기하게도 1주일 정도가 지나니 털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구조했을 땐 분명 옅은 노란색 이었었는데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눈 주위는 깔끔해졌고, 조금씩 살이 찌게 되면서 2주 정도 되니 머리는 자연스레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감기도 낫게 되고 짙은 색이었던 혈뇨는 점점 옅은 분홍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털은 여전히 빠지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되었나.. 슬슬 입양을 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회사 업무로 인해 집에 늦는 경우가 많았었고... 이 녀석을 책임지고 키우기에는 나의 삶이 너무 찌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나 자신도 못 챙겨서 이 모양 이 꼴인데.. 거기다가 소형견도 아닌 대형견을 챙겨주고 키우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인터넷을 헤집고 다니다가 네xx카페를 찾게 되었고.. 카페에 가입한 후 입양 공고를 올렸다..


며칠 뒤 입양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20대 초중반의 남자.. 친구와 함께 와서는 자신은 대형견을 키우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하였고 그의 친구 역시 그가 얼마나 책임감이 많고 사는 곳도 집이 꽤 큰 편이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기 때문에 충분히 키울 여력이 된다며 입양을 하면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며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나는 잘 키워달라는 당부와 함께 밥그릇, 물그릇과 목줄을 넘겨주고 이 녀석을 그들에게 보냈다.. 어쩌면 나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불안한 감정을 무시해 버리고 그들에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목을 빼던 그 녀석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그걸 보던 그 당시 나의 여자 친구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입양을 보낸 다음날 카톡이 왔다.. 


"혹시 목욕은 그냥 샴푸로 씻기면 될까요?"


"강아지 전용 샴푸로 씻기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피부병 생길 수도 있어요.."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입양을 보냈으니 내가 뭐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혹시나 싶어 카톡을 보냈다.


"그 녀석이 체중이 아직 적게 나가니 자견용 사료와 성견용 사료를 섞어서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답장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몇 번 해 보았으나 신호만 가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날 전화를 수십 통을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전화를 다시 해봤는데..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새끼를 찾아야 하는데 번호 말고 아는 것은 그 새끼의 차가 포르테 쿠페였다는 것과

의정부에 산다는 것 그 두 가지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이게 뭔가.. 

혹시나 이 새끼가 다시 유기를 했을까... 이틀 동안 미친 듯이 유기견 보호소를 검색했다.. (뭔 놈의 유기견 보호소가 그렇게도 많은지...)


사흘째..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홈페이지에서 이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구조일은 그 새끼가 입양을 해간 다음날.. 이 녀석을 데리고 간 후 바로 다음날 버린 듯했다..

특이점을 보니.. 구조 당시 샴푸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협회에 전화를 걸어 특이점 (코에 흰 줄과.. 옆구리의 점..)을 말해 준 후 차를 타고 양주로 향했다..

1시간 조금 넘게 걸린 듯하다..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나는 다시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지만.. 왠지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여자 친구가 와 있었고 그 녀석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그녀는..


"얘 이름 지어주자.."

"털이 너무 부드러워 자기야.. 이거 봐 봐! 금색 털도 있어!"

"근데 원래 이렇게 큰 개들이 더 순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형견들이 조금 더 얌전한 경우는 있긴 해.. 그런데 이놈은 바보 같을 정도로 순하네.."


"순하고.. 수수하게(?) 생겼고.. 털도 우수수 빠지니.. 수수 어때?"

"아 아니다.. 빼어날 수, 수염(털) 수로 해주자. 빼어난 털! 수수!"


신이 난 그녀는 반복해서 수수를 보며 부르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몇 번 만에 자기 이름으로 인지를 하는 듯했다.. (키우면서 알게 된 거지만.. 엄청나게 똑똑한 녀석은 분명하다..)


나름 어울려 보였다.. 수수.. 털이 참 부드러웠다.. 물론 지금이 더 부드럽다.


그날.. 여자 친구는 수수에게 닭 한 마리를 삶아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동거는 다시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같이 가자 수수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