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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YES Apr 25. 2019

지하철에서 졸 권리

그걸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고 싶을 정도. 가끔은.

요즘 지하철을 많이 탑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어도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이 참 다양합니다.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왜 그가 돈 빌려준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어야 할까요?
큰 소리로 깔깔대며 대화하는 사람들.  기분인지 모르겠지만 남 욕할 때가 많더군요.
물건을 파시는 분들. 2,000원짜리 오이칼을 파는데 앞에 계시는 남자어르신이 두 개씩 사는 모습이 의심스럽네요.

그리고 스피커로 나오는 안내방송의 음량도 과도하게 크지만 거기에 더하는 광고 징글들. 월스트리트 학원과 성형외과 광고 소음이 너무 커서 이미지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 느낌은 나만 드는 걸까요?



지하철에서 조용하게 상념에 잠기거나, 책을 읽거나, 때로는 방해받지 않고 졸거나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걸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히 있을 권리도 권리지만 통화할 권리, 대화할 권리도 모두 권리다?!’

오이칼을 팝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누군가의 영역에 들어가서 피해를 주고 있다면 그것을 권리라고 볼 수는 없겠죠.

99년에 일본 도쿄에 잠시 살았을 때입니다.
'일본 지하철에서는 모두 책을 보더라'라는 환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화 주간지와 신문을 보는 것을 확인하면서 깨졌지만 (그래도 제 주관적인 기억으로는 책을 보는 비율도 한국보다는 높았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여러 번에 걸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가 오면 손으로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짧게 '지하철입니다'라고 얘기하고 끊거나,
대화를 해도 거의 귓속말 수준으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신주쿠 등에서 오는 기차는 취객들로 조금 시끄럽긴 합니다만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제 이어폰에서 음악소리가 좀 크게 새어나갔다고 볼륨을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었죠.
전차 안에서 같이 있던 일본인 친구가 한 행동은 더욱 놀라왔습니다.
전화가 오자 받지 않고 바로 끊더니 문자로 '덴샤 (전차의 일본어)'이라고 짧게만 보내는 것을 보면서 '뭘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저도 그 이후에는 지하철에서 그 친구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워지더군요. 잡지나 책을 보거나 창밖을 보면서 멍 때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경험은 일본에서가 아니라, 한국으로 귀국을 한 이후에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지하철이 조용하기는 하지만 그게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그 다양하고 배려 없는 소음에 노출되는 순간 참 거슬리면서도 너무 시끄럽게 느껴지더군요.
일본에 가기 전과 비교해서 한국의 시끄러운 지하철이 훨씬 더 시끄럽다고 느껴지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익숙해져서였을까요?
무엇인가가 좋아질 때 체감하는 것과 반대로 안 좋아질 때 체감하는 정도가 크게 달라서 일까요?

무조건 일본의 매너가 대단하다고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지하철 문화가 남을 배려하는 데서 시작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영역을 침해받고 싶지 않은 데서 시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 쪽을 다 경험을 해보면 맘대로 떠들 수 있는 권리보다는 피해받고 싶지 않은 권리가 더 소중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다만, 나의 소음이 다른 이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좋겠습니다.


지하철에서 방해받지 않고 책도 보고 멍 때리기도 하고, 가끔은 졸기도 하는 일상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터무니없는 소원이 아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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