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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Nov 07. 2023

가을엔 수종사에 가보세요

작년 가을 이맘때 수종사에 갔다. 수종사는 양평 두물머리에서 가깝다.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으면 수종사에 오르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직접 운전하여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수종사는 가파른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운전에 능숙하지 않으면 차가 뒤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경사도가 심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가 확실하지만 원래 예쁜 꽃은 꺾기 어려운 곳에 피는 법이다. 가파른 등산길을 지나 수종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구라도 감탄할 만한 장소이다. 수종사는 어느 때나 와도 아름답지만, 가을은 특히 아름답다

.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특별한 한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혹시라도 해가 뜨기 전에 수종사 마당에 도착한다면 그리고 날씨가 쾌청하다면 일출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전망 좋은 쪽 마당에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삼정헌’이라는 다실이다. 나는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경관이 빼어난 사찰로 오래전부터 알려진 곳이라 옛날 사람들도 이곳에 들러 차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정약용 선생도 있다고 하는데, 이 절에서 보이는 한강의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차 마시기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도 옛사람들의 흉내를 내며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에 고즈넉한 다실에 앉아 다관에 찻물을 따르고 조금 기다렸다가 찻잔에 조금씩 따라 마시며 창문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본다. 나는 녹차를 좋아하지 않고 마시는 법도 잘 알지 못하지만, 왠지 이곳에 앉으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라 올 때마다 다실에 앉아있는 시간을 즐긴다.


차를 마시고 나와서 조금 둘러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세조가 강원도에 다녀오다 양수리에서 하룻밤 자는데 종소리가 들려 찾아와 보니 이곳이어서, 사찰을 짓고 은행나무를 하사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50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은행나무의 나이도 500살이다. 내가 만났던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모양이 멋지다. 저 오래된 나무의 은행잎은 도대체 몇 장이나 될까…같은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다 벤치에 앉아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에 받으면 졸린다. 아침에 일찍 나선 탓이다. 그렇게 졸다가 내려오면 가을이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작년의 수종사는 이렇듯 아름다웠는데 올해도 여전히 아름답겠지.


아름다움의 순간은 언제나 짧다. 그 잠깐의 순간을 기억하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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