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이 한가한 날이면 가끔 남한산성 전망대까지 산책한다. 경사진 길을 걷는 시간은 겨우 10분 남짓이기에 등산은 아니다. 집에서 출발해 전망대에 올라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돌아오면 대략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니 산책길로는 적당한 거리이다. 조금 더 한가한 휴일 아침이면 욕심을 내어 등산할 때도 있다. 전망대에서 한 시간 정도 산길을 헤매다 보면 남한산성의 돌담을 만나게 되고 돌담 언저리를 조금 걸어보면 개구멍 같기도 한 쪽문이 있다. 옛날에는 암문이라고 불렀다는데 고개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이다.
산길을 헤맨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표지판이 변변하지 않고 길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산속에서 두 번이나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산이 높지는 않지만, 굉장히 깊어서 자칫하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산성이 목표라면 방향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가면 된다. 하늘이 보이는 곳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산성의 돌담이 나오기 때문이다.
암문을 지나 산성 안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우리가 잘 아는 남한산성의 풍경이 보인다. 남한산성을 둘러싼 높은 담장과 문들은 다 진짜처럼 보인다. 덩치가 큰 돌은 바닥 면에 가깝게, 손으로 옮기기 쉬워 보이는 작은 돌들은 위쪽에 주로 쌓여있다. 이끼가 끼어 오래되어 보이는 돌들이 층층이 쌓여있어서 옛날에 건축한 것이 확실해 보이므로, 나는 그것을 진짜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고 관측을 위해 지은 군사용 누각이라고 하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운치가 있다. 수어장대 바로 옆에 어떻게 옮겼을까 싶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다. 지휘관들이 작전회의(?)를 하던 곳이라는데 전망이 너무 좋아서 회의나 제대로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장소이다. 전망이 좋아서 놀기 좋다는 말이 아니라, 멀리 잠실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지휘관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상상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잠실의 높은 건물이 간간이 보이는 지금도 이렇게 훤히 보이는데, 삼전도에 진을 치고 있었을 청나라 군대가 한눈에 다 보였을 것이다. 밤이면 수많은 불빛으로, 낮이면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군대의 움직임만으로도 지휘관들은 충분히 두려웠을 것 같다. 지휘관들뿐일까, 성벽 길 안쪽마다 지키고 섰던 병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한강과 삼전도 방향을 쳐다보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저 안쓰러운 마음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병자호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남한산성 인근에 불당리라는 지명을 가진 동네가 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이곳 불당리 근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 친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불당리 토지가 자기 소유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자호란의 주인공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들어오던 때였다. 이 친구의 조상 할아버지께서는 산길을 갈 수 없는 왕의 가마를 대신하여 인조를 업고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호란이 끝난 후 친구의 조상 할아버지는 인조로부터 직접 불당리의 토지를 하사받았다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아마도 왕이 내려준 토지라고 하니 그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처분하지 않고 지금까지 집안의 땅으로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극이나 영화 속의 에피소드로 사용해도 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역사도 흐르고 사람도 세월이 흐르면 사라져 가지만, 장소는 남아서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로 그 자리를 지킨다. 불당리에 살았다는 친구네 집안의 이야기도 기록되지 않은 병자호란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