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동네는 미시간주의 한복판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도시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만큼 작은 규모였으니 시골에 가깝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가까운 곳에 제법 큰 도시라는 디트로이트가 있었지만, 미국의 자동차 산업 규모가 점차 줄어들면서 범죄율은 늘었고 쇠락해 가는 도시의 느낌만 남아있으니 딱히 가볼 기회가 없었다. 나는 한적한 시골 같은 우리 동네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반경 20킬로 이내에서 웬만한 것은 모두 해결하며 그곳에서 4년 반을 살았다. 6개월이 넘게 지속되는 미시간의 겨울은 혹독하고 길었다. 미시간에 이사한 첫 해 가을, 10월 중순에 첫눈이 오는 것을 보고 나는 이 우울한 동네에서 언제쯤이면 떠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괴로워했었다.
겨울이 긴 만큼 가을은 너무 짧아서 언제 지나갔는지 느낄 새도 없이 사라졌다. 미시간에서 가을을 즐기는 방법은 당연히 미국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 구경 가는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에서 자란 나는 미국인들이 단풍을 보러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동네 어디서나 노랗거나 빨갛게 물든 나무들을 실컷 볼 수 있는데 굳이 단풍 따위를 보러 멀리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니 한국 사람들과 같이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단풍을 보러 나갔다. 호수에 비친 나무들을 보며 단풍색이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공원을 오랫동안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뚱뚱한 캐나다 거위가 날아가면서 똥을 싸기 때문이다. 재수 없으면 머리에 똥을 맞는 일이 생긴다. 아니면 잔디에 투척해 놓은 똥을 밟기 쉽다. 늦가을이면 남쪽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는 캐나다 거위는 그 무거운 몸으로 어떻게 날아다니는지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그 시절에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미시간의 본격적인 가을은 할로윈과 함께 시작되어 추수감사절 휴가와 함께 끝난다.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명절보다 나에게 훨씬 재미있던 일은 가을이면 사과를 따러 나서는 것이었다. 또 운이 좋으면 광활한 밭에 뒹굴거리는 주황색 커다란 호박을 구해올 수도 있었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넓은 과수원에 지천으로 널린 사과를 따서 봉지에 넘치게 담아오는 날이면 그날 저녁은 아이와 함께 애플파이를 만들었다. 신선한 사과로 만든 파이는 맛이 기가 막히다. 나에게 가을은 단풍보다 애플파이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애플파이를 만든 날 밤이면 왠지 파티의 분위기가 나서 마음이 설렌다고 말하던 어릴 때의 내 아이가 생각난다. 우리는 1박 2일의 열혈 시청자였다. 밤이면 위성티비속의 강호동과 이수근의 말장난을 보며 낄낄거렸었다. 그런 날 밤이면 아이는 다른 날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뜻밖의 행운에 즐거워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혔던 삼 년 전 가을, 군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과 오랜만에 애플파이를 만들었다. 스물세 살이 된 아들은 열 살이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다정하고 섬세한 감정을 가졌다.
가을의 색조를 선명하게 만드는 단풍을 볼 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11월은 공휴일이 없는 재미없는 달이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나에게 11월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아직까지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겨울로 접어드는 무미건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가을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단풍이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 싶다. 이제는 가을이면 친구들과 단풍을 보러 가거나 여행을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가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아이와 애플파이를 만들며 놀았던 미시간 시절의 어느 밤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