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을 가르친다는 것
소녀들을 가르친다는 것
말레이시아 문화는 여성성이 강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그래도 몇 년을 살아보니 이들의 유순하고 따뜻한 성품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비유하는 게 어울리지 싶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갈등이 생겼을 때 목소리 높여 부딪히기보다는 기다리는 편이고 시간이 있으면 늘 삼삼오오 만나 무언 갈 먹으면서 수다를 즐기는 모습에서 느껴졌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많이 웃고 맛있는 음식을 잘 나누고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교통체증이 심한 아침시간 대로에서도 '빵빵~~'하는 클랙슨 소리가 없다는 것 만 봐도 이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내 주변의 사람들로 국한된 인간관계에서 온 느낌이지만 이들의 삶을 통해 가깝게 본 말레이 문화는 너그럽고 유쾌한 그리고 손 맛이 좋아 음식 나누길 좋아하는 옆집 아주머니 같다.
이곳에 와서 만난 나의 말레이시아 친구들.
먼저, 인디언계 나의 멘토 선생님인 Miss Vasantha!
영어 선생님이시고 이제 곧 정년퇴임을 앞둔 멋진 싱글 여성이시다. 지금은 “바스~” 어쩌고 저쩌고 하며 친근하게 부르지만 정통 영국식 교육을 받은 그녀는 내가 처음에 학교에 왔을 땐 입술을 플랫 하게 만들며 나의 영어 ‘P’와 ‘F’ 발음을 친절하게 교정해 주셨다. 자존심 강하고 자부심 강한 말레이시아를 가감 없이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 아우라 만으로도 학생들을 벌벌 떨게 하는 언어 부장님이기도 한 그녀는 주말이 끝난 월요일 아침에는 “주~은, 우리 집 파파야는 아무도 안 먹어” 라며 집 마당에서 유기농 파파야를 주어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내게 건네신다. 그녀는 80이 넘으신 노모를 돌보는 가장이기도 하며 학교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관여되어있어 교장선생님부터 기숙사 사감 선생님까지 모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녀에게 지혜를 구한다. 그때마다 사려 깊으며 따뜻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자동차는 이 십 년도 더 된 진 녹색 ‘볼보’이다. 연식이 오래되었지만 튼튼하고 언제나 깔끔한 그녀의 자동차를 얻어 탈 때마다 나는
“바스, 니 차는 너처럼 명품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친구 'Ms Foo'
말레이 중국 이민자 중 하나인 학카 족(Hakka)의 후손인 그녀는 수학과 화학을 가르친다. 또한, 우리 학교 온갖 중요하기도 잡다하기도 한 프로젝트를 담당해서 늘 학생들을 데리고 발명대회에 참가하거나 서류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녀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나의 은행계좌 만드는 길에 동행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종교가 같다는 걸 알고 너무 기뻐하던 그녀. 우리 학교에 모두 무슬림이고 나만 크리스천인데 “준 네가 와서 나 너무 기뻐”라고 말하며 트레이드 마크인 단발머리를 찰랑이던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아 늘 나를 챙긴다. 특별히 전통의상인 ‘바주쿠롱(Baju Kurung)’을 입어야 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Foo에게서 아침에 메시지가 온다.
“준, 오늘 사진 찍는 날이야, 학교 바주쿠롱 입어야 하는 거 알지?”
내가 혹시라도 잊을까 늘 살갑게 챙긴다.
“응 알지, 고마워”
“준, 오늘 우리 교사회의가 있어, 오늘은 우리 집에 일찍 못 가”,
“내가 회의실에 니 자리도 맡을 게”
나의 또 한 명의 수호천사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절친 ‘앨리자(Eliza)’
앨리자는 말레이계 무슬림이다. 44 사이즈의 마른 몸매를 자랑하는 뜨릉가누(terenganu) 지역 출신 앨리자는 우리 학교 '패셔니스타'이기도하다. 그녀의 고향 뜨릉가누는 거북이가 헤엄치는 깨끗한 바다로도 유명하지만 바틱(Batik)염색과 옷감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그 지역 출신답게 백 벌이 넘는 바주쿠롱을 갖고 있다. 배우 소지섭 결혼기사가 뜬 날 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크게 상심했던 앨리자. 하지만 금세
“괜찮아, 공유는 아직 결혼 안 했으니까”
라고 담담히 말하며 기분전환 겸 바주쿠롱이나 맞추러 가자고 했다.
바주쿠롱과 투둥을 매일매일 다른 색과 다른 디자인을 색깔별로 맞춰 입는 말레이 여성답게 계속 앨리자는 옷을 해 입는다. 앨리자뿐 아니라 다른 나의 동료들도 모두 각자의 Taylor Shop이 있어 옷은 맞춰 입는 게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쿠쿠롱을 맞춰 입는 비용이 적게는 RM50-100사이니 한국돈으로 이 삼만 원 정도면 맞춤옷을 해 입을 수 있다. 여기 와서 생전 처음 앨리자의 단골 가게에 따라가 맞춤 바주쿠롱을 해 입었다. 한국에서는 맞춤옷은 비싼 가격 탓에 엄두를 못 냈었는데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맞춤옷의 세계에 신기해하며
“한국사람들은 그냥 기성복 사 입어”라고 말하면
내 동료들은 “아니 몸이 다 다른데?” 하며 갸우뚱한다.(막상 맞춤옷을 입어보니 그 미세한 차이가 기성복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녀는 길고 긴 이동통제기간에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전근을 갔다. 학생들이 뽑은 가장 웃긴 선생님이기도 했던 앨리자에게 받은 사랑은 아무 준비 없이 이국땅으로 온 나에게 이곳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따뜻했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나의 제자들 중 한 명인 ‘우마이라’
이제 겨우 열네 살 소녀 우마이라는 오 남매의 장녀이고 이 소녀의 인스타 그램엔 늘 동생들을 안고 돌보는 사진이 등장한다. 자녀를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이곳 무슬림들 가정은 평균 다섯 명, 여섯 명정도의 아이들이 있다.
“우마이라, 오늘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
방글방글 늘 웃고 있는 우마이라가 오늘따라 표정이 안 좋아 무심코 물어봤는데 금방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왜 울어, 울지 마! 무슨 일인데”
울먹이며 우마이라는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가셨는데 엄마도 걱정되고, 집에 있는 동생들도 걱정돼서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잡힌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선생님도 같이 기도할 게”
열네 살 소녀의 엄마 걱정을 보고 있자니 어느 나라나 엄마와 함께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돌보는 역할은 딸들의 몫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파견교사를 신청하고 면접을 보고 파견지가 말레이시아로 결정되었을 때 난 어디 정글 속에 헤엄쳐서 학교를 가는 오랑 아슬리(orang Asli) 정글 속에 사는 말레이시아 원주민) 아이들을 만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처음 학교에 도착했던 날, 학생들은 보라색 긴치마 긴소매의 바틱 교복을 입고 머리에 흰 스카프(이곳 말로 투둥)를 쓰고 교정을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백조들처럼 사뿐사뿐 걸어 다니고 있었다.
19세기 조선을 찾았던 선교사가 된 것처럼 낯설어하는 이 외국인 교사에게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소녀들은 긴장감을 한 숨에 날려 버릴 듯 세상 살갑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백삼십 년 전 이화학당을 만들어 조선의 소녀들을 만났던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아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가능성 넘치고 예의 바르며 똑똑한 백 년 전 조선의 소녀들 못지않은 나의 학생들은 말 그대로 비타민 같은 존재들이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영향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향기 같다. 이곳 아이들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열몇 살 소녀들이다.
각 지역에서 뽑혀 진학한 학교에는 분명 샘도 나고, 부럽기 그지없는 친구들이 있을 텐데, 이곳 아이들은 시샘하고 경쟁하기보다는 늘 친구들을 챙기고 너그러우며 따뜻하다. 내신성적과 입시로 시들어가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하는 나의 물음은 이곳 여성들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여권은 생각보다 강하다. 학교의 교장은 남학교를 제외하고 거의 여자 교장님이 많으며 일반 기업이나 공무원들 역시 여성이 남성 못지않게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다처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어 심심찮게 문명이 잘 닿지 않는 사바 섬이나 크다 주의 어느 마을에서 12세 13세 소녀들의 조혼 풍습에 의해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했다는 뉴스도 들리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만나는 말레이시아 여성들은 목소리가 크고 이 사회는 모계사회라 느껴질 정도로 강하다. 나와 비슷한 연령의 동료들에게 “너 애 다섯을 어떻게 키워?”라고 지극히 한국적인 시선에서 물어보면 “애들이 크는 거지, 내가 뭘 키워” 혹은 “나 메이드가 있어”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점은 말레이시아 남성들이 가사와 육아 분담률이 생각보다 높았던 부분이었다. 작년에 학교 교사협의회에서 온 가족을 초청해 개교기념 2박 3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7시간을 대절한 버스를 타고 Redang 섬으로 이동하는 내내 쿠란을 읽으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은 선생님들이 아니라 남편들이었다. 또 바다에서 수영을 한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하는 사람들도 선생님들의 남편들이었다. 오후 시간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해주는 사람도 주말에 가족 나들이에서 아이들을 전담 케어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빠들이다. 육아와 가사로 경력단절녀가 된 나의 한국 친구들이 생각나 물어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가사와 육아는 부부 공동의 일임을 가르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적어도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기에 큰 무리가 없는 인식과 제도적인 뒤받침이 있는 나라구나'라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학생들은
이런 엄마의 모습에서 지금과 같은 여유와 당당함 그리고 따뜻함을 배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녀 효과(Girl Effect)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교육받은 소녀가 성장해서 돈을 벌면 90%를 가족에게 투자할 것이므로 소녀들을 교육해야 미래가 밝다는, 경험에서 출발한
'소녀 교육'의 중요성을 담은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소녀들은 보고 있으면 그 무한한 가능성과 영리함,
그리고 국제적인 감각과 다문화 사회에서
자라며 저절로 습득한 포용력이 있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우며
오늘도 이 가능성 넘치는 이쁜 소녀들에게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