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한국어 교실

선생님, 도마뱀도 한국어 배우고 싶은가 봐요. ^^

by Mori

나의 한국어 교실


삼 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교과교실이 있을지 내심 궁금하고 또 있었으면 했다.

학교에서는 처음에 교실이 넉넉지 않아서 없다고 하다가 일주일쯤 지나 선가 남은 교실이 있다며 지금 사용하는 한국어 교실을 보여주셨다.

영어과 공용 교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교실이라고 덧붙이셨는데 첫인상은 음…. 몇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거미줄, 벽에 검게 눌러붙은 도마뱀 똥의흔적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습한 먼지 냄새가 가득했었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유리창은 한국처럼 이중 삼중으로 꽉 닫히는 모양이 아닌 유리로 된 블라인드가 엉성하게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모기와 청설모가 놀러 들어올 만큼 휑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더운 나라의 자구책으로 이렇게 지었겠거니 했지만 아직은 익숙지 않은 열대나라 동물들과 파충류, 곤충들은 습격은 날 늘 당황스럽게 했다. 그래서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발로 교실문을 두어 번 차고 들어가야 안심이 됐다. 그래야 교실에서 파티를 하던 청설모와 도마뱀들에게 몸을 숨길 시간을 줄 것 같고 나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였다. 아무튼 이렇게 갖게 된 한국어 교실을 학생들과 벽에 페인트도 같이 칠하고 쓸고 닦고 한 덕에 이젠 꽤 쓸만한 교실이 되었다.

교실벽에 독도를 그리고 있는 4학년 Fatin



우리 학교는 쿠알라룸프르에 있지만 숲 속 한가운데 있어 가끔 킹 코브라가 나타나기도 하고, 노란 보아 구렁이가 나타나 교실 서랍장에 들어가 119가 출동하기도 했다. 이런 초 절정 친환경적인 교육 환경 덕분인지 여기 사람들은 작은 방울뱀이나 코모도, 청설모, 도마뱀 같은 작은 동물과 곤충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 역시 개미나 거미, 바퀴벌레 정도는 우습게 때려잡기에 할아버지 포스를 풍기는 거대 동남아 바퀴를 만나면 살충제를 살포하며 제압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기겁하게 하고 당황시키는 아이가 있었으니, 이 녀석은 코브라도 코모도도 아닌 도마뱀이었다. Cicak(치차)라는 귀여운 말레이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녀석들은 겁이 많아 사람이 나타나면 정말 바퀴벌레 못지않게 후다닥 모습을 감춘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아무래도 한국어 교실을 ‘놀이동산’ 정도로 생각하는지 칠판 뒤에 숨어있다가 판서할 때 나타나기도 하고 가위나 풀을 찾으려고 교구 상자를 열면 상자 속에서 후다닥 뛰쳐나오기가 일수라 마음의 준비할 겨를 없이 나를 놀래 켰다.

무엇보다도 색연필 상자나 색종이 함 같은 곳에 알을 낳아놔서 이를 처치하기에 골머리가 아팠다. 도마뱀의 알은 새끼 손톱 정도의 크기로 탁구공처럼 생겼는데 어느해 방학 때 공연용 한복을 보관해 놓는 상자에 들어가 알을 낳아놔서 무심코 한복 상자를 꺼냈다가 후드득 떨어지는 새끼 도마뱀과 알들에 식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은 내가 기겁할 때마다


“Cikgu, Comel!” (선생님, 귀여워요)하며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선생님 도마뱀도 한국어 배우고 싶은가 봐요.”

“야 너네 정말…..,”

“그래 도마뱀도 한국어 배우고 싶은가 봐”


학생들의 흠 없고 티 없고 엉뚱한 대답은 늘 나를 웃게 한다. 어릴 때부터 늘 도마뱀, 코모도, 이구아나와 같은 파충류가 친구였던 이아이들은 어쩌다 교실 색연필 함에서 동그란 도마뱀 알을 발견하면 소중한 듯 조심스레 손에 담아 흙 속에다 묻어준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평화주의자들이다.


애써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면 또 스콜이 쏟아진다.

말레이시아 교사는 대부분 양철지붕이라 스콜이 쏟아질 땐 마치 폭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시끄럽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지은 지 40년 된 교사를 사용하는터라 강한 스콜이 내리기 시작하면 빗소리도 소리지만, 교실 전원이 자동 차단되어 수업이 불가능하다. 캄캄해진 교실에는 어느새 학교에서 키우는 고양이 ‘미코씨’씨가 비를피해 들어와 길게 옆으로 누워 낮잠을 청한다. 학생들이랑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한국 귀신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수업이 끝난다.

늘 자거나 졸거나 먹거나 미코씨

작년에 큰 비가 지나간 어느 날 교실에 들어가 봤더니 천장이 약간 주저앉아 있었다.

보기에도 위험해 보여 학교에 말했더니 말레이어로 ‘Anai anai’ 뭐라 뭐라 했다.

“그게 뭔데?” “안나이 안나이?”

“응 니 교실이 너무 오래돼서 흰개미들이 교실 천장을 모두 갈아먹었어”

“뭐라고”, ”OMG”

개미들이 집을 지어 천장이 석회화가 되었고 곧 천장이 무너질 테니 절대 교실을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엔 약간 주저앉은 정도인데 내 생각엔 목재를 덧대어 못질하면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하니 알았다고 교실에서 급한 교구를 꺼내서 도서관으로 수업장소를 옮겼었다.

일주일쯤 후, 한 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나를 부르러 왔다.

“선생님 지금 빨리 한국어 교실로 오라세요.”

“어 정말? 선생님 지금 수업하는데”, ”알았어.”

서둘러 수업을 마치고 한국어 교실문을 들어서는 순간, 정말 말 그대로 천장이 무너져 있었다. 형광등이며, 천장에 붙은 선풍기며 모든 게 와르르 쏟아져 그 야말로 폐허가 되어있었다. ‘아 내가 어떻게 쓸고 닦은 교실인데’ 속상해서 눈물이 나는 것도 잠시, 이 어처구니없고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 웃음이 났다. 개미들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거고, 이 참에 버릴거나 좀 버리자며 삼 년 묵은 자료들을 대거 정리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서둘러 수리를 해주셔서 지금은 다시 한국어 교실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마뱀들의 습격은 막을 수 없다. 여전히 난 교실문 들어설 때 발로 ‘쾅쾅’ 한국어 교실을 좋아하는 도마뱀들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고 제일 먼저 빗자루를 들어 이 녀석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6월 24일부터 말레이시아도 다시 개학을 했다. 오랜만에 열어본 나의 한국어 교실은 역시 예상했던 데로 도마뱀들이 몇 번은 광란의 밤을 보낸 듯 엉망진창이다. 열대의 나라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음이 오늘따라 참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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