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람 스자트라, 바하사 코레아

한국어 교사는 처음이라서

by Mori

새벽 여섯 시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방네 울러 퍼지는 ‘아잔(Adzan)’소리에 잠이 깼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구성진 ‘아잔’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크게 들리나를 생각해 보니 오늘은 무슬림 Holy month인 ‘라마단(Ramadan)’의 시작일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그저 녹음된 노래를 트는 줄 알았는데 이 노래는 ‘무아진’이라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직접 불러주는 노래라 한다. 그래서 가끔 노래 중에 기침소리도 들리고 오늘처럼 무슬림 력에서 중요한 날은 더 구슬프고 짠한 “알라 후~”로 시작되는 ‘아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죄다 아랍어라서 못 알아듣지만 말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르의 북쪽에 있는 ‘센툴(Sentul)’이라는 인디언 밀집지역이다. 인디언 주거지이긴 하지만 국교가 이슬람교인 나라답게 노란색, 초록색, 오렌지색등 다양한 색의 모스크 돔과 첨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동네 하나에 골목골목 어지러운 가네샤가 보이는 힌두 템플, 기독교 십자가가 달린 교회, 향내가 진동하는 불교 사찰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다양성이 무엇인지,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살고 있는지 한눈에 느끼게 해 준다.

퇴근길엔 늘 인디언들의 주식인 짜파티(Chapati)와 난(Nann)을 굽는 와룽(Warung)이라 불리는 노점들과 바나나 잎에 돌돌 말린 나시르막(Nasi lemak)을 파는 말레이계 노점들, 말간 흰 찹쌀 피를 돌돌만 치청펀(猪肠粉)을 파는 중국계 노점이 즐비하다. 해가질 무렵부터 바나나 튀김인 고랭 피상(goreng pisang)을 만드는 냄새가 볶음 면 꿔티아우(Keuhteow) 냄새와 함께 동네에 진동한다. 파견교사로 3년 전에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난 말레이시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그동안 참 많은걸 경험하고 느끼며 나름의 성장을 했던 것 같다.

무하는 학교는 쿠알라룸프르의 과학고 중 하나인 SESERI라는 보딩스쿨이다.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선발된 여학생들이 기숙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말하자면 말레이시아의 ‘경기여고’ 같은 곳이다.

하지만, COVID 19으로 인한 이동통제 명령으로 학교가 3월 14일 봄방학 이후로 계속 방학 중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곳 학생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나가고 있고 오늘처럼 수업이 있는 날은 정체된 일상에 숨을 불어넣는 날이기에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오늘 8시부터 두 시간씩 1학년, 2학년, 3학년의 수업이 줄줄이 있어서 일단 밥을 든든하게 먹고 커피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첫 수업은 FORM3 3학년 학생들 수업이다.

"살람 스자트라 스무아 (salam sejahtera semua)!", "Thank you for join the Bahasa Korea class"

평화를 빈다는의미의 말레이 인사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선생님 목소리 잘 들려요?”,

“네. 선생님, 잘 들려요”

벌써 3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3학년들은 수업시간에 한국어만 사용해도 곧잘 알아듣는다.

“슬라맛 벌 푸앗사 (Selamat berpuasa semua)”

이번에는 말레이어로 “모두 금식기간 잘 보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네, 선생님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고마워요, 선생님”


3년이 지나도록 겨우 말레이어 인사 표현 정도밖에 못하는 나에 비하면 이 아이들은 정말 기똥차게 한국어를 잘한다. 오늘 배우는 표현은 ‘~는 것을 좋아해요’,’ ~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이다.


”여러분, 이 표현은 명사에는 바로 ‘명사+을/를 좋아해요’ 가 붙을 수 있지만, 동사나 형용사에는 꼭 명사로 바꾼 다음에 ‘~을/를 좋아해요’가 붙어요. 영어로 to 부정사나 동명사처럼 바뀌는 건데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Paham?, tak paham?” 말레이어로 ‘이해해요? 못해요?’를 외치는 내 공허한 목소리를 급히 감추 려는듯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동사의 어간에 ‘는 것’을 붙여 ‘먹는 것을 좋아해요’, ‘자는 것을 좋아해요’, ‘공부하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렇게 써요.”

잘 안 되는 영어로 떠듬떠듬 개떡같이 개념을 설명해도 이 지구에서 가장 완벽한 생명체에 가까운 말레이시아 소녀들은 꿀떡같이 알아듣는다.

선생의 입장에서는 동사에는 ‘~ㄴ/는’이 접속하고, 형용사에는 ‘~ㄴ/은’이 붙고, 또 ‘~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는 강조 문장이니 주격조사 ‘는’을 쓴다는 것도 설명해 줘야 하는데, 복잡한 문법 사항에 마음만 분주해져 진땀 빼면서 모니터 너머 장황하고 어려운 설명을 하고 있자면,


“선생님, 저는 김밥은 좋아하지만, 김치는 별로 안 좋아해요.”,

"저는 BTS는 좋아하지만 SEVENTEEN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는 건 좋아하지만 공부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라며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 낸다.

“어머, 너무 잘했어요, 너네 천잰가 봐”


이 아침에 한 달째 학교를 못 가서 답답하고 짜증도 날 법한데 온라인 수업이 있다고 카메라 너머로 얼굴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무슬림 학교라 학교에서는 늘 머리에 히잡, 말레이어로 ‘투둥(Tudung)’이라는 두건 쓴 모습만 보다가 학생들의 ‘투퉁’을 안 쓴 모습을 보는 것도 온라인 수업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종교적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투둥’을 안 쓴 모습을 보여주는 건 금기 시 되지만 이렇게 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먼 나라서 온 한국어 선생님에겐 보여줘도 되겠다 생각했는지 귀여운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선뜻 얼굴을 공개해 준다. 그 와중에도 얼굴을 끝까지 공개 안 하고 손가락으로 하트만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다.


두 번째 수업은 열 시 반에 시작하는 2학년 학생들 수업이다. 열정 과다 학교 대표 흥부자들인 2학년들은 온라인 수업에도 극성이다. 비록 숙제들은 잘 안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거에는 KPOP걸그룹 못지않게 열정적인 아이들이다.

오늘 수업 주제는 ‘~ 을 거예요'.

수업 준비를 하다가 IU의 ‘밤 편지’와 BTS의 ‘상 남자(BOY IN LUV)’에 이 표현이 나오는 것 같아 같이 수업자료로 준비했다.

“라마단 카림(RAMADAN KAREEM)", '행복한 라마단 보내'라는 인사로 수업을 시작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배 안고파?”. ”괜찮아요?”

“네, 선생님. 괜찮아요.”

“수업 시작할까요?”, “지금, 몇 명이예요”,

"How many students join this class now?”

“Teacher, only three people now!”

“아이고, Only three?” “Oh My god”,

”Why They didn’t join the class!”

“잠깐만 기다리세요”

서둘러 What’s app 톡방에 “수업 시작했어요. 참여하세요” 독촉 문자를 보내고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 ‘~을 거예요’ 배울 거예요.”

“Today we gonna talking about ‘I will~,~ I’m going to’ expression.

2학년들은 아직 수업에서 한국어로 먼저 말하고 영어로 다시 그 문장을 다시 한번 말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2학년 아이들은 내 말투를 곧장 흉내 낸다. 예를 들어 “아이고, 왜~~?”라던가 “빨리, 빨리”, “괜찮아?” 이런 말은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아마 열대나라 소녀들에겐 그다지 실망할 일도 서두를 일도 없기에 늘 ‘빨리 해, 빨리 하자, 빨리 와’를 입에 달고 사는, 잔뜩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선생님이 웃기기도 낯설기도 했을 거 같다.

“오늘 우리 배운 표현 ‘~ㄹ/을 거야’가 ‘BTS’ 노래에 나와요”, “ 잘 들어보세요”

‘되고파 너의 오빠~~ 널 갖고 말 거야 두고 봐’

오늘도 나의 사랑 BTS에게 ‘스페셜 쌩스 투’하는 순간이다.

“얘들아, 아이유 노래 ‘밤 편지’ 알아요?”, “이 노래에도 나와요”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그대 창가에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수업중에 노래를 부르고 웬만한 동요의 율동정도는 알고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는게 일상이 되고 있다.


“여러분 ‘보낼게요’ 들렸어요?",

"‘~을 거예요’의 반말 표현은 ‘~을 거야’, ‘~을 게요’의 반말 표현은’ ~을 게’ 예요. 그런데 ‘~을 게요’는 다른 사람의 의지나 미래에는 못 쓰고 내 의지나 내 미래에 일어날 일에만 쓰여요.”

“예를 들어서, ‘전정국은 내일 한국에 갈 거예요’는 되지만 ‘전정국은 내일 한국에 갈게요’는 안돼요”. "내가 주어일 때는 두 표현 다 쓸 수 있어요."


가르치면서 느낀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 모국어로 한국어를 쓸 때는 몰랐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부터 생긴 버릇 중 하나가 문장을 자꾸 분석하는 것이다. 조사와 어미가 바뀔 때마다 문장에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한국어가 선생도 이리 어려운데 배우는 학생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웬 불규칙은 또 이리 많은지...... ㅂ, ㄷ, ㅎ, 르 불규칙이 끝이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의외로 너무 쉽게 배운다. “너 어떻게 이 표현을 알아?”라고 물어보면 “그냥요” 이렇게 말하며 베시시 웃는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노래와 드라마 속 오빠들이 하는 한국어는 따라해 보기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했으리라 생각된다. 늘 나의 든든한 조력자 박보검, 공유, 방탄이들 같은 수 많은 대한민국의 잘 생기고 멋진 오빠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 ‘아~ 이 표현 여기서 나오네’ 하며 메모를 해두거나 녹화를 해둔다. 막상 자료를 찾으려면 쉽지 않기에 나만의 저장고가 필요해서였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든 교사들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습관들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오늘 숙제를 내줄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 숙제할 거예요?”

“네, 선생님 숙제할 거예요”,

"숙제할게요”, "숙제할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아이유와 BTS의 도움으로 오늘도 수업을 잘 마무리 지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 귀여운 1학년들의 수업이다. 학교에 입학한 지 채 석 달이 못되어 집에만 갇혀 지내는 꼬맹이들은 다행히 처음 배우는 한국어가 꽤나 재미있었는지 What’s app톡방에서나 Micro teams를 활용한 온라인 수업에도 가장 참여도가 높다.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고 화상통화를 건다는 점이다. 처음에 선생님 10시에는 자야 하니까 10시 이후에는 문자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할까? 하다가 모두 관뒀다. 그나마 있는 관심 불씨에 물을 붓는 격일 것 같아 훈계와 에티켓은 나중에 가르치자 마음먹었다. 1학년 중 꾸준히 화상통화로 내게 전화를 거는 ‘수트라’는 13살 소녀이다. 1월에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제2외국어 이동수업시간에 본 교실에서 잠들어 있다가 수업에 늦은 경력이 있는 아가씨다. 나중에 수업에 늦게 들어왔길래 수업 후에 왜 늦었냐고 물어봤더니 자다가 교감선생님께 걸려서 한 참 혼나고 오는 중이란다.

이제 겨우 13살이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에서 지내자니 힘들었겠구나 싶어서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자”며 한국식 약속 법을 알려줬다. 새끼손가락으로 약속하고 도장 찍고 카피하는 별거 아닌 거였지만 이 꼬마숙녀에겐 진심이 닿았는지 까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날 한참 바라보더니 그때부터 한국어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사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늘 반듯하고 할 일을 척척 알아서 하는 모범생들은 사실 큰 걱정이 없다. 늘 마음이 쓰이는 아이들은 자꾸 딴 데 쳐다보고, 뭔가 불안하고, 교사들 표현을 빌리자면 “걔 쫌 이상한” 아이들이다. 어디선가 마음을 다쳤거나 그래서 마음을 닫아버렸거나 한 이 아이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자기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1학년 수업의 주제는 장소 조사 '–에서'이다. 하지만 ‘~에’와 한 끗 차이인 이 '-에서와 -에'는 한국어 초급자 학생들을 늘 멘붕에 빠트린다. 오늘도 여전히 ‘식당에서 밥을 먹어요’. ‘선생님이 교실에 있어요’를 예문으로 들어주며 '존재할 때는 ‘-에’를 쓰고 행동할 때는 ‘-에서’를 써요'라고 모니터 너머 침 튀기며 설명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 듯하다.

“Do not confused about it, 헷갈리지 말아요” 말하기가 무섭게 수트라가

“teacher! '학교에 가요' is antion verb, why this expression don't use ‘-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와 수트라 이츠 어 굿 쾌스쳔”

“‘-에’ 해브 어 언 어더 미닝, 댓 미닝 이즈 ‘toward’”So, 학교에 가다 that time meaning is ‘going to school’. ”

"Paham?" "파함?"

아 한국어는 너무 어렵구나. 이렇게 어려운걸 너네는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니?

오늘도 부족한 선생님이랑 한국어 공부하느라 수고했어. 정말 고맙구나. 사랑해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