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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Sep 03. 2022

의대생이 보는 의대생 특징

의대생 특) 드립도 의학용어로 침

  어느덧 학교를 다닌지 5년이 다 되어간다. 입학했을 때는 다들 풋풋하고 어딘가 새내기스러운 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걸어다니는 만성 피로 환자들이다. 우리 학교처럼 인원수가 작은 미니의대는 특히 동기들과 하루종일 붙어있고, 5년정도 지나면 학번 내에서 별로 안친한 사람은 있어도 아예 거리감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 껴있다가, 가끔 학교 밖을 벗어나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듣거나, 다른 과 학생들과 만나면 가끔 실감되는 '아 그래도 내 동기들이 의대생이구나'하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오늘은 그 포인트들을 몇가지 소개하려 한다.


1. 잠은 0순위이자 가장 후순위(?)


실습을 돌다보면, 극한으로 일찍 출근해야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오전 3~4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야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재밌는건 그때 학교나 병원을 가면 꼭 학생들이 있다. 별로 놀라지도 않고, 곧 다 터질듯한 팽창된 실핏줄을 가진 눈으로 서로 눈인사를 하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쟤나 나나 어제 1~2시간밖에 못잤다는게 느껴진다.

본과에 올라와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아 오늘 밤새야할듯?'이다. 물론 실제로 1분도 안자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는 대부분 1시간 30분이내로 수면을 취해야할때다. 일단 시간이 없다 싶으면 잠을 다음 날 신체 기능이 돌아갈 정도만 자두고, 쉴 때는 바로 0순위로 돌아온다. 일단 지금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금요일에 밤새고, 오늘은 주말이니 2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났다. 금요일 오후 5시, 한 주간의 일정이 끝나고 동기들과 야식 등의 약속은 보통 밤 10시쯤에 잡는다. 9시 50분에 일어나서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와야할 사람이 부족하다? 백프로 그냥 자다가 못깬거라 기다리지도 않는다.


2. 암기 능력


흔히 돌아다니는 의대생 유머가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대략 이런 느낌이다.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전화번호부를 주고, 통째로 외우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공대생은 전화번호부를 외우는 기계를 만들고, 체대생은 전화번호부로 운동을 하고, 철학과 학생은 왜 이 책을 암기해야하는지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고, 의대생은 표지부터 외우면 될지 물어본다. 의대의 생태에 대해 잘 요약한 유머다.


본과 3년차, 유급이 걸린 중요한 시험을 과장 안하고 100번은 더 본 것 같다. 대부분의 의대 시험은 앞서 언급한대로 암기가 극한으로 요구된다. 유튜브에 2주에 ppt 4000장 암기?! 이런 자극적인 제목이 많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4000장을 다 공부를 하는건 맞는데, 4000장을 다 통째로 외우는 사람은 의대에서는 바보다. 실제로는 그 중 중요한 30% 정도만을 암기하고 나머지는 이해로 처리하고 간다. 다만 이게 극한의 단기 기억력을 요구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도 덩달아 강력해지는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어제만 해도 줄글로 채워진 A4 30장 가량 분량을 '통째로' 암기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아무도 이걸 못외울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다들 스스로 안다. 내가 이걸 몇 시간 정도 투자하면 암기할 수 있을지. 대부분 그정도 분량은 6시간 정도 열심히 보면 다 쓸 수 있을 정도로 외운다.

우리에게 암기는 숨쉬듯 당연한 일상이고, 대부분 학생들이 '한번 본다.' = '툭치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외운다.' 로 처리되어, 누군가 암기를 못해서 교수님께 혼나거나 시험을 못본다? 바로 동기들로부터 바보취급 당할 수 있다.

용례) A : '범위 어디까지임?' B : '프린트 10장정도 외워가면 되는데, 그냥 30분 전에 가볍게 한번 보셈~'


3. 뜬금없는 외국어 능력자


물론 나는 당연히 그렇지 못하지만,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 능력자가 상당있다. 평상시에는 티를 내지 않다가, 영어를 사용해야  순간이 되면 갑자기 옆에서 저세상 발음과 유창함이 들려온다. 이건 공통 특징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부러워서 적어본다.


4. 시간의 마술사


지금까지의 글들에 적어두었지만, 사실 상당히 빡센 일과다. 나는 이번학기 47학점을 듣고, 그 중 40학점 이상은 실습 과목이라 1학점당 2시간이 배정된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주당 교육 시간을 벗어나니 우리는 정규 방학이 없거나 1주일 정도로 매우 짧다.(개강...? 학교가 종강을 하질 않아...)

하지만 이 와중에도 대부분의 동기들이 '부캐'를 키운다. 대부분의 경우 운동에 매진하는데, 그 수준이 '직업인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잠을 3시간 자도 운동 1시간은 무조건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입학 이래 부상 빼고 운동을 쉬어본 적이 없지만, 다른 학생들도 비슷하거나 더하다. 이 외에도, 관심있는 임상 분야 논문을 쓰거나, 교수님과 연구를 같이 하거나, 타과 전공과목을 청강하거나, 나처럼 추가 강의를 신청해서 듣거나 등등, 하물며 노는 것도 매주 캠핑을 간다거나 하는 것처럼 누워서 그냥 유튜브 보고 남은 시간을 대충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주변에 시간을 버리는 사람이 없다보니, 덩달아 나도 열심히 살게 되는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실  입학한 새내기 때는,  우리는 상위 백분0.2% 학생들이다 이러면서 흔히 '의부심' 부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그러고 다니면 주위로부터 멍청이 소리나 듣지만, 살짝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대단한 학생들이 많고, 배울점이 많은 학생들이 많은게 사실이다.


다들 좀 건강챙기고 덜 열심히 힘 좀 덜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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