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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Apr 27. 2024

복싱은 감히 지상 최고의 운동이라 말할 수 있다(2)

_복싱 입문자 편

*체육관 등록편에서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관에 등록한 당신. 이제 강해지는 일만 남았다.


복싱은 굉장히 독특한 운동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PT, 테니스, 크로스핏, 주짓수, 수영처럼 대부분의 운동은 체육관 혹은 트레이너를 등록하고 나면 시간 예약을 하고, 그 시간동안 함께 운동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전반, 오후반을 나누거나, 1시 수업, 3시 수업 이런식으로 수업 시간이 정해져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싱장은(요즘은 그렇지 않은 곳들도 점점 생기고 있다) 정해진 수업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가면 된다. 언제 가도 관장님이나 코치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운동을 하다가 가면 된다. 정해진 수업 시간이 없기에, 퇴근이 늦어져도, 혹은 원래 운동을 가려했던 시간에 당근 거래가 잡혀도, 아무 문제 없이 일상을 지킬 수 있다는게 가장 큰 강점이다. 오직 내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의 짐도 덜한건 덤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체육관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당신에게 처음 주어지는 과제는 '줄넘기'다. 복싱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다치기 싫어서 혹은 무서워서보다 많이 나오는 답변이 '거기 가면 줄넘기만 한 달 한다며?' 이다. 이건 정말 만연하게 퍼져있어서 거의 밈처럼 활용이 되곤 하는데, 99% 틀린 얘기다. 물론 예전에는 그랬다고들 한다, 줄넘기만 반년 시키고, 원투만 또 일년 배우고 등등 낭만의 시대에 걸맞는 괴담들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현대의 체육관은(적어도 내가 확인한 2011년 이후는) 절대 그러지 않거니와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줄넘기가 웜업 과정에 보통 들어있는건 맞기에 보통 도착하면 3라운드(1라운드는 3분이고 쉬는시간은 30초다) 정도 줄넘기를 하게 된다. 줄넘기야 워낙 익숙한 동작이니 고작 10분이 뭐가 힘들까 싶지만, 종아리를 주무르지 않고 이걸 끝내는건 보통일이 아니다. 또 복싱 특유의 스텝을 뛰면서 하는 줄넘기 방식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렵다. 처음 해보면 나같은 박치에게는 양발도 아니고, 한발도 아닌 이 리듬감을 익히는데 한세월이다.


1초가 이렇게 길다는걸 새삼 느끼게 될 때 즈음이면, 어느새 3라운드가 끝나고 이제 종아리를 좀 쉬게 둘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가 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제 시작이다. 줄넘기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복싱의 기본 자세와 스텝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이제 또 뛰어야한다. 기본적으로 관장님들은 발 뒤꿈치가 땅에 닿는걸 극도로 혐오하시기 때문에, 종아리와 발바닥에게 모진 고문을 가해야한다. 가끔 다른 회원들 보러가실때 잠깐 쉬려고 발목 돌리고 있으면 떨어지는 불호령에 또 다시 뛰게된다.


이제 분명 발바닥에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을 거라 확신하는 시점에서, 잠깐 스텝을 멈추고 기본 자세와 잽을 배운다. 복싱의 기본자세란 정말 신기한게, 누구나 입문할때 기본자세를 배우지만 경력자 중 그 누구도 기본자세를 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팔 길이, 몸통의 두께, 다리 길이 등에 따라 편한 자세가 다르고, 분명 시작할 때는 공통적인 큐잉과 함께 배우지만, 몸에 익으면 각기 다른 자세가 되어있다. 어찌됐든 자꾸 사선으로 서서 앞을 보라고 강요하는 관장님과 함께 기본자세를 취하고 있다보면, 거울 속 내가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분명 옆에서 스파링하고 쉐도우 하는 사람들은 자세를 취하면 위압감도 있고 멋있기도 한데, 내 자세는 이렇게 별로일 수가. 그마저도 3분 하려고 하면 또 어깨가 아프고 앞손, 뒷손 할거 없이 내려온다. 그럼 또 지체없이 떨어지는 불호령에 다시 가드를 올리고 어떻게든 어색함을 지워보려 애쓴다.


이렇게 가벼운(?) 첫 날 운동을 마치고 나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언제쯤 되면 저 사람들처럼 화려한 동작을 할 수 있고, 언제쯤 되면 링에 올라가서 나도 사람을 때릴 수 있는건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한 답은 '체육관마다 다르다.' 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류의 본성을 형상화한 주먹질이 아니라 '복싱'으로서의 주먹을 링에서 뻗으려면 평균 3개월은 필요하다. 물론 타 격투기를 접해보거나, 평상시에 UFC 등의 경기를 자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조금 빠를지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 3개월은 걸려야 링 위에서 복싱을 흉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포인트에서 절망한다. 요즘 핫한 주짓수는, 일주일만 다녀도 사람한테 바로 해볼 수 있는 기술들을 배우는데, 복싱은 사람한테 고작 주먹 한번 제대로 뻗어본다는게 3개월이 걸린다니, 도파민에 절여진 세상에게는 너무 느리다.


복싱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많은 반복 동작이 요구된다. 반복이 요구된다는건, 그 결과를 얻기 힘들고, 그 과정이 지루하다는 뜻이며, 이는 높은 수준의 인내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얻어지는 결과는 다른 열매들보다 달콤한가?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 3개월 열심히 나와서 자세연습하고, 원투를 연습한 사람이 링에 올라가면 경력자들을 한 대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기에 입문자들이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고, 이 도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매력이 생각보다 부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입문자들이 이 과정을 견뎠으면 좋겠다. 장기 등록하면 글러브와 붕대 세트를 준다는 말에 처음 결제한 3개월이 지나고 다시 연장해야하는 상황이 왔을때, 연장을 하는 이유가 3개월 동안 봤던 다이어트 효과든, 반복에서 찾는 순수한 재미든, 복싱에 대한 열정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주변에 복싱한다고 말해놨는데 벌써 그만두기 민망해서든 견뎠으면 좋겠다. 그 인내의 과정이 복싱 실력 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태도를 변하게 함을 직접 경험했고 많이 봐왔다.


글을 이렇게 길게 썼지만 아직도 왜 복싱이 최고의 운동인지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길게, 이 운동의 매력을 풀어나가고 싶다. 그러니 고민 중이라면, 일단 등록하고 체험하고 함께 써내려가자. 여러분 모두 복싱하세요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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