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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May 13. 2024

복싱은 감히 지상 최고의 운동이라 말할 수 있다(5)

_스파링 편

격투기 경기를 보는걸 좋아하거나, 실제로 수련을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뜨거운 주제는 '어떤 무술이 가장 센가' 이다. 이제는 어느정도 사그라들어서 그날 컨디션 좋은 사람이 이긴다거나, 더 강한 사람이 이긴다 등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 실전성에 항상 언급되는 종목이 복싱, 레슬링, 유도, 주짓수 등이다. 위 종목들이 자주 언급되는만큼 실전성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복싱은 왜 실전성이 높을까. 이건 스파링을 경험해 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답이 나뉠 것 같다. 격투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갑자기 화려한 이마나리롤로 테이크다운을 걸고 힐훅을 거는건 말이 안되지만, 분노를 담은 롱 훅을 치는건 가능하다. 사실 가능하다기보다는 당장 내가 눈 앞의 사람을 세게 쳐야한다면, 할 수 있는게 주된 손으로(오른손잡이면 오른손) 세게 휘두르는것 뿐 아닐까? 스파링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복싱을 배우면 이런 펀치를 세게 던질 수 있기 때문에 강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스파링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해하는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얼굴에 뭐가 빠르게 날아오는 상황에서 회피하는건 아주 상당히 훈련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어떤 복싱 유튜버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비겁하기 싫으면 복싱을 배워라." 살다가 매우 낮은 확률로 마주칠 수 있는 위협 상황에서 복싱을 제대로 수련해둔 것은 큰 무기가 된다. 그 무기로 누군가를 때리고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용서를 빌더라도 혹은 도망쳐서 자리를 떠날 때도, 내 마음에 상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상대의 시비에 같이 싸우고 나도 때리고 이기고 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정서와 맞지 않고, 오히려 이러면 쌍방폭행으로 입건된다고 무식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이렇게 더러운걸 피할 때도, 마음 속에 나도 대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상황이 종료된 뒤에 내 정신건강에 큰 차이를 남긴다.


이런 면에서 스파링은 복싱의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쉐도우, 샌드백 치기, 펀칭볼처럼 대부분의 훈련이 혼자 이루어지는 복싱에서, 스파링은 유일하게 실전(시합)을 맛볼 수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수년간 복싱을 수련했지만, 스파링을 하지 않는 체육관에서 넘어온 어떤 회원분은 첫 스파링을 하자 쉐도우 때 보여줬던 멋진 자세들은 어디가고 처음 복싱장에 온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만큼 내 앞에 움직이고 날 공격할 의향이 흘러넘치는 사람이 서 있는것과, 샌드백이 서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첫 스파링. 두들겨 맞는 빨간 헤드기어가 나다.

그래서 복싱에서 첫 스파링은 굉장히 중요하다. 잘 다니다가도 스파링에서 트라우마가 생겨 그만두거나 다시는 링에 올라가지 않는 회원들이 절대 적지 않다. 언젠가 첫 스파링에 관한 내 개인적인 경험에 관해서도 쓰겠지만,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결코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욱 초심자는 부드럽게 받아주려고 하고, 감정이 앞서 마구 휘두르는 사람을 만나도 말로 최대한 절제해주려 한다. 이때 상급자가 기분나쁘다고 세게 해버리면 그 사람은 다시 링에 올라오기 어렵다.


어쨌든 스파링을 성공적으로 치뤄낸 사람은, 복싱을 더 좋아하게 된다. 상대를 타격하는데 성공했을때 손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우연히든 의도했든 공격을 피했을때의 짜릿함, 내가 의도한대로 스파링을 풀어갔을때의 만족감이 상당하다. 혼자 연습할때는 절대 해볼 수 없고, 오직 스파링에서만 쓸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바로 복싱의 꽃이라 불리는 카운터다. 가장 대표적인 카운터는 흔히 슥빡이라 불리는 슬립 후 투 스트레이트다. 이 카운터의 존재감이 스파링에서는 상당하기 때문에 보통 여기서 주로 카운터를 노리는 쪽과 카운터를 당하지 않을 선에서 주먹을 내려는 사람으로 부류가 나뉜다. 이는 스타일과도 연결된 부분이라 차후 설명하겠다.


이렇게 복싱 수련을 스파링과 함께 하게 된다면 훨씬 풍성하고 즐거운 운동을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연습에 매너리즘에 빠진 중급자도 스파링에서 많이 맞고 내려오면 이른바 '숙제'가 생긴다. 이 숙제는 세컨이 정해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파악하게 된다. 아 내가 잽을 칠때 계속 같이 맞는구나, 왜 맞지? 라는 숙제가 생긴다면, 머리를 좀 더 숨기면서 쳐볼까? 아니면 뒷손을 패링한 상태로 쳐볼까? 하고 연습한 뒤 다음 스파링에 올라간다. 이렇게 한두번 잘 통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자세가 기본자세가 된다. 그러다 또 어떤 스파링에서 누군가가 레프트 훅으로 비어있는 옆얼굴을 세게 때려주면, 아 가드가 계속 유동적으로 바뀌어야하는구나를 느끼고 또 연습해서 올라간다. 이게 스파링을 통해 강해지고 실력이 느는 주된 원리다. 반대로 생각하면, 연습하지 않고 스파링만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지 않는다. 생각보다 전략이 매우 중요한 운동이고, 전략보다 중요한건 펀치 하나하나의 퀄리티라 연습이 동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굳이 스파링을 하지 않으면서 복싱을 해도 괜찮다. 실제로 우리 체육관에는 그런 회원들이 꽤 있고, 스파링을 굳이 하지 않아도 전신 근육을 고루 사용하며, 심폐지구력의 증가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운동임에는 틀림없다. 혹시 글을 읽는 본인이 누굴 때리고 맞고 하는게 너무 싫지만 그래도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등록해도 괜찮다. 크기가 다를 뿐, 모든 복싱인들의 마음 속에는 스파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것을 모두가 알기에 아무도 강제로 스파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복싱은 정말 좋은 운동이다. 다들 복싱하자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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