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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Jul 19. 2024

글을 써봐야 읽을 줄 안다

언제까지 읽기만

프리랜서 국어 강사가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주말에는 지방에 내려가 진료를 보고, 평일에는 강사로 일한다. 수업도 점점 많아져서 일주일 내내 일만 하는 중이다.


국어를 가르칠 때, 수능이라는 어떤 명확한 시험 유형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글을 읽는 방법과 태도를 가르치고, 글을 읽게 한다. 그리고 옆에서 한 줄 한 줄 같이 따라간다. 그게 전부다.


처음에 수업 제의를 할 때는 거창하게 제안서를 썼다. 3개월 안에 수능 국어를 위한 독해법을 완성해 주겠다고.


첫 수업을 시작한 학생들과 약속한 3개월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아직도 그때 보냈던 제안서에 거짓이나 과장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속한 3개월 내에 글을 읽는 방법을 완성해 줄 것이고, 이미 완성되어 가는 학생들이 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너무 당연하게도, 학생들 사이의 편차가 크다. 누군가는 조금만 교정해 줘도 등급 상승을 바로 이뤄내는가 하면, 두 달 동안 열심히 수업을 듣고 따라왔음에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재밌는 건, 4,5등급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2,3등급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는 게 더 쉽다는 점이다. 분명 공부든 운동이든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더 발전이 어려워지는 게 사실인데 어찌 된 일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여쭤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글을 써본 것이 언제인가? 일기든, SNS에 업로드하는 짧은 글이든, 내가 쓰는 류의 글이든 뭐든 글을 마지막으로 쓴 것이 언제인가? 브런치를 통해 들어오신 분들은 꽤나 최근까지도 글을 써보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글을 마지막으로 쓴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치원을 갓 졸업할 즈음부터, 독서논술 학원에 다녔다. 학원이라고 부르기도 뭐 한 것이, 내가 사는 아파트의 다른 동에 거주하는 선생님의 집에 친구들 2,3명과 함께 가서 수업을 듣는 이른바 공부방 형식이었다. 그 집 거실에는 아주 큰 책장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책장에 있는 책을 읽는 건 자유였다. 책은 학습용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집에서는 절대 안 사주시는 판타지 만화 같은 것들도 있었고, 흥미를 자극하는 미스터리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수업이 2시라면 1시까지 가서 1시간 동안 친구들과 책을 읽다가 들어갔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재밌는 책을 찾아서 친구들과 떠들면서 읽다가 집에 가곤 했다.


이런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도 물론 소중했지만, 이 공부방의 진가는 선생님 당신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수업동안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웠고, 거실에서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다. 글을 읽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같이 정리해보기도 하고, 아무 준비 없이 생각나는 소재 하나로 이천 자짜리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당시 어디서 봤는지 꽂혀 있었던 펜 형태의 녹음기를 소재로 소설을 쓰다가 이건 소설보다는 광고에 가깝다는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간의 수업을 통해 얻었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글과 상호작용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학생뿐만 아니라) 글을 너무 수동적인 자세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우리는 글을 씹고 뜯고 맛보다가 맛이 이상하면 중간에 다른 양념을 치기도 하고, 내가 더 맛있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써보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내 글이 완성되고 타인과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풀어주기도 하면, 그때 비로소 글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위권 학생의 성적을 높이는 것이 더 쉬운 이유를 말해보자. 그들은 이미 글에 익숙해져 있는 친구들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 일지, 아니면 글을 써본 경험이 많아서 일지, 그것도 아니면 타고 태어난 감각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글과의 상호작용에 익숙하다. 그렇기에 문단을 요약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행 간의 숨겨진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자세와 태도로 글을 읽어야 하는지만 배운다면 수능 난이도의 독해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방금 읽은 문장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 문장이 이 문단에 왜 필요한지를, 왜 그 문장이 문제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싶다. 그래도 계속 부딪히면서 2달 넘게 잘 따라오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글과 싸울 수 있게 된 그들이 대견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면, 국어 수업보다도 논술 수업을 먼저 해줬을 것 같다. 아직 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단 한번 아무렇게나 써보자. 그리고 다시 읽고,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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