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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Jul 17. 2024

토익 점수는 딱히 쓸모가 없다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딱 대학교에 오기 직전까지는.


  초등학생 때, 우리 동네 친구들은 전부 ECC라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학원은 동네 모든 애들이 모여서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영어를 배우는 곳으로, 아직도 soccer가 뭔지 몰라서 당황하던 첫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딱히 거기서 영어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어째서인지 수업시간에 자꾸 밥을 사와서 먹는 선생님과 같이 놀다가 하원했던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어느날, 새로운 영어학원에 갔다. 단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고 재시험을 봐야하는 곳이었고, 숙제도 아주 세세하게 검사해서 F를 맞으면 그날 또 집에 갈 수 없었다. 모든 숙제에 I don't know를 쓴 패기있던 학생이었던 난, 결국 그날 숙제 검사를 하다가 아주 화가 난 무서운 선생님의 불호령에 울면서 학원에 남아서 숙제를 전부 다시했어야했다. 아직도 단어시험을 계속 통과하지 못해서 200명은 족히 들어갈 강의실에 나 혼자 남아서 단어를 외우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학원에 너무 정이 가지 않아서 고작 한달 정도 다니다가, 다른 학원에 입학 시험을 보러 갔다. 그 학원은 특이하게도 입학 시험에서 영어 시험을 보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약 100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의 학원 규정집을 달달 외우게해서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봤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짓인가 싶지만, 그때는 그 시험을 꼭 통과하고 싶어서 열심히 외웠다. 여느때처럼 단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아야했던 어느 날, 그 학원의 입학 시험을 통과했다는 전화에 뒷 수업은 듣지도 않고 바로 집에 왔었다. 그때도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렇게 새로 들어가게된 입학 시험이 기괴한 학원이 주소연 어학원이다. 은평구에 위치했고, 나름 그때 살던 지역에서 굉장히 규율이 힘들기로 유명한 학원이었다. 규율이 정말 정말 엄격했기 때문에 웬만한 학생들은 오래 다니지 못하고 쫓겨나곤 했다. 자습실에서 의자 끄는 소리를 포함해서 정말 아무 소리도 내면 안되는 규율부터, 시험지를 넘기는 방식, 글자를 쓰는 방식, 시험지를 제출하는 동선까지 모든게 정해져 있었고 처음엔 적응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자습실 선생님께 혼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곳에 적응한 순간부터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영어 실력은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했고, 내가 시작했던 Baron이라는 가장 낮은 반부터, 그 당시 최상위반이었던 텝스반까지 한 단계씩 오르는게 재밌었다. 딱히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아도, 시키는 것만 다 해도 양이 많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실력은 계속 올랐고, 중학교 2학년 때였나부터 텝스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전까지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토익 시험을 보게 했다. 내 첫 토익점수는 620점으로, 초등학생 치고는 괜찮은 점수였고,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게 된다. 텝스반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도 텝스를 꾸준히 봐왔고, 학원을 나오게 되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852점 이었나로 내 어학 시험은 마무리하게 된다.


이렇게 정규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그 당시 대학생들(지금도 그렇긴 하겠다) 위주로 시험을 보던 어학 시험 과정을 준비하다보니, 오히려 고교 모의고사는 굉장히 쉽게 느껴졌다.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특별히 수능이나 모의고사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모의고사를 통틀어서 영어는 단 한개도 틀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헀다. 실제로 듣거나 읽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주었던 가장 메인이 되는 과제가 Dictation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대학 수준의 공부를 하는데 큰 지장이 없도록 한 원동력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27살의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뭐 어학시험을 못본다는 뜻은 아닐거다. 그냥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 뭔가 남들 앞에서 자신있게 영어를 사용하는것이 부끄럽고, 내 영어가 이상하게 들릴까봐 걱정된다.


의대 교육과정 중, 영어 발표가 꽤 있었다. 특히 산부인과 발표 중 외국인 교수님이 계신 채로 발표해야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 과정 중에 했던 모든 발표 중에 가장 긴장되고 떨었다. 재외국민 전형으로 입학한 동기들도 있었고, 해외에 살다가 온 동기들은 많았고, 그 두 경험이 없는 동기들 중에서도 발음과 유창함이 남다른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로 대화하는건 점점 무서운 일이 되었고,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본과 3학년 어느 날, 의료인공지능 강의를 수강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해당 과정은 의대생만 들어오는게 아닌, 다른 학과나 대학원생들이 함께 듣는 강의라 외국인 학생을 포함해 다양한 학생이 모여있었다. 수업 첫 시간에 들어오신 교수님께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보시더니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시작하셨고, 오 영어 강의구나 라고 가볍게 생각하던 내 마음을 읽으신건지 갑자기 학생들에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키셨다.


앞에서 약 6번째 정도에 앉아있던 나는, 순간 정말 당황스러웠고, 앞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길 바랬다. 하지만 내 앞의 타과생들은 전부 외국인이었고, 주변 동기들은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하는 친구들이었으며, 하필 실습이 끝나고 바로 온터라 가운과 실습복을 입고 있었다. 이러다간 우리 과의 명예를 실추시키겠구나 하던 찰나에 바로 앞의 후배 한명이 당당하게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고, 흥미가 순식간에 떨어진 교수님은 거기서 자기소개를 멈추셨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친구들과 아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정말 떨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한 친구에게 부럽다는 말을 쏟아냈다. 그게 별로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친구의 말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대체 얼마나 못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지금도 회화를 잘하고 싶어서 여러 시도를 해보고는 있다. chatGPT를 활용하기도 하고, 어플도 써보고 여러 노력은 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게 확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릴 때 어학점수를 만들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만큼, 회화에 신경을 썼다라면. 성인되면 상대적으로 금방 만들 수 있는 그 점수를 만드는데 너무 오랜 기간을 투자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물론 누군가는 지금 영어를 열심히 하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말하고, 나도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해야할 일이 넘쳐나는 지금보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던 그때에 회화를 열심히 배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의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USMLE(미국의사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지금 이 정도 회화로는 절대로 미국에서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도조차 못하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 뭐 그냥 다 떠나서, 영어 잘하면 멋있지 않나.


요즘 회화 공부에 조금은 시들해졌었는데, 다시 열심히 시작해야겠다. 어쨌거나 오늘이 제일 젊은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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