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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Jul 15. 2024

중학생도 수능국어 다맞을 수 있다

너도 나도 책 좀 읽자

어쩌다 보니 전업 과외 선생이 된 요즘, 내 주요 수업 과목은 국어다. 지인들에게 과외를 한다고 하면 놀라고, 과목 중에서도 국어를 한다고 하면 한번 더 놀란다. 국어 과목은 수학, 영어 등에 비해서 과외로 선택하는 경우가 그만큼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능에서 손을 놓은지 어언 7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자신있게 1등급 이상을 맞을 수 있는 과목은 국어 뿐이 없었다.


과외 학생들에게 내 자랑처럼 들릴까, 혹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받을까 우려스러워 잘 얘기하지 않았던 비밀이 있다. 사실 난 정확히 중학교 3학년 겨울부터 그 해 치뤄진 수능 국어에서 100점을 맡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능을 치게 된 발단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 한학년 위 선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어머니와 차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그 선배를 차에 태워서 같이 갈 일이 있었다. 아마 토익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었나 그랬는데, 차에서 그 선배가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었다.


"고등학교 국어는 시험을 많이 칠수록 점수가 오르기 때문에, 고1 들어가기 전에 모의고사를 많이 봐두셔야해요"


당시 그 선배는 내가 가고자 했던 외고에 재학중이었고, 워낙 똘똘한 이미지였기에 어머니는 그 얘기를 완전히 믿어버리셨고, 그때부터 나에게 모의고사를 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연히 고1 모의고사를 칠 줄 알았으나, 화끈하게 수능부터 가보자는 말씀에 그냥 시간을 재고 풀었고, 마킹시간 5분 정도를 남기고 다 풀고 100점이 나왔다. 선배 말이 틀리지는 않았던 것이, 이후 집에서 과년도 수능을 풀때마다 소요 시간은 조금씩 줄었고, 4번째 봤을 때부터는 20분 씩 시간이 남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엔 뭐 결과가 기분 좋은 걸 떠나서, 처음 보는 형식의 문제들이 재밌었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했나 물어보는 형식의 문제들이 그동안 외워서 풀었던 국어 시험과는 결이 달랐고, 처음 읽어보는 형태의 고전 소설도 흥미로웠다. 그래서 시험을 치고 나면, 항상 그 시험에 나왔던 조각조각 난 고전소설이나 현대소설을 구해 읽었고, 아예 고전소설 전집 같은걸 구매해서 읽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그게 내 습관이었다. 일단 흥미로운 책이 있으면 사는것. 이 습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서 당장 어제만 해도 진료 관련된 책 3권을 총 18만원(...)을 주고 구매했다. 지금이야 소설이나 일반론적인 책보다도, 전공이나 흥미로운 분야에 관련한 책을 사서 주로 읽지만, 10대, 그보다 어린 나이대로 돌아가보면 그냥 조금이라도 구미가 당기면 책을 샀다.


이런 습관을 만드는데는 어머니의 가치관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주 어릴때부터(많아도 8살) 우리 집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한 문화가 있었는데, 매주 금요일 저녁에 읽고 싶은 책을 yes24에 모조리 담아두는 것이었다. 처음엔 책이 너무 좋아서 읽는다기보다, 책을 많이 담아서 카트에 찍힌 금액을 보고 놀라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는게 내 목표였다. 내가 엄마를 당황하게 했어! 라는게 왠지 모르게 뿌듯했고, 이게 반복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사용하는 금액이 더 커져갔다.


일단 책을 사면, 다 읽어야 다음 책을 사주시니, 도착한 그날부터 최대한 빠르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음 금요일이 오기전에 책을 다 읽으면, 누나가 시킨 책도 같이 읽었다. 4살 터울의 누나가 주문한 책은 그 당시 기준으로 로맨틱코미디 소설 같은 것들이 많았고(그런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가끔 들어있는 청소년 교양 서적 같은 것들을 위주로 많이 읽었다. 책을 일주일에 최소 4권은 읽었고, 삼국지 전집이나, 초한지, 세계사, 한국사 전집 등도 어디선가 사오셔서 읽게 되었다.


이렇게 몇년을 보내다 중학생이 된 어느날 이제는 과학소년이라는 잡지를 구독하게 되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책에는 흥미가 없었던 때라, 소설만 읽고 있던 때였는데 그런 나에게 과학소년은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수록된 만화 스토리를 보는데 집중했다가도 다음 호가 도착하기 전까지 한달이나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앞에 있는 과학 교양 내용들을 봐야만 했다. 화장실에도 항상 과학소년이 있었고, 심심할 때마다 읽으면서 보냈다. 당시 책에 소개된 비트코인을 사고 싶어서 1개에 1000원 할 때 부모님께 만원 어치만 사달라고 했다가 해외 결제는 위험하다고 안해주신 재밌는(?) 일화도 생겼고, 지금의 내가 가진 여러 과학적인 상식들도 전부 거기서 나왔다. 아마 고등학생까지 계속 구독하다가, 재수를 시작하면서 끊었나 그랬을 정도로 오랫동안 구독한 잡지였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런 내 타의적으로 형성된 습관들이 지금도 내가 책을 사모으게 만들었고, 국어 선생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수능을 잘보려면 이렇게 하세요! 라는 취지의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문장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글을 깊은 수준으로 읽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사유할 수 있는 충분한 리듬감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지 않나 싶다. 짧고 중독성 있는 컨텐츠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적어도 어린 학생들은 나와 비슷한 시도를 해보라 권해주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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