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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Feb 26. 2024

휴업중인 악기들~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이사를 다닐 때마다 버리자 안된다 하며 남편과 싸우는 물건이 피아노이다. 사물의 효용감이 중요한 남편, 나는 물건에 새겨진 추억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언젠가 터져야 될 화산이 터지는 모양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아들을 데리고 금난새 지휘자의 해설이 있는 클래식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자신의 생활에서 힘들고 지칠 때 음악으로 위로받으며 사춘기를 잘 지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엔 재밌어하며 잘 듣는 듯하더니 어느 새 조용해져 옆을 보면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비싼 음악회 표를 사서 잘 자고 온 모양이 돼버렸으나 많이 피곤했구나 했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악기를 접하게 했다.

처음엔 손가락 근육발달에 좋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 같아 피아노를 시켰고,

이후에 키가 큰 아들은 첼로를 딸은 바이올린을 배웠다.

어릴 땐 둘 다 잘 모르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따라 곧 잘했다. 하지만 스스로 즐겨하며 제일 중요한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엄마는 잔소리가 늘고, 아이들은 잔머리를 굴리며 대충다.


절대음감인 딸은 피아노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어 보였다.

남편은 음악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배고프고 힘든 일인지 아냐며 어릴 때 싹을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재능이 있으면 잘 키워줘야지 왜 싹을 자르냐 했지만, 누구보다 딸이 어려움 없이 살기를 바라는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딸은 이런 아빠의 눈치가 보였는지 생활기록부에도 '주말에만 피아노 치는 과학자' 뭐 그렇게 꿈을 적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화음을 맞춰 첼로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6년 정도 활동했다. 여러 번 연주회를 했고, 무대에서 연주복을 잘 차려입고 현악기를 연주하는 남매를 보는 일은 엄마인 나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의 하나를 실현하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음악을 하면 사춘기를 겪어도 클래식을 들으며 정서적으로 더 차분해지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아이들은 자라면서 랩과 힙합을 더 즐겨 들었고 스포츠를 즐겼다.


'이번에 이사할 때는 제발 저 피아노 버리자, 자기야.'


부피가 크니 남편은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피아노를 보며 자꾸 버리자고 한다.


'아들, 너 첼로 연주 안 할 거면 어디 당근마켓에라도 팔아버릴까?'


'이번학기, 단대 오케스트라 동아리 지원 안 해? 바이올린 다시 시작한다며?'


딸에게도 물어보지만 이십 대가 된 아이들은 악기를 쳐다보지 않는다.

나의 아쉬운 시선만 가끔 악기에 가 닿을 뿐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시키니까 아마도 그냥 했을 것이다. 조금 더 크니 좋아하는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더 이상 현악기를 예전처럼 하지 않는다. 엄마의 극성스러운 현악기 욕심에 어릴 적에 오히려 흥미를 잃어버린 건지도. 남편의 말대로 우리 집 유전자에는 음악이 없는 건지.


그러나 나는 가끔 아들이 피아노로 연주해 주는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듣고 있으면 힘 있는 그 녀석의 손가락 움직임이 느껴지면서 피로를 잊는다.


아들이 대학 가서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웬일로 첼로를 한 번 학교에 들고 가 연습한 적이 있다. 아마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연주해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엄마에겐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르친 보람이 있었구나 싶어 내심 기뻤다.


아이들이 방학이 끝나고 기숙사를 가고 나니 방이 휑하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악기를 보고 있으니 여러 감정이 지나간다.

초, 중등 시절에 엄마의 욕심으로 현악기 연주하느라 두 남매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근마켓에 팔지는 말아 달라고,

언젠가 다시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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