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네의 웃음소리(2018.12.9)

by 심가연

가만히 있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편이다. 앉으면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다못해 뜨개질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나에게 문득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


“뭐 뜨고 있니?”


니터(knitter)들의 첫 공식 말 걸기 질문이다. 보통 파마머리 어머니가 많다. 처음 본 사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금세 뜨개질 이야기로 지하철 한 정거장을 내릴 때까지 수다를 떨 수 있다. 내가 뜨고 있는 작품이 뭔지, 실을 만져보고 심지어 가방에서 본인 뜨개거리를 꺼내 보이기도 한다.


그뿐이랴 우연히 길을 걷다가도 뜨개질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만 보면 반갑다. 표지를 힐끗 훔쳐보며 책 읽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본다. 저 사람은 저 책을 보는구나 나도 좋아하는 책인데 말을 걸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읽는 표정을 보니 즐거워 보이네. 어디쯤을 읽고 있는 걸까.’


만약 길가에서 나랑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만났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누군가는 왜 이리 반가운 걸까.


요즘 즐겨보는 예능 중 ‘도시어부’를 보며 취미를 가지는 게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메인 출연진인 연령도 직업도 다르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낚시에 미쳐 있다는 것! 서로의 관심사인 낚시를 같이 하는 순간에는 친구처럼 격 없이 놀 수 있다. 이 방송이 재밌는 진짜 이유다. 누구와 좋아하는 걸 같이 하면서 놀 수 있고, 그걸 잘하면서 서로 뽐내는 게 인생의 ‘꿀잼’이기 때문이다.


폭염의 여름, 나 역시‘너무 힘들어요’라는 노래를 찾아들으며 설거지를 했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 식지 않는 주택의 지붕 아래서 두 아이와 비지땀을 흘렸다.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있을 틈이 없지만 외롭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고, 누구도 나의 노동에 대해 인정해주지 않아서 드는 소외감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의 감정이 온몸을 지배하던 때에도 나는 뜨개질을 하면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의 꿈을 계획한다.


이 지루하고 긴 인생을 살면서 버텨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나도 필요한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재밌고 더 잘하고 싶은 취미를 찾아내서 전문가의 반열에 들고 싶다. 뜨개질 관련 영문패턴도안이나 해외자료들을 검색해서 독학하기도 하고, 같은 뜨개도안을 블로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 카카오톡에 모여 기간을 정해놓고 ‘함뜨(함께 뜨기)’도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제대로 잘하고 싶어서 다들 꽤나 치열하다.


그러다 요즘 푹 빠진 디자이너가 있다. 아르네 앤 카를로스는 두 남성으로 함께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노르웨이에 사는 커플이기도 한데 15년 전부터 뜨개 디자이너로 꾸준히 뜨개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https://youtu.be/UkRYVBviPhQ)

아르네 앤 카를로스 유투브 주소


얼마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두 디자이너가 올린 영상을 보고 있다. 뜨개 냄비받침을 만드는 방법, 종이를 미싱으로 박음질을 해준 뒤 묶어서 미니북을 만드는 방법, 자투리 털실로 뜨개담요를 만들거나, 레이스나 천 조각으로 패치워크해서 만드는 퀼트 담요,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힐 수 있는 뜨개인형.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그들의 핸드메이드 아이디어도 좋지만,

내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장 즐거운 이유는 바로 ‘아르네의 웃음소리’다.


두 사람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나도 웃음이 난다. 그 순수함이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점점 다시 아이처럼 살고 싶어 진다. 아이들은 오늘 재밌게 놀았으면 하루가 보람차고 의미가 있다며 잠이 든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어른은 더 이상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사는 인생은 너무 지겹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만들고 그 자체를 즐기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뜨개질을 좋아할수록 아쉬운 점은 한국에는 뜨개 잡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본이나 외국 잡지들을 사서 보고 있다. 한국의 뜨개디자이너 ‘나무’님은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시즌마다 창작한 뜨개도안을 주제별 테마로 묶어서 출간하고 있다. 그녀를 아는 누구라도 판매 시작을 알리자마자 줄을 선다.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이 책은 그녀의 팬이거나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어 한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게 오히려 메리트다.


뜨개서적은 물론 출판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책과 잡지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책은 보다 대중적이고 시기를 타지 않는 이야기를 다루고, 그에 비해 잡지는 시기에 맞춰 발 빠르게 전문적이고 소수만을 위한 이야기를 한다.


요즘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붐이 일고 있다. 경리단길, 가로수길, 황리단길처럼 핫 하다는 도시의 거리에는 모두 서점이 들어섰다. 해방촌에 자리한 노홍철의 철든 책방, 스토리지북 앤 필름, 연희동에 위치한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등이 그렇다. 서점에서는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강연회, 인디가수들의 공연 등 예술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천편일률적인 삶, 재미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사람들은 다시 돈이 안 되는 작은 서점, 독립출판을 같은 일을 해본다. 그들의 독립잡지를 읽어보면 그런 슬픔이 묻어있다. 입사 그리고 퇴사. 이별과 사랑. 성욕. 우울 등 다양한 물음들이 뒤섞인 채 그 작은 서점에 나열되어 있다. 나도 그들의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해서 묻는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일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그 공간에 가는 것만으로도 일반 대형서점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내가 더욱 그곳에 속해있다는 친밀감.


어린 시절에 패션잡지 쎄씨나 만화잡지 밍크를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잡지를 재미있게 읽었던 추억이 있던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어 다시 잡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혼자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해서 돈이 안 될 걸 알면서도 독립잡지를 출간하고 있다. 그런 독립 잡지는 일종의 절박한 자기표현이며 포트폴리오이기도 하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작품이 최근 강한 충격을 줬다. 사회적으로 청소일이 가진 편견과 차별을 겪었던 사건을 만화로 그린 것이다. 56페이지에 다소 적은 분량이지만 꽤나 호응이 있다. 30살 무직의 여자가 청소일을 시작했다니. 그리고 그 일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만화를 출간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책 내용 중 엄마에게 청소를 하는 자신이 부끄럽냐고 묻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엄마의 답변. 읽고 또 읽으며 왜인지 눈물이 맺힌다.


‘도쿄규림일기’라는 작품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리뷰 200개에 달하는 핫한 작품이다. 도쿄를 여행하며 적은 소소한 감상과 드로잉을 묶은 노트로, 작가는 겸손하게 누군가의 여행일기를 주운 것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조금 서툴지만 그 거칠고 소소한 이야기가 또 다른 매력이 되는 것 같다.


‘온라인’으로 모든 정보들이 있어도 우리는 결국 손으로 직접 만지며 읽고 싶다. 좋아하는 말과 사진을 손으로 만지며 소유하고 싶다. 아르네 앤 카를로스 디자이너의 도안은 인터넷에 꽤 돌아다니고, 심지어 그분들도 홈페이지에도 공개하고 있지만 나는 그분들의 책을 전부 사서 소장하고 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일에는 돈과 시간이 들지만 함께 좋아하고 만들고 서로에게 사고 팔면서 향유하다보면 더 좋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즉,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크루들이 많아진다면 이로써 다 같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 나 역시 오늘도 글을 쓰고 뜨개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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