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제자리

뜨개에서 보낸 한 철

by 심가연

나는 어릴 때부터 물건을 수집하는 버릇이 있었다. 스마일 지우개, 샤프, 각종 다이어리와 노트 등 귀엽고 사랑스러운 잡동사니를 그러 모아 하나씩 만지작거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즐거운 소일거리였다. 물건에 대한 소소한 애착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돈도 넉넉지 않았고 결혼 전까지는 변변한 내 방 하나 없이 한 방에서 할머니와 언니랑 같이 누워서 지냈기 때문에 모서리 한편 책상과 옷장 한 칸이 내 공간의 전부였다. 그때 역시 책장이 휘도록, 책상이 가득 차도록 물건을 쌓아두고, 책을 쌓아두고 그것을 하나하나 들어서 넘기면서 보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내 안에 존재하던 작은 취미가 거대한 강박증세로 발현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오랫동안 보던 신문은 언젠가는 읽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산더미처럼 박스를 가득 채웠고, 그 신문을 결혼할 때도 그대로 트럭에 싣고 왔다. 도저히 그 많은 짐을 아버지의 차로 옮길 수가 없었다. 수많은 박스들은 가족들이 온 힘을 모아 신혼집에 옮겨주었다. 그 박스들 사이로 유유히 낡은 옷가방 두 개를 든 남편이 짐을 내려놓았을 때, 그가 잠시 부러웠다.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그러나 나는 물건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수납과 정리전문가들이 들어가고 이후에 미니멀리즘이 유행하자, 나는 물건을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했다. 묵은 신문지를 버리고, 안 쓰는 물건을 하나씩 아름다운 가게나 중고나라에 판매했다. 물건을 하나씩 애써 줄일수록, 다음 물건을 들일 때는 신중해졌다. 내가 좀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물건은 붙잡고 울기도 했다. 예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꿈과 관련된 물감이나, 그림도구들은 이상하게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책들을 버리는 일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창작과 이어져 있어서 정리를 하고 버린 뒤 다시 사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나의 꿈과 일에 관련된 일들만큼은 처분하고 나면 반드시 후회했다.


물건을 내가 가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 걸까? 나는 물건을 통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편이다. 요즘 구매한 물건들은 책보수활동가로 교육을 받으면서 북프레스기나 제본 관련 도구들을 구매했다. 그 과정에서 제본 관련 전문서적들을 모으기도 하고,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저장강박적인 측면이 있으면서도 역으로 내게 ‘자료’와 ‘정보’가 많아서 힘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저장강박이면서도 무엇이든 ‘아카이빙’해버리는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물건이 많은 나는 좋은 습관을 생각해냈다. 나의 많고 많은 수집품들이 뒤섞이며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마다, 운동 겸 집안 정리를 한다. 듣기 좋은 라디오나 유튜브를 귀로 플레이한 채 몸은 끝없이 움직이며 내가 계획한 대로, 지금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책과 도구들을 재정리한다. 그 물건이 제대로 사용될 수 있게, 모두 내가 원하는 제 자리에 배치할 수 있게. 그렇게 밤을 새워서 새벽 3-4시를 넘어서도 가끔은 집안을 다 뒤집으며 나의 물건들의 먼지를 털고 정리를 하다 보면 온몸이 녹초가 되고야 만다. 흠뻑 젖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나는 움직이며 계속 책장을 이쪽에서 저쪽 벽으로 옮기면서 그 안의 책을 쏟아내고 다시 꽂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또 정리해? 또 가구 위치를 바꿀 거야? 묻는다.


“응, 우리 집은 작고, 물건이 많아서. 자주 이렇게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것도 버리고 먼지를 털어줘야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있어.”


아이들은 그렇구나 하고 안방에서 밤새 정리하는 엄마를 두고 잠이 든다. 거대한 책장을 안간힘을 들어서 옮기고, 새벽에 퇴근하는 남편과 소파를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 그렇게 아침이 밝으면 하얗게 센 얼굴로 완벽한 집을 보며 박수를 친다.


“이제 속이 시원하다.”

홀가분한 나의 공간, 나의 물건들. 문 밖으로 분리수거하고 이제는 떠나보내기로 한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내놓는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렇지만 이제는 필요가 없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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