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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Nov 27. 2023

온천에서 발견한 엉덩이 자국

나는 변태다. 온천에 가서 사람들의 몸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보다는 개성 넘치는 노인분들의 다이내믹한 몸을 관찰하는 편이다. 늘어진 가슴, 젖꼭지, 겨드랑이와 그곳의 털, 그 모든 생김새를 힐끔거리며 관찰하는 것이 온천에 와서 나도 모르게 하는 취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여섯 살 둘째도 온천을 좋아해서 덕산 부모님 집에 오면 함께 겨울마다 온천탕을 방문한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친언니와 조카 둘, 할머니랑 엄마까지 총 6명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단체로 온 우리가 서 있으면 사람들이 스스륵 자리를 잘 비켜준다. 아이들을 앉히고 슬금슬금 밀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 우리는 머리를 감고 탕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까지 다 씻기고 탕에 들어가니 무언가 하얀 피지가 동동 떠 보이지만 눈을 다른 곳에 두며 안 보려고 했다. 괜찮아. 공중목욕탕이 그렇지. 천장에 고개를 들어보니 온천탕의 천장은 높고 테두리마다 곰팡이가 살짝 피어올랐다. 인간적이군.


노천탕으로 나가면 한겨울의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아볼 수 있다. 대신 얼른 온천물로 들어가야 한다. 노천탕은 더 뜨거운 온천물이 버글버글 끊고 있다. 수건을 머리에 얹은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데려온 우리를 보며 농을 친다. 자기 아들이 이만할 때 온천탕에 오면 뜨거워서 고추 끝이 아프다고 했다며 몇 번을 말한다. 그렇게 작았던 아들이 커버렸다고.


그 말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집게 머리를 정가르마에 올려 집은 중년의 아주머니는 아들을 생각하는지 잠시 먼산을 보며 조용해졌다. 노천탕 아주머니들은 뜨거운 물에 잘 들어가는 아이들 칭찬도 해주고, 우리가 온 뒤에도 꽤 오랫동안 벌게진 정도로 온천탕에 몸을 지진다.


노천탕의 열이 너무 뜨거운 아이들은 결국 다시 실내 온천으로 향했다. 칭찬 때문에 그나마 조금 버텼다. 다시 냉탕으로 향한 아이들은 바가지 두 개를 겹쳐서 튜브를 만드는 건 우리 때부터 변하지 않았구나. 새삼 옛날 언니랑 나도 저렇게 놀았는데 웃음이 난다.


아이들의 물장구를 보며 감기 걸린 언니와 한약탕에서 몸을 녹였다. 그때 친정엄마가 바나나우유를 배달해 왔다. 엄마는 점점 우리에게 음식을 넣어주는 것이 본인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엄마가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는데. 바나나 우유를 주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엉덩이 아래가 까맣다. 매일 앉아서 전화를 하는 일을 하는 엄마. 회사생활이 벌써 15년이 넘었다. 엄마의 엉덩이 아래가 까만데. 나이 든 할머니들은 그 까만 자국이 점점 짙어진다.


나는 언니에게 맨 엉덩이를 들이밀며 물어보았다. 언니 나도 엉덩이 까만 자국 같은 거 있어? 언니는 유심히 보더니 까만 자욱의 징조가 보인다고 한다. 아하.. 그렇군.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지나가신다. 몰래 할머니 엉덩이도 보았다. 새까맣고 근육이 빠져 움푹 들어가 있다. 점점 저렇게 나도 되겠구나. 온천탕에서 다양한 몸을 관찰하는 이유는 노화에 대해서 궁금해서도 있다.  다양한 몸의 변형을 바라보며 나이테처럼 그 사람의 시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그것만 빼면 젊고 늙고를 떠나 벗고 보면 다 비슷하다.

화보 속 섹시한 여성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목욕탕에서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딘가 있겠지 뭐.


온천탕에서 나와, 친정아빠와 남편과 첫째 아들 평화를 만났다. 시골 온천탕이라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많았다. 아빠의 말로는 온탕이 똥물이었다고, 무언가 떠 다녔다고 한다. 어떤 할아버지가 물이 뜨거워서 실수를 하신 걸까. 모르겠지만. 아빠와 남편은 그래서 빨리 나왔다고 한다.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피부는 온천에 제법 미끌거리고 뽀송해졌다. 한 겨울의 온천은 이렇든 저렇든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는 그 자체로 즐겁다. 까만 엉덩이가 잊히지 않아 그림을 그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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