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가연 Feb 19. 2024

다음 해 봄이 오면 곰은 어떻게 할까?

그림책 모임 2월의 책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곰은 봄이 되자, 잠을 자던 동굴에서 일어난다. 동굴 위에는 공장이 지어져 있다. 곰이 일어나서 만난 공장에서 일하던 경비원 같은 남자가 어서 와서 일하지 않고 뭐 하냐고 곰에게 말한다. 곰은 자기가 곰이라고 하는데, 공장관리자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곰은 그대로 버스를 타고 철창에 갇힌 서커스단 곰들을 만난다. 서커스단의 곰들은 곰에게 말한다. 버스를 타고 온 것은 보니 너는 곰이 아니라고, 춤도 못 추고 곰은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공장에 들어가서 버튼을 누르며 공장 기계를 돌리며 일하는 척한다. 그곳의 회장님을 만나는데, 회장님의 방에는 죽은 곰가죽이 떡하니 깔려있다. 곰은 회장님의 방에서 죽은 곰을 보며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공장을 빠져나와 모텔로 가서 잠을 자고 쉬려는데, 그곳에서 모텔 사장이 추레한 곰에게 말한다.

 "우리 모텔은 공장 인부를 재우지 않는다. 특히 너 같은 곰은 절대!"

 곰은 결국 자신이 자던 동굴에 들어와서 잠에 든다.


 그림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이 그림책은 요르그 슈타이너의 글과 요르그 뮐러의 그림으로 두 사람의 공동작업이다. 두 창작자가 이렇게 환상적인 궁합으로 블랙코미디 그림책을 그리다니 놀라웠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여진처럼 질문이 맴돈다. 곰인 채로 있는 것이 곰에게 좋을까? 아니면 공장에서 가서 곰이 일을 하며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모텔에도 들어가지 못한 곰이 다시 새로운 동굴을 찾아 들어가 겨울잠을 자며 끝난다.


내 아이도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동굴에 들어가 버리듯 겨울잠을 자버리면 어떻게 하지? 과거의 나도 이런 실수들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곰을 보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떠난 삶을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곰처럼 멍청하고 둔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곰의 마지막 결말이 허탈했다.


작가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겨울잠을 자고 다음 봄에 뭘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그런 질문이 솟구쳤다. 절반의 해답도 알려주지 않다니. 그러다가 앞장을 펴고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곰에게는 또 다음의 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곰의 동굴 위에는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공장관리인이 나타날 것이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이야기의 2편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새로운 봄날의 곰은 좀 더 능숙하게 동굴에서 나와 세상을 둘러보고 파악한다. 공장관리인에게 나는 곰이지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회장에게 찾아가서 곰의 힘이 얼마나 센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회장이 이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말재간을 이용해서 동물원 곰들의 서커스를 말하면서 진행하겠다고 한다. 모텔에 좋은 옷을 입고 찾아간다. 모텔 주인이 비싼 옷을 보고 된다고 하면 낡은 모텔보다 곰은 동굴에서 자는 게 더 편하다고 응수한다. 추운 겨울이 되었으니 동굴에 들어가서 잔다.


나는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그림책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곰'이 자신의 천성을 거슬러서 살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곰은 겨울에는 자야 한다. 그 점은 변할 수 없다. 또한 곰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에 맞춰서 곰을 이용하기 위해 곰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곰이어서 안 된다고 무시한다.


이 동화를 보고 있다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곰은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잊고 타의에 의해 끌려다니다가 다시 되찾는다. 그 되찾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곰이 가진 겨울잠이라는 천성 때문이다. 곰은 겨울에는 자야 한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없다. 겨울에 잠은 자면서 곰은 자신이 될 수 있다. 천성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레카!


'곰'을 선택한 작가는, 캐나다 출신이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쥐 1,2,3 그래픽 노블 작가는 유태인 학살 아우슈비츠 사건을 '쥐'를 의인화하여 그렸다. 각 나라마다 익숙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동물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은 호랑이. 일본은 원숭이, 고양이. 중국은 판다 등. 국가별로 선호하는 동물들이 있고 이것이 작가들의 무의식에 깔려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발현된다.


'곰'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마다가스카르의 펭귄들처럼 철창을 벗어나 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창 안에서 곰들처럼 인간에게 보여줄 춤을 추면서 살아야 할까? 사회에 어떤 식으로 적응을 하며 살고 싶은지 태초의 존재였던 '곰'처럼 아이들도 분명 저마다 숙제를 가지고 있다. 이미 어른이 된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른이 된 우리도 곰처럼 자신이 가진 천성을 알고, 그것을 지키면서 살아가야겠다.


저학년인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어려운 주제여서 9살 이상 읽어달라는 출판사의 문구가 나중에 출판된 원고에는 추가로 기재되어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림책은 몇 번이고 읽으며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꼭꼭 씹어 읽어주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다.  


"곰은 다음 해 봄에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